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찾아 떠돈 40년 항적] 내 가슴에 음식물 왈칵 쏟아낸 간호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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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충남함 복무 당시 에피소드
목포서 제주로 간호사관생 수송 임무
전례없던 일에 젊은 대원 분홍빛 기대
분위기 좋다가 파도 일어 뱃멀미 사태
인솔자 쓰러지며 내게 오물범벅 세례

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의 합동순항훈련 출항 모습. 연합뉴스 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의 합동순항훈련 출항 모습. 연합뉴스

나는 그때 해군 중위로 호위구축함인 DE-73 충남함 보수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 충남함은 제주도 근해에서 순항속력으로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신바람 나는 전문을 받았다. -목포항에 입항해서 간호사관생도 여행단을 싣고 제주항까지 수송하라! 함정에 오는 전문은 모두 비밀이지만 이 전문을 금방 함내에 다 퍼졌다. 젊은 아가씨들, 그것도 간호장교가 될 사관생도를 수송한다니 젊은 대원들은 벌써부터 분홍빛 기대에 부풀어 가슴을 설레었다. 고참 수병, 부사관 할 것 없이 총각 대원들은 맞선보러 가는 신랑감이나 되는 것처럼 설레발쳤다. 눈치코치 볼 것 없이 세면을 하고 주름 잡힌 외출복을 갈아입고 부산을 떨었다. 그러지 않아도 깨끗한 복장으로 손님을 맞이하라고 지시를 할 판인데 제 손으로 온갖 멋을 다 부리니 탈 잡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 모습. 연합뉴스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 모습. 연합뉴스

목포항에 입항했다. 수송할 인원은 인솔자를 포함해서 60명이었다. 간호사관생도 50명에 인솔자가 10명이나 됐다. 인솔 책임자는 여군 소령이었고, 군의관 대위 3명과 간호 대위·중위 6명이었다. 먼저 침실 배정부터 했다. 군인인 주제에 기합이 빠져 머리를 더부룩하게 기른 군의관들은 고생 좀 해보라고 함수 위관장교 침실을 내어주었다. 간호장교들은 함미에 있는 기관장교 침실에 모셨다. 파도가 치면 함수보다 함미가 뜀박질을 덜하기 때문이었다. 50명의 생도들은 제일 넓은 함 중앙 대원침실에 수용했다. 목포항을 출항해서 제주항에 도착할 때까지 항해 당직에 걸린 노총각들은 애가 달아 어쩔 줄을 몰랐다. 근무 시간을 바꿔달라고 기혼자들에게 흥정을 했다. -한 시간에 담배 한 갑! -한 갑에는 안 한다. 두 갑 내라!


충남함에 근무하던 해군 복무 시절 필자(맨 오른쪽)가 동료들과 선상에서 찍은 사진. 김종찬 제공 충남함에 근무하던 해군 복무 시절 필자(맨 오른쪽)가 동료들과 선상에서 찍은 사진. 김종찬 제공

목포항을 출항했다. 한껏 멋을 부린 고참 하사들이 갑판을 기웃거리며 생도들의 동태를 살폈다. 올망졸망한 섬 사이를 빠져나오는 동안 바다는 잔잔했다. 기온도 포근했다. 간호사관생도들은 항해하는 동안 잠시 휴식할 캔버스 침대를 배정받고 항해 시 주의사항을 듣자마자 갑갑한 침실을 벗어나 갑판으로 쏟아져 나왔다. 달리는 함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은 젊은 생도들에게 경이롭기만 했다. 생도들의 이번 여행은 졸업을 기념하는 함상 체험 여행이었다. 섬 사이를 빠져나오자 바다가 확 트이고 수평선이 멀어졌다. 함정을 처음 타 보는 생도들은 잔물결 반짝이는 바다 위에서 아득한 수평선만 봐도 가슴에 뭔가 모를 그리움이 일었을 것이었다. 함정은 신나게 달리고 지나온 바다 위에는 새하얀 물거품이 안개꽃처럼 흐드러지며 항적을 남겼다. 먼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 먼저 동심에 젖어 노래를 불렀다. 동요는 어느새 합창이 되어 함상에 울려 퍼졌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아란 하늘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 입교식 모습. 연합뉴스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 입교식 모습. 연합뉴스

누가 먼저였는지는 알 수도 없다. 말을 붙이고 싶어 안달이 나서 갑판을 기웃거리던 노총각들과 간호사관생도들은 어느새 한 무리가 되었다. 봄 소풍 나온 여고생같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둘러앉았다. 젊은 남녀가 뒤섞여 앉은 동그라미는 세 개나 되었다. 처음 만난 남녀끼리 모여 앉자마자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을까? 간호사관생도들에게는 추억 만들기였고 노총각들에게는 신부 구하기였다. 서로 경쟁이나 하듯 재잘거리다가 어느 팀에서 먼저 수건돌리기 놀이를 시작했다. 잡힌 사람은 벌칙으로 노래를 불렀다. 청춘 남녀들이 넓은 갑판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즐겁게 떠들고 노는 모습을 보고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함정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흐뭇한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머금게 했다. 제주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노총각들은 짧은 시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인연을 맺어보려고 생도들에게 온갖 친절을 다 베풀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방해꾼이 나타났다. 바다가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충남함. 해군 제공 충남함. 해군 제공

수송 작전은 일몰 전에 마쳐야 했다. 넓은 바다에 나오자 충남함은 서서히 속력을 올렸다. 게다가 넓은 바다로 나오니 굼실굼실 높은 물너울이 갑판을 넘겨다보며 시샘을 했다. 속력을 20노트로 올리자 함정은 훌쩍훌쩍 말달리기를 했다. 갑판에는 세찬 바람이 일어나고 파도의 비말이 쏟아졌다. 즐겁게 웃고 떠들던 생도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동그라미는 금방 허물어지고 말았다. 뱃멀미는 돌풍처럼 갑자기 위장 속을 흔들었다. 생도들은 울컥 치미는 토악질을 참지 못해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배정받은 침실로 뛰어들었다. 노총각들은 마음 같아선 괴로워하는 생도들을 침실까지 부축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하사 이하는 간호사관생도들이 수용된 침실에 출입할 수가 없었다. 장교들과 중·상사 이상만 보살펴줄 수 있었다.전속 항진으로 함체의 요동이 심하고 바람이 거세어 비상이 걸리자 인솔 간호장교들이 생도들을 염려하여 갑판으로 나왔다. 하지만 멀미에는 계급도 소용이 없었다. 갑판에서 생도들이 수용된 중앙 침실로 들어가려면 ‘수밀(水密, Water tight) 스커틀’을 통하여 경사가 심한 계단을 밟고 내려가야 한다.


충남함에서 근무했던 해군 중위 시절의 필자. 김종찬 제공 충남함에서 근무했던 해군 중위 시절의 필자. 김종찬 제공

내가 안전 순찰을 돌기 위해 계단으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갑판에 나갔다가 되돌아오던 간호 중위와 계단에서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이었다. 간호 중위는 훌쩍 뜀박질하는 함체의 요동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내 가슴 위로 퍽 엎어졌다. 그와 동시에 왈칵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검은 동근무복을 입은 내 가슴은 졸지에 오물 범벅이 되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뜻하지 않았던 선물에 나는 더러운 줄도 모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내 가슴을 붙잡고 비틀거리는 간호 중위의 어깨를 신부처럼 부축하여 후부 장교 침실로 안내했다. 침실에 들어가니 거기도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화장실 변기에는 토사물이 가득했다. 토하고 난 뒤 세척수를 내릴 기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투복 차림으로 군화 끈도 풀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던 여군 소령은 달랐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나는 냄새 나는 변기에 세척수를 내리고 브러시로 간단히 소제까지 해주고 나왔다. 그들이 떠나면 곧 우리가 사용할 침실이었다.

어둡기 전에 제주항에 도착했다. 울고불고 법석을 떨던 생도들은 바다가 잔잔해지자 벌써 기운을 되찾아 해죽해죽 웃고 있었다. 짧은 여행이 아쉽다는 듯 현문을 나서며 “갈 때 또 봐요!” 하고 귀엽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내 가슴에 먹은 것까지 다 토해 준 중위님은 어디에 숨었는지 얼굴도 볼 수 없었다. 그후 노총각들은 은근히 기다렸지만 생도들이 돌아갈 때는 여객선을 이용했는지 충남함은 부르지 않았다. 그 간호 중위님도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글/ 김종찬 해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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