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 분담금에… 사업장 입지 따라 인기 양극화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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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재건축·재개발 수주 대전

범천 1-1구역 공사비 72% 증액 요청 등
분담금 늘어나자 전국 재건축 인기 주춤
규제 완화책도 감당 가능 지역만 통할 듯
부산은 해운대·수영 등 투자 쏠릴 가능성

고금리 장기화와 공사비 급증으로 건설사들이 ‘옥석 가리기’에 나서는 등 부산 지역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들의 양극화가 심화할 전망이다. 최근 시공사에서 공사비 대폭 증액을 요청한 부산진구 범천1-1구역의 전경. 정종회 기자 jjh@ 고금리 장기화와 공사비 급증으로 건설사들이 ‘옥석 가리기’에 나서는 등 부산 지역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들의 양극화가 심화할 전망이다. 최근 시공사에서 공사비 대폭 증액을 요청한 부산진구 범천1-1구역의 전경. 정종회 기자 jjh@

부산 지역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 입지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공사비 폭등 탓에 ‘억 소리’ 나는 추가 분담금이 예상되자 조합과 시공사 간의 갈등이 곳곳에서 빚어진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재건축·재개발 투자가 ‘돈 먹는 하마’가 된 격이다. 하지만 분담금을 감당할 수 있는 입지 좋은 사업장은 정부의 규제 완화 효과 등을 충분히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돈 먹는 하마’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최근 부산진구 ‘범천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조합에 공사비를 3년 전보다 72% 증액하는 내용의 요청서를 전달했다. 기존 3.3㎡당 539만 9000원이던 공사비를 926만 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조합은 증액된 공사비에 반발하고 있지만 현대건설은 원자잿값과 인건비 상승 등을 고려하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범천1-1구역은 용적률이 800%(최고 49층)로 이뤄진 만큼 일반 아파트 공사비보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조합 측은 “터무니없는 인상 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분담금 폭탄으로 인한 갈등은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시공사는 “공사비를 올리지 않으면 적자를 낼 지경”이라지만, 수억 원대의 추가 분담금을 수용할 수 있는 조합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공사비 마찰 탓에 공사 중단이나 법정 공방 등으로 몸살을 앓는 사업장이 부지기수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소규모 재건축 등 지역의 소규모 정비사업은 직격탄을 맞아 시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사태도 빚어진다.

건설사들도 과거처럼 시공사 선정을 위해 출혈 경쟁을 벌이지 않으려는 추세다. 공사비가 급등하고 부동산 침체기가 길어지면서 섣불리 발을 담갔다가 천문학적인 손해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알’은 있다

지난 1월 부산진구 시민공원 촉진2-1구역 재개발 사업을 두고 포스코이앤씨와 삼성물산이 임원진까지 총동원하는 ‘전면전’을 벌였고, 포스코가 업계 1위 삼성을 꺾어 큰 화제가 됐다. 부동산 침체기가 장기화하면서 비수도권에서는 이 같은 수주전이 이례적인 일이 됐다. 1조 3000억 원 규모의 재개발 사업지인 데다 시민공원을 품은 입지로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있었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민공원 인근을 비롯해 해운대구나 수영구 등 부산에서도 입지가 좋은 사업장은 부동산 침체기에도 가격을 방어해 내고 있다. 해운대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나 예정지 가운데서도 역세권에 위치한 단지에 대한 문의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어중간한 준신축 아파트보다는 수요가 많다”며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가격이 보합세일 때 투자용으로 사두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몸테크’로 버티려는 20~40대 문의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동의대 강정규 부동산대학원장은 “부동산 침체기가 끝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재건축·재개발 사업들이 상당히 원활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다만 입지에 따라 양극화가 뚜렷할 수 있다. 부산의 경우 해운대구와 수영구를 필두로한 동부산 지역의 선호가 뚜렷한 만큼 서부산이나 원도심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1·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30년이 넘은 아파트에 대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규제 완화책을 내놓았다. 노후계획도시(1기 신도시) 특별법상의 재정비 지역에 해운대와 화명, 만덕 등 5곳이 포함되기도 했다.

부산의 경우 준공 이후 30년 이상 된 아파트(지난해 7월 기준)가 16만 1517호 있다. 인천(15만 311호)이나 대구(10만 2170호) 등 다른 광역시보다 노후 아파트가 많다. 20년 이상 30년 미만 아파트는 28만 141호나 된다. 재건축·재개발 대상 단지가 계속해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양극화가 심화한다면 규제 완화나 특별법의 대상 단지가 된다는 사실 자체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지 못한다. 강 원장은 “적지 않은 금액의 추가 분담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 단지들 위주로 수익성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옥석 가리기를 통해 입지가 좋은 지역의 재건축·재개발 물건을 매매하는 것은 여전히 성공적인 투자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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