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된 아파트 아직 사람이 산다… 사업성 없는 부산 노후 주택 해법 찾기
안전진단 최하 등급 아파트 주민들,
비용 부담에 “이주 손해” 발 묶여
1941년 준공한 부산 중구 청풍장아파트 전경. 부산일보DB
안전진단 최하 등급을 받아 붕괴 위험에 직면한 부산 초고령 노후 아파트들이 사실상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지자체의 주민 이주 지원은 현실적 유인이 부족하고, 노후 주택 정비 사업도 제한적인 예산과 제도적 한계에 막혀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개발 논리나 무조건적인 철거에서 벗어나, 지역 공공성을 고려한 개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E등급’ 아파트지만, 못 떠나는 주민
5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부산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중구 남포동 소화장아파트는 지난달 15일 준공 82주년을 맞았다. 1941년 지어진 ‘부산 1호 아파트’ 중구 청풍장아파트도 지난 4월 준공 85주년을 맞았다. 서로 50여 m 떨어진 거리에 자리한 두 아파트는 2021년 11월 모두 안전진단 최하 등급(E) 판정을 받았다.
지난 2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소화장아파트에 직접 들어가 보니 외벽과 계단 등 내부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일부 벽은 기울어져 있었고, 건물 곳곳에는 쓰레기 더미가 방치돼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는 해당 건물이 ‘구조안전 위험시설물’에 해당한다며 통행 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안내 표지가 붙어 있었다. 건물 외관도 매우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주민들은 이주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청풍장아파트에서 50년 이상 거주했다고 하는 A 씨는 “10년 전에 5000만 원을 들여 집 전체에 리모델링을 했다”며 “내부는 말끔하고 건물은 전혀 위험하지 않아 내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청에서는 임대 주택을 구해준다고 하지만 임대 주택 대출 이자는 우리가 내야 해 무조건 손해”라며 “구청에서 지금 집을 사주든지, 그게 아니라면 이사를 갈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중구청은 철거를 위해 두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이주 신청을 독려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좀처럼 주거지를 옮기지 않고 있다. “돈 주고 산 내 집을 버리고 매달 대출 이자를 내며 임대 주택에서 사는 것은 손해”라는 등의 이유에서다.
지난 4월 기준 소화장아파트에는 8세대 10명, 청풍장아파트에는 9세대 11명이 거주 중이다. 지난달 소화장 2세대, 청풍장 4세대는 구청에 이주를 신청했지만 여전히 11세대는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노후 아파트에 남아 있어 구청은 안전 관리에 난항을 겪는다.
■“데이터에 기반한 관리·보수 필요”
지난 4월 기준 부산 내 안전진단 E등급을 받은 공동주택은 총 5곳이며, 이곳에는 21세대 28명이 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수영구 무궁화연립1동(0명) △영도구 영선아파트(3세대 5명) △영도구 고신주택(1세대 2명) △중구 청풍장아파트(9세대 11명) △중구 소화장아파트(8세대 10명) 등이다.
안전에 취약하지만, 민간 재개발 절차 외에 공공이 개입할 여지도 제도적으로 적다. 부산시는 준공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을 대상으로 보수 비용을 지원해 주는 ‘노후 공동주택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예산은 불과 연 2~3억 원 수준이다. 안전성을 개선하는 효과는 있으나 노후 주택 수 자체를 줄일 수는 없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도시 재생 사업 역시 한계가 있다. 주변 환경과 기반 시설은 공공에서 정비하지만, 개인 주택 개·보수는 주택 소유주가 부담하는 구조인 탓이다. 이들이 비용 부담으로 사업 참여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문가는 선행 연구나 장기적인 방향성 없이 당장의 사업성 논리에만 치우친 정비 방식에서 벗어나, 도시 전역의 공공성을 고려한 데이터 기반의 개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동의대 허진우 건축학과 교수는 “사업성만 좇는 정비에서 벗어나 부산 내 각 생활권역 전체를 아우르는 정성·정량적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유 재산권과 도시 공공성 사이의 법적·행정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무조건적인 노후 주택 철거보다 안전도를 공개하고, 유지·보수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대 김동현 도시공학과 교수는 “단순히 준공 30년이 지났다고 해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맞지 않다”라며 “정확한 건물 안전도나 위험 지역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가치 평가를 유도하고, 고쳐서 쓸 수 있는 건물은 보강해 쓰도록 관리 영역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수빈 기자 bysu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