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신 장군 동상 옆 옛 석상 명패 남긴 이유는?
석상 명패, 건립문 등 먼구름 한형석 선생 작품
1981년 석상 건립 당시 제작해 긴 시간 자리해
자유 추구한 선생 서체 주요 건축물에도 남아
선생 작품임을 소개하는 표식 등 필요 지적도
임진왜란 영웅인 ‘윤흥신 장군’ 옛 석상에 있던 ‘먼구름 한형석(1910~1996)’ 선생의 흔적이 새로 교체된 동상 주변 화단으로 옮겨졌다. 한 선생 서체가 담긴 명패 등을 보존하려는 취지이지만, 독립운동가인 그와 관련한 표식이나 안내문은 없어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29일 부산 동구 초량동 ‘윤흥신 장군상’이 선 1143-1 일대 광장. 동상이 아닌 중앙대로 쪽 화단에 ‘다대첨사 윤흥신 장군상’이라 적힌 명패가 있었다. 글로 빼곡한 ‘다대포진 첨절제사 윤흥신 장군상 건립문’과 ‘장군 사적기’ 석판도 나란히 놓여 있었다.
명패와 석판에 담긴 글은 모두 한 선생 서체다. 1981년 윤 장군 옛 석상을 세울 때 그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문과 사적문 끝에도 ‘일천구백팔십일년 구월십일’이라 적혀 있다. 동구청은 지난해 기존 석상을 철거하면서 석판과 명패만 떼어내 화단으로 옮겼다. 동구청 관계자는 “동상 전에 석상이 있었던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명패 등은 보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석판과 명패 주변에는 한 선생과 관련한 표식이나 안내문은 없었다. 바로 옆 안내판에는 윤 장군 생애와 동래성 해자유적에 대한 설명만 담겼다. 한국광복군 제2제대 선전부장을 역임한 한 선생 글씨를 보고도 시민들이 알아챌 방법이 없는 셈이다. 한 선생은 ‘압록강 행진곡’을 작곡한 독립운동가로 고향 부산에서 국내 최초 아동전용극장인 ‘자유아동극장’을 세운 예술가이기도 하다.
한 선생 서체는 흔히 ‘먼구름체’로 불리며 자유를 추구한 글씨라 평가받는다. 임시수도기념관 사빈당 현판, 부산대 ‘이문회우’ 비석, 동래 금강공원 임진동래의총 충혼각 주련, 부산민주공원 충혼탑비, 대동병원 현판 등에 그의 서체가 남아있다.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 장군은 생전 한 선생 글씨를 “이채롭고 기수(유달리 수려)한 필법”이라 평가했다. 먼구름은 한 선생을 부르는 호칭으로 중국에서 그가 사용한 호인 ‘원운’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인물을 넘어 서체도 의미가 큰 만큼 제대로 된 보존과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형석 평전’을 쓴 국립항공박물관 장경준 자료학술실장은 “서체가 그림 같기도 한 파격적인 형식”이라며 “예술가답게 자유를 추구한 정신이 묻어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 선생은 고향인 부산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며 “기회가 되면 한 선생 서체를 두고 학문적 토론을 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선생 장남인 한종수 씨는 “요즘 ‘캘리그라피’처럼 보이는 선친 서체는 독특하고 전례가 없었다는 평가가 있었다”며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아 결혼식 주례를 설 때나 개업하는 곳에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흥신 장군 석상 명패 등을 만들 때 선친이 글씨를 쓴 화선지를 들고 있는데 따로 보존할 장소가 있으면 좋을 듯하다”며 “명패 주변에 안내문이 있어도 의미가 더 잘 전달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