[잠깐 읽기] 가라앉은 진실을 건지는 용감한 시민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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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마지막 항해 / 시나다 시게루

책 <1945, 마지막 항해>. 어문학사 제공 책 <1945, 마지막 항해>. 어문학사 제공

강제노동, 구타,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재일조선인들은 일본의 항복 이후 고향으로 떠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부산항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희망으로 가득한 배가 향한 곳은 부산항이 아닌 마이즈루항이다. 혼란스러워하던 이들의 모습도 잠시, 배는 대규모 폭발과 함께 바다로 가라앉고 만다. “배에서 탈출하지 못한 사람도 많고 바다에 빠진 이들은 시커멓게 기름을 뒤집어써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급박한 당시 상황을 말해준다.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20분, 조선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우키시마호’ 사건이다.

발생한 지 벌써 8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수많은 목격자의 진술에도 일본 정부가 조선인 사망자는 524명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폭발 원인, 피해 규모, 배가 부산항으로 가지 않은 이유 등의 진상규명 과제도 남아있다.

억울한 죽음을 감추려 하는 일본 정부가 있는가 하면 이를 드러내려는 시민들도 있다. 마이즈루시에서는 매년 8월 24일마다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 집회가 열린다. 집회의 주축인 ‘노다 미키오’ 씨와 ‘스나가 야스로’ 씨는 평범한 시민이면서 사건 희생자와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이다. 각각 중학교 교사와 학부모 사이로 만난 두 사람은 1965년 위령제를 시작으로 추도비 건립, 영화·연극 제작에 참여해 숨겨진 역사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1945, 마지막 항해>는 가라앉은 진실을 건지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기록한 책이다. 사건의 기록부터 이들이 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진실을 인양하기 위한 미래의 과제가 책 속에 담겨있다. 집회를 이끌어왔던 노다 씨는 2005년 향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용감한 시민들이 노다 씨의 뒤를 이어 조선인들의 가라앉은 희망을 건져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시나다 시게루 지음/김영식 옮김/어문학사/231쪽/1만 5000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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