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하나의 진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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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주 '친절한 영자씨'

백현주의 '친절한 영자씨'(12분45초).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백현주의 '친절한 영자씨'(12분45초).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백현주는 ‘일반인’들에게 그들이 특정한 사건, 장소,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채록하고 그 인터뷰를 통해 실체적 사건이 각각의 주관적인 기억들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작품에 반영한다.

‘친절한 영자씨’(2013)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의 주요 배경이었던 부산 주례여고 근방 주민들과 2011년부터 2년간 영화에 관해 인터뷰한 기록들로 만들어졌다. 실제 영화 촬영 시기보다 이후에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사람들의 기억은 소실되고 변형되거나 과거의 사실과 기억의 결속은 느슨해지고, 대신 각자의 사정, 오해, 짐작들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작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의 허구가 다시 그들 삶 속에 실재하는 현실로 중첩되는 지점을 포착하였고 이것은 또 다른 리얼리티, 정말 그들만의 진짜 이야기에 도달한다.

‘친절한 영자씨’의 제작 계기가 재밌다. 백현주는 ‘친절한 금자씨’를 진행한 로케이션 장소를 리서치하던 중 촬영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주인공을 ‘금자씨’가 아닌 ‘영자씨’로 더 많이 알고 있거나 심지어 영화와 현장의 사건들을 각각 다르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라쇼몽 효과’를 목격한다. 라쇼몽 효과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에서 기인한 용어인데, 개인의 주관성으로 인해 같은 사건을 목격해도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는 의미가 있다.

주민 A 씨는 ‘금자씨’를 한사코 ‘영자씨’로 지칭한다. 작품 속 30여 명의 목격자들도 주인공 이름을 ‘영자’, ‘춘자’, 심지어 ‘영애’, ‘장금이’라고도 말하지만 ‘금자씨’는 없다.

영화에 대한 기억나는 것을 알려달라는 작가의 질문에 인터뷰이들의 대답은 각자의 사정으로 끝이 난다. 눈 오는 날 장면의 눈이 소금이어서 실망했다는 B 씨, 촬영 분위기가 좋았냐는 질문에 스텝의 노상방뇨를 제보하는 C 씨, 영화사에서 답례품으로 주는 수건을 못 받은 D 씨와 수건은 받았지만 ‘박찬옥’으로 잘못 인쇄되어 아직도 감독이 박찬옥인 줄 아는 E 씨 등 이야기의 소실점이 ‘친절한 금자씨’로 모아지지 않는다.

‘친절한 영자씨’의 의미는 이런 다초점에 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정확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완전한 진실은 알 수가 없으며, 이런 개인의 주관적 관점, 즉 ‘누구의 시점에서 말하는가’에 따라 단순한 수용자에서 누구라도 새로운 리얼리티를 창조해나가는 다양한 생산자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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