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AI시대, 주거 정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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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실생활 가까워진 스마트 도시
부유층 향유 공간 돼선 안 돼
인간의 존엄 보장할 수 있도록
빈곤층의 삶도 적극 고려돼야

“나는 당신의 친구예요.” 미소 지으며 손을 내민다. 키는 155cm, 긴 머리에 상냥한 그는 지난 10일 막을 내린 ‘CES 2025’에서 미국 로봇 기업 리얼보틱스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리아(Aria)’다.

‘CES 2025’는 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박람회다. 올해의 주제는 ‘Connect. Solve. Discover. DIVE IN.’이다. ‘연결하고, 해결하며, 발견하고, 몰입하자’는 의미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AI(인공지능)다. AI는 가전, 모빌리티, 헬스케어 등 일상생활뿐 아니라 스마트 도시 건설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는데, 특히 올해는 AI를 더한 ‘로봇’이 시장을 제패할 신사업으로 본격 소개됐다.

아리아는 사람과 영화나 TV를 함께 보고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은 15만 달러(약 2억 2000만 원).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얼굴로도 제작이 가능하단다. ‘오징어 게임’ 시즌 2에서 책정된 참가자 1명의 몸값보다 더 비싼 셈이다.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개봉한 영화 ‘세입자’는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시작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배우상, 대만금마장영화제 등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영화로 단편소설 ‘천장세’가 원작이다. 여기에 듣도 보도 못 한 천장세가 나온다. 주인공 신동이 사는 도시는 빈부격차가 극심해서 소수의 부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월세로 살고 있다. 월세 세입자는 자신이 사는 곳의 일부를 또 월세로 줄 수 있는데 이를 월월세라고 한다. 천장세는 청년의 주거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집을 리모델링할 때 천장에 세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도시에서 지원해 주는 가상의 제도다. 월월세를 통해 거실이나 화장실의 일부조차 임대받기 어려워 내몰린 사람이 최종 선택하는 공간이 천장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극단화된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공간이 반지하였다면, ‘세입자’에서는 천장이다. 도시의 주거공간이 재산 정도의 척도가 되고 사회적 신분과 계급을 나누는 현상이 되었다. 이미 본질이 무너진 집은 부동산 논리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올해 부동산 시장에서 주시해야 할 트렌드의 하나는 ‘월세 주택’이라고 한다. 그동안 조금씩 불거졌던 전세 사기가 지난해 크게 터지면서 전세 대신 월세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전세 제도는 그동안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에게는 사금융의 역할을, 세입자에게는 돈을 더 모으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오르는 집값에 맞춰 함께 오르는 전세는 감당이 어렵고, 전세 사기 여파로 전세 제도 자체에 대한 인식도 악화되어 점차 월세로 바뀌는 추세다.

소득이 낮다면 더더욱 전세금을 종잣돈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기보다는 월세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집이 여러 채인 사람은 임대 사업자로 월세 수입을 늘리려 할 거다. 벌써 글로벌 기관 투자자는 우리나라 주택 월세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고 하니 소득과 자산의 격차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면 상상을 초월한 공간 활용 방식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영화 ‘세입자’가 그저 기이한 상상력을 동원한 영화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시는 계속 발전한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리아가 등장한 ‘CES 2025’가 개막하기 하루 전날,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아키오 회장은 ‘우븐 시티’의 1단계 건축을 마무리하고 올해 가을 공식 론칭을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우븐 시티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실생활로 체험할 수 있는 스마트 도시다. 부산은 2005년부터 스마트 도시 사업을 진행해 2018년 국가시범도시로 에코델타시티가 선정됐다. 2021년 총 54가구가 스마트 빌리지에 입주했다. 그들의 거주 경험은 연구 자료로 활용하기에 현재 밖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렇게 얻어진 기술의 성과가 기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특정 계층만을 위한 ‘럭셔리 도시’로 변질된다면,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빈곤층은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기술적 혜택은커녕 기본적인 주거권조차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 권리를 보장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스마트 도시 설계 단계부터 빈곤층의 삶의 질을 고려한 정책과 시스템이 포함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도시란 무엇인지, 또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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