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소서 성매매 알선 네 번 걸려도 집유… 벌금 내고 또 범죄 [성매매특별법 20년 완월동 폐쇄 원년으로]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3. 법 존재 이유 외면하는 판결

지난해 1심 판결 233건 분석
법정 최고형 처벌 판례 전무해
알선 피고 53.5%가 집행유예
벌금 105건, 징역 36건 그쳐
추징은 피고가 인정한 금액만
“알선자 사정 고려, 처벌 약해져”

지난해 성매매 알선자의 절반가량이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여러 차례 성매매 범죄를 저질러도 알선죄에 대한 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성매매 근절’이라는 법의 취지가 무색하다. 사진은 부산 서구 충무동 일대 국내 1호 성매매집결지인 ‘완월동’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해 성매매 알선자의 절반가량이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여러 차례 성매매 범죄를 저질러도 알선죄에 대한 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성매매 근절’이라는 법의 취지가 무색하다. 사진은 부산 서구 충무동 일대 국내 1호 성매매집결지인 ‘완월동’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성매매처벌법 제1조에서는 ‘성매매, 성매매알선 등 행위·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근절’ ‘성매매피해자 인권 보호’라는 법의 존재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행 20년이 지난 지금, 폐쇄를 코앞에 둔 집결지에서도 영업사실이 계속해서 적발되고, N번방 사건과 같은 온라인을 통한 고도화된 성착취는 지속되는 모습이다. 과연 성매매 근절에 방점을 둔 처벌, 이뤄지고 있는걸까? 〈부산일보〉 취재진은 지난 한 해 동안 선고된 성매매알선죄 1심 판결문 233건을 입수해, 피고인 380명에 대한 형량과 양형이유 등을 조사했다.

■피고인 절반이 집행유예

A 씨는 풍속 영업이 금지된 인천의 한 교육환경보호구역에 마사지 업소를 차려 유사성행위를 알선하다 적발돼 법정에 섰다. 이미 3번이나 벌금을 물고도 또다시 영업을 재개한 A 씨. 재범도, 삼범도 아닌 사범에 재판부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번 범행과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영업을 한 행위로 3회 벌금형을 받았음에도 다시 범행해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벌금형을 초과하는 처벌전력이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성매매알선 피고인 중 201명(53.5%)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벌금 105건, 징역 36건, 집행유예에 벌금 병과 24건 등이 뒤를 이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14년 성매매 알선 권고형량 기준을 만들었고, 이후 판결은 이 양형 기준을 참고한다. 양형위의 '영업·대가수수에 의한 성매매알선' 권고형량 기준에 따라 지난해 판결을 분류해보면 감경(징역 8월 이하) 77건, 기본(6월~1년 4월) 155건, 가중(1~3년) 41건이었다. 권고형량을 초과한 사례는 1건으로, 성착취물 제작배포·촬영물 등 이용협박·협박·사기죄 등이 함께 선고된 사례였다. 단순히 성매매알선 만으로는 법정형인 최대 7년에 가까운 처벌을 받는 사례는 없었다.

범행기간이 늘어나도 압도적인 집유 선고 기조는 동일했다. 판결문상 ‘업주’로 나타난 피고인 중 범행기간이 명시된 210명을 상대로 분석해보니 범행기간이 1개월 이하인 경우 집행유예 선고 비율이 53%였고, 1년을 초과한 범행에도 56%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같은 범행의 벌금이나 집행유예 전력은 법정에서 '경미한 전과'로 해석돼, 피고인에게 또다시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다. 동종전과가 있는 피고인 101명 중 64명(63.3%)은 징역형 집행유예, 14명(13.8%)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징역형은 11명(10.8%)에게만 선고됐다. 21명은 전과가 벌금형에 그쳐서, 2명은 집행유예에 그쳤다는 사실이 양형이유에 명시됐다. A 씨처럼 수차례 벌금형으로 가벼운 처벌만 받는다면 ‘사범’째에도 징역형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절반만 범죄수익 토해냈다

울산에서 2년간 마사지업소를 운영하며 유사성행위를 알선한 B 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1000여 만 원 추징, 압수된 현금 몰수 등을 선고한 재판부는 양형이유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다만, 위 벌금 전과 외에는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성매매알선 등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범행을 자백하며 반성하고 있는 점, 범죄수익을 몰수 및 추징하는 점.’

범죄수익 환수는 막대한 금전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성매매알선에 가장 강력한 제재로 꼽힌다. 그러나 모든 피고인에게 추징이 선고되지도 않을 뿐더러, 가액 또한 피고인이 인정한 만큼만 적용된다. 심지어는 추징을 처벌의 연장선이 아닌, 형을 줄여주는 ‘이해할만한 피고인의 사정’으로까지 풀이한 판결도 나타났다.

취재진이 확인한 성매매알선 피고인 203명의 평균 추징액은 2246만 원이었다. 벌금 등 경제적 처벌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피고인은 89명이었다. 성매매처벌법은 징역형 선고에도 벌금 병과를 가능케 해 금전적 제약이 뒤따르도록 하지만, 약 20%에 해당하는 알선자에게는 아무런 금전적 제약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법익보다 피고인 수익 고려돼”

법률 전문가는 ‘성매매 근절’이라는 법익보다 피고인의 경제적 이득을 고려하기 때문에 낮은 처벌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이 벌어들인 수익 위주로 선고가 이뤄지는데, 범죄사실이 낱낱이 드러나지 않는 성매매 범죄 특성상 높은 형이 선고되기 어려운 것이다. 법무법인 한올 강현주 변호사는 “무엇을 보호하는 법인지, 법익이 1조에 나와있다”며 “이 법으로 보호할 법익보다 피고인의 경제적 이익이 판단 기준이 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추징을 피고인의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하거나, 적발될 때마다 벌금만 물고 끝나는 상황이 반복되면 재범 의지를 끊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강 변호사는 “여러번 적발되면 벌금이 점점 높아지겠지만, ‘이렇게 해도 또 벌금형이네’ 하면서 다시 범행하게 될 것”이라며 “추징 선고 이후 실제 집행까지 행정력이 계속 투입되는데, 피고인의 유리한 사정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 조항도 알선자에 대한 강한 처벌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수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알선업자를 찾으려면 성매매 상황이 드러나야 하고, 이걸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성구매자가 아닌 성매매 여성이다. 증언을 위해서는 본인이 신고했을 때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는 안전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