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 에너지 공급망 측면 미·러와 협력 필수”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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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배재대 연구교수 주장
서아시아 에너지 수송 불안정
대안은 북극해 주변 자원·통항
관련국 간 법리 논쟁 극복해야

북극항로와 해빙 가속화를 나타낸 지도. 부산일보DB 북극항로와 해빙 가속화를 나타낸 지도. 부산일보DB

에너지와 자원을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 북극항로는 공급망뿐 아니라 에너지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북극항로 당사국인 러시아는 물론, 또 다른 당사국인 미국과의 협력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배규성 연구교수는 지난 22일 국립한국해양대에서 열린 한국지방정부학회 하계학술대회 ‘북극항로와 지속가능개발목표’ 세션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2021년 기준 에너지와 자원 수입에 소요된 비용이 1359억 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22.1%에 이른다. 이 가운데 석유 59%는 서아시아에서 수입되고, LNG(액화천연가스) 수입선은 카타르, 호주, 미국, 오만, 말레이시아, 러시아 순이다.

특히 2016년 LNG 수입 비중이 0.1%에 불과했던 미국은 2021년 18.5%로 급성장했다. 에너지 공급망 변화가 얼마나 급격히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미국산 LNG 1000억 달러 규모 구매를 약속한 만큼 미국산 LNG 비중은 더 높아지게 됐다.

서아시아 내 이스라엘과 이슬람 정권 사이의 갈등으로 기존 에너지 수송로 안정성도 흔들리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홍해~수에즈운하는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세계 무역량의 12%를 차지하고,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천연가스의 3분의 1, 석유의 6분의 1이 지나는 통로다.

지난해부터 후티 반군을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경유하는 항로가 일반화되고 있는데, 이 우회항로는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25.5일 소요)보다 8.5일이 더 걸린다. 북극해 주변 천연가스·석유 자원 개발과 북극항로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러시아는 베링해협부터 서쪽 노바야젬랴까지의 북극해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해역 항로를 북방항로(NSR)라 칭하고, 이 항로 내 4개 해협은 국제해협이 아닌 자국 내수로 간주한다는 내용으로 ‘러시아 연방 내부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연방법’을 2022년 개정했다.

외국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는 캐나다도 비슷한 입장이다. 향후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북극해 연안국과 항로 이용국 사이의 치열한 법리 논쟁이 예상된다.

이날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정성엽 박사는 북극해 운항에 필요한 선박 관련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세계 표준을 선도하는 방향으로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쇄빙 컨테이너선, 저탄소·무탄소 연료 추진 시스템, 저소음 프로펠러, 유빙 관제 시스템 등 친환경·스마트 선박 핵심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함으로써 국제해사기구(IMO) 폴라코드(Polar Code) 등의 기술 기준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국제 규제를 한국형 기술로 선도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부산항만공사(BPA) 구자림 글로벌사업단장은 “북미향 마지막 항구라는 이점에 비해 다소 열세였던 유럽향 화물 유치에도 북극항로가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부산항도 에너지 자원 중심 기능을 확대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내년 말까지 부산항 진해신항에 친환경 인프라 구축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류희영 전문연구원은 “북극항로는 아직 상업적 경제성이 완전히 검증된 항로는 아니지만 기후변화와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잠재적 가치와 리스크가 공존하는 전략 자산”이라며 “항해 안전을 위한 기술적 준비, 국제 규범 대응과 다자 협력,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균형 외교와 산업 전략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하며, 지금부터 축적된 경험과 협력이 미래의 국익을 좌우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연구원 김학기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로 중국조차 지난해 북극항로 컨테이너 물동량이 크게 줄었을 정도로 미국의 제재가 가장 큰 변수”라고 지적하고,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정부, 상업운항보다는 과학·기술 협력 부분부터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이 더 내실을 다지는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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