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사상 거제 아파트 산사태…산사태가 아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최환석 기자 ch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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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지점 서류상 아파트 소유 대지
산림청·도·거제시 ‘법면 유실’로 분류
확정 시 보상·복구 모두 소유자 부담
수 억 원 청구서 우려에 입주민 반발

17일 시간당 1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경남 거제시에서 옥포동의 한 아파트 뒤편 야산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아파트 주민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쏟아져 내린 흙더미에 입주민 차량이 깔려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17일 시간당 1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경남 거제시에서 옥포동의 한 아파트 뒤편 야산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아파트 주민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쏟아져 내린 흙더미에 입주민 차량이 깔려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광복절 연휴 쏟아진 극한 호우에 단지 뒤 비탈이 무너져 1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친 경남 거제시 옥포동 아파트 매몰 사고를 놓고 엉뚱한 ‘유형’ 논쟁이 불거졌다. 관할 지자체는 ‘산사태’가 아닌 사유지 내 ‘법면(땅깎기 등으로 생기는 인공 경사지) 유실’로 판단했다. 토사가 쓸려나간 지점이 서류상 아파트 부지 안이라는 이유다. 이 경우 복구비는 물론 인적·물적 피해 보상까지 아파트 측 책임이 될 공산이 크다. 물 폭탄에 이어 난데없는 복구비 폭탄 청구서까지 떠안을 위기에 처한 아파트 측은 명백한 자연재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22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남도와 거제시, 산림청은 지난 17일 인명 피해가 발생한 거제 A 아파트 사고를 법면 유실로 잠정 분류했다. 당시 시간당 100mm를 웃도는 기록적 폭우가 일대에 쏟아졌고, 오전 4시 20분께 단지 꼭대기 동 뒤편 비탈이 붕괴하며 1·2층 8가구를 덮쳤다. 순식간에 밀려든 흙더미에 20대 남성이 숨졌고 50대 여성과 60대 남성이 크게 다쳤다. 애초 사고 원인으로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가 지목됐다. 하지만 산림청 조사에서 붕괴 현장이 지목상 임야(산림과 숲으로 이루어진 토지)가 아닌 아파트 소유 대지(건출물 부지)로 확인되면서 산사태가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

21일 오전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한 아파트 뒤편에 집중호우로 쓸려 내려온 토사와 나무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아파트에서는 지난 17일 토사 유출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21일 오전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한 아파트 뒤편에 집중호우로 쓸려 내려온 토사와 나무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아파트에서는 지난 17일 토사 유출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시공사인 B 건설은 1993년 이 일대 땅 2만 890㎡를 매입해 8~15층 6개 동 384세대 규모 단지를 조성했다. 이 과정에 단지와 맞닿는 산비탈을 깎아 경사면을 만들고 옹벽을 설치했다. 상단 경계부와 비탈면, 옹벽 위에는 인공 배수로를 설치했다. 그리곤 이듬해 9월 준공에 맞춰 전체 땅 지목을 대지로 전환했다. 이번 폭우에 무너진 비탈 역시 지금은 울창한 숲이었지만 지적공부상 아파트 부지 경계 내다. 산림청 드론 촬영 분석 결과, 배수로 사이에서 토사 유출이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자체는 이를 근거로 사고 유형을 법면 유실로 분류했다. 산사태와 법면 유실 모두 경사면에서 흙과 돌이 쏟아진다는 점에서 현상은 같지만 행정적으로는 자연 상태 산지·임야에서 발생하면 전자, 인공적으로 조성한 곳에서 발생하면 후자로 본다.

이와는 별개로 응급 복구는 지자체 주도로 이뤄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산사태라면 자연재해대책법을 근거로 사유시설이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복구한다. 반면 법면 유실 수습은 원칙적으로 소유자 몫이다. 각종 손실 보상과 복구 비용 대부분을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입주민이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당장 인명 피해를 비롯해 건물 외벽 일부가 부서지고 차량 수십 대가 파손됐다. 유실된 법면 복구와 보강은 물론 옹벽도 다시 쌓아야 한다. 소요 비용은 최소 수 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규모 단지 아파트가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때문에 책임 소재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21일 오전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한 아파트에서 굴착기를 동원해 집중호우로 밀려든 토사를 치우는 복구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는 지난 17일 집중호우로 토사가 유출돼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21일 오전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한 아파트에서 굴착기를 동원해 집중호우로 밀려든 토사를 치우는 복구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는 지난 17일 집중호우로 토사가 유출돼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끔찍했던 그날의 악몽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 뒤늦게 소식을 접한 아파트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아파트 주민자치위원회 관계자는 “무너진 야산이 우리 땅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다 해도 이번 사고는 기상청이 200년 만에 한 번 나타날 정도라 인정할만큼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였다. 보상은커녕 복구도 직접 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나”고 언성을 높였다.

경남도와 거제시는 일단 응급 복구에 집중하기로 했다. 경남도 관계자는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에 등록하면 행정안전부 현장 조사 등을 거쳐 확정된다. 이 과정에 (사고 유형이) 바뀔 수도 있다”면서 “기술적 검토나 현장 지원 등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사고 직후 추가 붕괴 우려에 인근 초등학교와 복지시설 등으로 대피했던 입주민들은 지난 19일 주민 대피령이 해제되자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수백t에 달하는 토사가 직격한 104동 주민 119명 복귀 시점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이들은 추가 정밀안전진단 후 복구공사까지 완료돼야 귀가할 수 있는데, 안전진단에만 2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최환석 기자 ch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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