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민희진 사태로 ‘멀티레이블’ 한계 드러났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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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기획사 멀티레이블 구조
레이블마다 비슷한 콘셉트 탓에
과도한 경쟁과 의견 충돌 빈번
업계에선 “곪은 문제 터졌을 뿐”

하이브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하이브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가요 기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와 모회사 하이브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K팝 기업 ‘멀티레이블’ 시스템의 한계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국내 연예기획사 대부분은 대기업 계열사를 모회사로 하는 문어발식 ‘멀티레이블’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이번 사태를 단순 특정 집단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K팝 기업의 취약한 거버넌스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고 있다.

멀티레이블은 모기업 아래에 레이블을 자회사 형태로 여러 개 두는 체제다. 본래 레이블은 음반을 만들고 유통하는 회사를 의미하지만,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사업과 음악 제작이 함께 가는 K팝 기업 구조상 국내에서는 소속사 개념으로도 쓰인다. 하이브는 이번에 문제가 된 어도어 이외에도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뮤직, 세븐틴 소속사 플레디스, 르세라핌 소속사 쏘스뮤직, 아일릿 소속사 빌리프랩 등 산하 음악 레이블 11개를 두고 있다.

또 다른 국내 대형 기획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멀티레이블 체제를 취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소속 음악·배우 레이블은 총 10개다. 콘텐츠 제작사와 IP(지식재산권) 레이블을 합치면 수가 더 많다. 이곳은 SM엔터 인수 합병에 속도를 내고 있어 앞으로 덩치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멀티레이블 체제는 K팝 기획사의 외연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각 레이블이 자회사로 분리돼 있으면 성과 지표를 명확히 할 수 있어 경쟁을 유도하기 좋고, 외부 투자 유치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산하 레이블 입장에서는 일찍 업계에 자리 잡은 모회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이브 레이블 어도어에서 데뷔한 걸그룹 뉴진스(위)와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데뷔한 아일릿(아래). 어도어·빌리프랩 제공 하이브 레이블 어도어에서 데뷔한 걸그룹 뉴진스(위)와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데뷔한 아일릿(아래). 어도어·빌리프랩 제공

문제는 소비층이 한정적인 K팝 특성상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음악 전문가들은 “레이블마다 장르나 색이 다르면 (멀티레이블이)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비슷한 콘셉트를 내세운 아이돌 중심의 기획사에서는 의견 충돌과 과도한 경쟁이 일어나기 쉽다”고 지적한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멀티레이블은 사세를 확장하는 주요 방법이지만, 결국 수익이 목표라 레이블 간 무한 경쟁을 촉발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간담회에서 “하이브 경영진이 뉴진스를 ‘서자(庶子)’ 취급하고, 방시혁 의장이 프로듀싱하는 레이블의 아티스트를 밀어주는 ‘군대 축구’식 경영을 했다”는 취지의 불만을 제기한 배경에도 멀티레이블 체제에 내재한 병폐가 있다는 걸 드러낸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가 멀티레이블 체제의 곪은 문제를 드러내는 만큼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청한 하이브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레이블 간 아티스트 관련 공유가 잘 안 될 때가 있었다”며 “레이블 간 기싸움도 종종 있었다”고 했다. 카카오엔터 산하 레이블 관계자도 “다른 곳에 비해서는 독립성이 보장되는 편”이라면서도 “아무래도 매출이나 실적 부분에서는 다른 레이블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 삼아 현재 멀티레이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별 레이블의 독립성과 고유성을 살리고, 모회사와 레이블 간 구조 역시 보완해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박지원 하이브 CEO도 지난 2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멀티레이블 시스템이 난관에 봉착했다”며 “레이블을 고도화해 보완할 것”을 약속했다. 임 평론가는 “레이블마다 고유의 성격을 부여해 예술성과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하재근 대중음악평론가도 “각 레이블의 콘셉트가 겹치는 이상 계속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어 체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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