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백일해 유행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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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서정시 ‘승무’ ‘낙화’로 유명한 조지훈(1920~1968). 1971년 독재정권을 비꼰 ‘애국자’란 시로 등단한 뒤 경남 창원시 마산에서 활동하며 민주화와 통일을 열망하고 환경 파괴를 경고하는 시를 많이 쓴 이선관(1942~2005).

성향이 매우 다른 작품 세계를 보여준 두 시인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갓난아이 적에 호흡기 질환의 하나인 백일해(百日咳)를 심하게 앓았다는 것. 조 시인은 생전에 보기 드물게 키가 180cm나 되는 거구였으나, 아주 어릴 때 앓은 백일해 후유증으로 몸이 허약해져 평생을 질병에 시달리며 고생했다. 이 시인은 한 살 무렵 겪은 백일해 약물 중독 탓에 생긴 뇌성마비 2급 장애를 멍에처럼 지고 살아야 했다.

백일해는 한방에서 “기침이 100일을 간다”고 한 데서 유래해 붙여진 명칭이다. 보르데텔라균(Bordetella pertussis, 그람 음성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제2급 법정 감염병. 이 질환은 처음엔 미열이 있는 감기처럼 시작해 가벼운 기침을 하지만, 2~3주째 증상이 악화하면 “흡” 소리와 함께 발작성 기침을 한다. 기침이 심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막히며 구토 현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만 해도 백일해로 죽는 영아가 많았을 정도로 영유아에게 치명적이다. 비말을 통해 전파된다. 정부는 1954년부터 디프테리아·파상풍 백신이 들어있는 DTP 백신으로 영유아 예방접종을 권장했다. 그러다가 1989년 DTaP(개량형 백일해 백신)를 국가필수 예방접종에 포함하자 백일해 발생 빈도가 눈에 띄게 줄면서 퇴치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 전국에서 어린이·청소년을 중심으로 백일해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발생한 백일해 환자는 365명. 지난해 같은 기간 11명에 비해 33배가량 늘었으며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수치다. 올해 같은 기간 부산에서도 전국 시도 가운데 세 번째 많은 47명이 감염됐다. 그동안 가끔 국지적으로 소수의 발병은 있었지만, 이같이 유행 수준인 건 이례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기 철저했던 방역 체계와 개인위생 준수가 엔데믹(풍토병) 전환 이후 크게 느슨해진 영향일지도 모른다. 머잖아 인구절벽으로 국가소멸이 우려된다는 초저출생 시대가 아닌가. 아동과 청소년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소중해진 만큼 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보건 당국과 어른들의 각별한 신경이 요구된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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