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찬란한 판타지는 현재진행형
영화평론가
빠더너스 문상훈 수입 타블로 번역
현실 비현실 섞인 유쾌한 페이크 다큐
타임머신 설정,실패 반복을 코미디로
영화 '너바나 더 밴드'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릴 적 몇 번이나 돌려봤던 ‘백 투 더 퓨처’가 떠올랐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현재와 미래를 바꾸는 짜릿한 순간에 엉덩이가 들썩였다. “만약 타임머신이 작동된다면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까?”, “과거의 단 한 가지만 바꿀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를 생각하며 잠들기도 했다. 그 시절, 시간여행은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찬란한 판타지였다.
스크린은 때로는 무모한 꿈을 전달하거나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꿈을 설파하거나 따뜻한 위로를 내미는 대신, 재기 발랄함으로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상상력과 엉뚱한 유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현실의 중력은 희미해진다.
코미디 크루 빠더너스의 배우 겸 크리에이터 문상훈이 수입하고 타블로가 번역한 영화 ‘너바나 더 밴드: 전설적 밴드 ‘너바나’와는 별 관련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콤비 맷과 제이. 어느 날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작전을 세우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이하 ‘너바나 더 밴드’)’의 이야기다. 무려 106자에 달하는 제목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들만의 타임머신을 가동하며 다시 한번 그 시절의 설렘 속으로 이끈다.
‘너바나 더 밴드’는 감독 맷 존슨이 실제 친구인 제이 맥캐럴과 20년 가까이 함께 이어온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만든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코미디 영화다. 2008년, 패기 넘치는 맷과 제이는 꿈의 무대인 리볼리에 서겠다는 일념으로 밴드를 결성한다. 하지만 17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들은 무대에 오르지 못한 채 기상천외한 사고와 계획만 반복하고 있다. 한때는 눈앞에 있는 듯했던 꿈도 이제는 점점 더 멀어져 보인다.
아득해진 꿈과 서글픈 현실 사이의 거리를 냉정하게 드러내는 공간은 그들의 ‘집’이다. 밀린 고지서와 음식물 쓰레기, 심지어 쥐까지 출몰하는 처참한 일상 앞에서 여전히 꿈을 외치는 맷은 철없고 무책임해 보인다. 결국 지쳐버린 제이는 혼자 오디션을 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틀어지고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던 바로 그 순간, 맷이 ‘백 투 더 퓨처’를 동경하며 만든 타임머신이 작동한다. 연료는 오래전 단종된 음료. 시속 88km에 도달한 캠핑카가 눈부신 빛을 내뿜고, 두 사람은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시작된 2008년으로 불시착한다.
이 작품의 묘미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절묘하게 허무는 연출에 있다. 실제 본인들의 이름과 정체성을 스크린 속에 투영하고, 화려한 특수효과 대신 날것의 카메라 워킹과 즉흥 연기로 극을 이끌어간다. 2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토론토 시내를 게릴라 방식으로 촬영한 뒤 2008년 웹 시리즈의 저화질 푸티지를 콜라주처럼 엮어, 어디까지가 대본이고 어디서부터가 실제 상황인지 분간하기 힘든 화면을 만들어낸다. 또한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건 저작권 지옥이 될 거야”고 말하는 장면처럼, 영화는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며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허문다. 여기에 ‘백 투 더 퓨처’를 오마주한 연출까지 더해지며 유쾌한 혼란을 선사한다.
감독이 “편집으로 100%를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자평했듯, 영화의 핵심 동력은 수백 시간의 아카이브에서 건져 올린 순간들의 정밀한 배치에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두 친구의 꿈과 우정의 리얼리티가 살아 숨 쉰다. 세월의 흐름 속에 흐려진 열정과 힘든 현실의 이면을 재치 있게 포착해 내는 너바나가 등장하지 않는 ‘너바나 밴드’는,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서로가 함께이기에 가능한 꿈을 말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거를 완벽하게 되돌려 놓는 타임머신이 아니라, 서툴고 엉망진창일지언정 현재를 바꾸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무모함일지도 모른다. 실패마저 코미디로 편집해 내는 이 무모한 여정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유효한 꿈의 온도를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