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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합창단 벌인 판 위에서 청년 예술가들 빛났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다소 미흡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젊은’ 에너지가 넘쳤다. 의욕과 도전이 빛났다. 판은 부산시립합창단이 벌였지만, 사실상 주인공은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악장 심채영)과 경성콘서트콰이어(인스펙터 서유민), 동아대합창단(단장 박정훈) 등 100여 명의 청년 예술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시립합창단(예술감독 이기선)이 23일 오후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톨가 카쉬프(1962~ )의 1시간 남짓 걸리는 ‘퀸 심포니’(원제 The Queen Symphony:A symphony in six movements inspired by the music of Queen)를 초연했다. 이날 공연 지휘와 레퍼토리 선정은 시립합창단 임희준 부지휘자가 했다. 합창과 오케스트라 지휘를 함께 공부한 임 부지휘자는 2020년부터 시립합창단 부지휘자를 맡고 있다.
이번 공연이 주목받은 이유는 전설적인 영국의 록 밴드 퀸 음악에 영감을 받은 6악장의 교향곡 ‘퀸 심포니’를 부산에선 처음으로-보도자료는 ‘한국 초연’으로 잘못 배포됐다-선보인 덕분이다. 한국 초연은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2021년 10월 1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가 기록했다. 영국 왕립 음악학교에서 지휘와 작곡을 공부한 톨가는 2002년 11월 6일 영국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이 곡을 세계 초연했다.
특별 연주회는 시립합창단이 주도했지만, 곡은 합창보다 기악에 가깝다. ‘Radio Ga Ga’ 모티브 등과 합창이 나오는 1악장, ‘Love of My Life’의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인 2악장, 첼로와 바이올린이 주고 받는 협주곡이 포함된 3악장, ‘보헤미안 랩소디’ 선율과 ‘We Will Rock You’ 등이 등장하는 5악장을 지나 쉬지 않고 이어지는 6악장의 ‘안단테 소수테누토’는 음 하나하나를 충분히 눌러 느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처럼 장엄한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어우러지며 마무리된다. 곡 성격상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무대 배치도 신경 썼다. 포디엄 바로 앞 정중앙에 그랜드피아노를 두고, 그 양옆으로 오케스트라를 배치했으며, 무대 깊숙이 100명 가까운 혼성 4부 합창단(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파트)이 자리 잡도록 했다. 연주에 참여한 총인원은 170여 명에 이른다. 연주단 규모로 치자면 흡사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을 보는 듯했다. 그만큼 자주 공연되는 곡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다목적홀 부산시민회관 좁은 무대에 많은 연주자가 올라가느라 후면(정면) 음향반사판을 없앴다. 아쉬운 음향이었다. 시립예술단이 주로 이용하는 부산문화회관은 지난달부터 부설주차장 확장 공사에 들어가 올여름 시립예술단 극장 공연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태. ‘2024 서머 판타지’ 타이틀로 진행한 시립합창단 공연은 부산시민회관으로 옮겨서 진행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약 900명의 관객은 5060세대는 물론이고 MZ세대까지 다양했다. 공연이 끝난 뒤 대체적인 반응은 “재미있었다” “신선했다”였지만, “퀸의 유명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교향곡이라고 해서 퀸 노래 한두 곡쯤은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으로 들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 클래식 관현악곡이었다”며 허탈한 미소를 짓는 관객도 있었다.
공연에 참여한 청년 예술인들은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전했다. 경성콘서트콰이어 황인태 베이스는 “시립합창단 선생님들과 함께하면서 소리 내는 질감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배웠다”며 “‘보헤미안 랩소디’ 정도만 알았는데, 새로운 곡을 많이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베르디 레퀴엠’ 공연 이후 시립합창단 공연을 찾기 시작했다는 관객 홍새롬 씨는 “유명 오케스트라가 발매한 음원으로 곡을 찾아서 듣고 왔지만, 라이브 공연은 또 다른 매력”이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공공 예술단의 역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번처럼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청년 예술가에게 새로운 공연 기회를 준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립합창단 특별 연주회는 참 특별했다.
2024-07-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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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이렇게 꽉꽉 차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작은 힘이 모인 소공연장 공연이 부산 문화의 큰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 감동적입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하루하루 음악에 흠뻑 취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부산의 소공연장이 더 흥해서 더 많은 공연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노란색 포스트잇에 꾹꾹 눌러 쓴 소감이 ‘2024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우리 동네 문화살롱 페스타 3rd’ 의견 개진 게시판을 빼곡히 장식했다. 감상평, 개선점 등 뭐든지 적어 달라는 주최 측 요청에 관객이 남긴 메시지였다. 그날 본 공연 소감부터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이나 부산의 작은 공연장에 대한 기대와 주문 등 다양했다.
이달 1일 부산 서구의 ‘문화주소 동방’에서 막을 올린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이 중반을 지나 종반에 접어들고 있다. 올해는 행사 기간이 두 차례(7월과 10월 총 62회 공연 41개 공연장 참여)로 늘었고, 적은 금액이지만 1만 원의 입장료를 받으면서 무료였던 지난해와 상황이 달라져서 혹시나 객석이 차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객석 수는 많지 않지만 공연장마다 만석이다. “서서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귀여운’ 민원에 시달릴 정도다. 심지어 ‘도장 깨기’ 하듯 공연장을 순례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7시 30분 부산 동래구 명륜동 스페이스 움에서 만난 60대의 이경순 씨는 이날 공연 관람이 11번째였고, 이달 말까지 사전 예약을 마친 곳까지 치면 스무 곳은 족히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부산에 살지만 한 번도 안 가 본 곳도 있어서 “부산을 여행하듯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밝혔다.
스페이스 움은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 행사를 주최·주관하는 부산소공연장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은숙 대표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한쪽은 일반 카페이고, 다른 한쪽을 분리해서 전시회를 열고, 매주 금요일마다 기획 공연을 진행한다. 2011년 4월 시작한 스페이스 움 음악회는 지난해 5월 12년 만에 500회를 맞았으며, 이날로 550회를 기록했다.
3년 전 소공연장끼리 연대해 ‘우리 동네 문화살롱 페스타’를 만들었고, 지난해부터는 부산시 지원으로 한 달 내내 부산 어디선가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취지의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을 선보였다. 올해는 함께하려는 공연장이 늘어서 프로그램 공모(심사)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움은 이번에 5인조 오리엔탈 탱고 음악팀 메츠클라의 ‘바모스 탱고(Vamos Tango)-정열을 노래하다’ 공연을 기획해 선정됐다. 김 대표는 공연 시작에 앞서 인사말로 “오늘 여러분을 보면서 가슴 뭉클하다. 매번 이렇게 꽉꽉 차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움은 이번에 평소보다 좌석 수를 늘려서 80석 예약을 받았는데 매진됐고, 서서 관람한 사람 외에도 공연장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관객을 위해 카페 쪽에서 라이브 사운드가 들리도록 했다.
이런 분위기에 붐 업 된 메츠클라는 더욱 열성적인 공연을 펼쳤고, 객석은 환호성으로 넘쳤다. 피아노, 클래식기타, 색소폰,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바리톤 등 5명이 편성을 바꿔 가며 탱고 음악을 중심으로 라틴팝, 샹송, 칸초네를 다양하게 연주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열기는 가시지 않아서 포스트잇 응원 메시지로 이어졌다. “메츠클라만의 편곡 잘 들었어요.” “가장 훌륭한 악기는 사람 목소리라는 걸 오늘 다시 느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준비에 정성을 많이 들인 듯! 힐링하고 갑니다.” “메츠클라, 꼭 기억하고 찾아보고 듣겠습니다.”
연주자(예술가)도 관객(시민)도, 공연 주최자(소공연장)도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상의 문화공간에서 함께 감동받고 행복해지기를’ 소원하던 김 대표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다. 오늘도 부산 어디선가 ‘원먼스 페스티벌’ 공연은 이어질 것이고, 그곳이 우리 동네라면 크게 마음 한번 내어 볼 일이다. 공연장 문턱을 넘어서는 일은 각자 마음 먹기에 달렸다.
2024-07-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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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안무가 캠프 3년 만의 성과… 무용으로 부산-칸 잇는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지난해는 한국에 와서 처음 공연을 하면서 한국을 새롭게 발견했다면, 올해는 댄서들, 즉 무용 예술가에 대한 발견이 있었습니다. 다음 여정은 한국, 부산에서 만난 무용수들을 제 고향 프랑스 칸으로 데려가서 우리 무용단과 함께 공연하는 일입니다. 프랑스와 한국, 부산과 칸이 부산이 영화뿐 아니라 무용예술로 연대와 협력을 꽃피우고 싶습니다.”(에르베쿠비무용단 대표 겸 안무가 에르베 쿠비)
“부산과 칸 협력 프로젝트가 비로소 가동되는 것이죠. 쿠비가 조심스러운 마음에 굉장히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이번 쇼케이스 작품은 이미 내년 칸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받았습니다. 이번에 작업한 몇몇은 정단원 제안을 받을 것 같고요. 이런 게 바로 부산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창작·유통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습니다.”(부산국제무용제 신은주 운영위원장)
아직은 모든 게 ‘진행 중’이지만 부산국제안무가캠프 개최 3년 만에 이룬 놀라운 성과라 할 만했다. 지난해 부산국제무용제(BIDF) 전막 초청작으로 영화의전당에서 아시아 초연한 에르베쿠비무용단의 ‘낮이 밤에 빚진 것’ 공연을 볼 때만 해도 “대단한 작품을 부산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올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부산국제무용제조직위원회는 에르베쿠비무용단의 대표이자 세계적인 명성의 안무가 에르베 쿠비를 부산으로 초청해 지난 3일부터 16일까지 제3회 BIDF 부산국제안무가 캠프를 진행했다. 쿠비는 마스터안무가로, 같은 무용단의 조안무가 훼쌀 함락, 무용수 압델가니 훼랃지와 마마정김이 지도위원으로 수고했다. 창·제작 요청을 칸시(市)로부터 받으면서, 서울이 아닌 부산(BIDF)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부산 공연이 인연이 됐다.
31명의 지원자 중 최종 선발된 14명의 남녀 무용수는 쿠비가 이끄는 2주간의 캠프를 통해 안무법에 대한 마스터클래스와 안무 창작품 제작 과정에 참가는 특별한 경험을 쌓았다. 14명 중 절반이 부산 출신이고, 나머지는 서울 대구 등 전국에서 선발했다.
지난 16일 오후 부산시민회관 4층 연습실에서 열린 쇼케이스 공연은 이번 캠프를 마무리하는 결과물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날 쿠비는 에르베쿠비무용단의 최신작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무적의 태양신)’에서 영감을 받아 재창조한 ‘솔 인빅투스의 불빛’이라는 10여 분짜리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자리에는 주한프랑스대사관 루도빅 기요 문화교육과학참사관, 현대무용가 박은화 부산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비보잉이 가미된 현대무용 공연은 짧았지만 감동적이었다. 박 교수는 “짧은 시간 완성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기에 놀라웠다”며 “댄서들이 움직이는 매 순간이 불꽃 같았고, 몇몇 제자를 포함해 모든 댄서가 행복하게 춤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용수로 참가한 황예인은 “쿠비 안무는 섬세함이 남달랐다”면서 “관객이 보는 옆모습까지 신경 쓰고, 연습 때도 무용수마다 일일이 찾아와 코멘트 했다”고 감사를 전했다. 백서현은 “함께 춤추고, 즐겁게 춤추라고 늘 강조한 쿠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고 말했고, 유예리는 “지금까지 군무를 많이 춰 봤지만 2주간 워크숍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라고 언급했다. 한기태는 “춤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됐으며, 이런 교류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쿠비는 “한국 댄서들은 표현력이 참 좋은 편이다. 부족한 점도 없진 않지만, 굉장히 빨리 배우고 익히면서 부족한 점을 지워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소 1년에서 2~3년이면 훨씬 좋은 댄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기에 우리 무용단의 정단원으로 캐스팅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르베쿠비무용단은 다국적 무용단으로 유명하다. 현재 30여 명의 단원이 있는데 20여 국적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인 단원도 2명이 있었다.
신 운영위원장은 “이런 기회를 통해 한국, 특히 부산에서 세계적인 무용가의 지도를 받고, 작품 제작 과정에 함께하고, 더 나아가 유럽 현지 무대에 함께 설 기회를 얻거나 단원으로 스카우트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라며 선배 무용가로서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또 “앞으로도 부산의 재능 있는 예술 인재를 발굴해 국제 무대와 연결하고, 동시에 작품 제작과 유통의 매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한편 기요 참사관은 “무용 교류와 별개로 오는 9월 부산(홍티아트센터)에서 부산시와 칸시가 협력한 프랑스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3개월간 문을 연다”면서 “부산과 칸의 문화협력이 앞으로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2024-07-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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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춤에서 현대 무용 못지않은 '파워' 느끼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오랜만에 열정적인 춤 무대를 만났어요” “숨소리까지 작품이 되는 걸 알고 경이로웠습니다” “빛과 음악,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돋보인 무대였습니다” “한국 창작 무용과 라이브 재즈 음악 조합이 인상 깊은 공연이었습니다” “‘빙빙’의 의미를 어떻게 풀었는지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대본이 약했던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지난 17~18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만난 부산시립무용단 제89회 정기 공연 ‘빙빙 Being Being’(안무·연출 이정윤 예술감독, 부산일보 5월 16일 16면 보도)에 쏟아진 무용 전문가를 포함한 관객 반응이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5월 제87회 정기 공연이자 창단 50주년 기념 작품 ‘1002 Nights_천 두 번째의 밤-춤추는 세헤라자데(셰에라자드)’ 이후 근 1년 만에 이 예술감독 안무·연출로 만난 시립무용단 신작 공연인 데다 부임 4년 차를 맞은 예술감독이 직접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관객은 이틀간 900명 가까이 관람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공연 시간 75분 내내 무대를 지킨 이 예술감독이 무용수로서도 중심을 잘 잡아준 덕분에 작품의 완성도나 관객 호응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뛰고, 구르는 무용수 모습에서 객석의 관객은 물론이고 함께 뛴 단원들조차도 감동이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시립무용단 안무자를 역임한 A 무용가는 “(무용수들) 움직임이 되고, 춤 본연에 집중한 무대여서 보기 좋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반복된 패턴 안무를 조금만 줄이고, 이정윤 예술감독 독무를 부각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었는데, 예술감독이 직접 무용수로 뛰면서 자기 분량을 늘인다는 게 부담스럽긴 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B 무용가는 “예술감독이 풀 타임으로 뛰는 공연이었기에 단원들은 더욱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민간 무용단은 이제 무용수가 없어서라도 저렇게 대형 작품을 만들거나 공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립무용단 역할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지에서 공연을 보러 온 C 무용가는 “이전 공연보다 무용수들 기량은 확실히 발전했고, 열정적으로 다가왔다”면서 “다만 춤의 모티프가 된 ‘강강술래’의 ‘달’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오로지 눈에 보이는 한 가지로만 드러내니까 감흥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즉, 달을 해석하는 게 자기 삶과 어떻게 연결해서 뭘 보여주고자 하는지, 그걸 철학적으로 어떻게 풀었는지가 안 보이니까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D 무용가는 “색소폰과 일렉트릭 기타 등 한국 창작무용으로선 드물게 라이브 재즈 연주와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한 건 신선했는데 색소폰 음향이 다소 강해서 여운을 즐기기엔 다소 아쉬웠다”고 밝혔다.
시립무용단 강모세 수석은 “입단한 지 20년이 넘도록 여성 무용수들 비중과 크게 다르지 않게 남자 무용수들끼리 단독 무대를 30분 넘게 가진 건 처음이었는데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예술감독님 옆에서 협력안무도 겸하면서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역시 협력안무와 무용수로 함께한 김미란 부수석도 “다들 힘들다고 난리였고 저도 심장이 아릿했는데 이건 제작 과정과 연습 과정을 다 알기에 더 와닿은 게 아닐까 싶다”고 털어놨다.
음악 작업을 처음 함께한 손성제(색소포니스트 겸 작곡가) 음악감독은 “무용음악은 처음이었는데 라이브로 연주하면서도 환상적이었다”며 “이정윤 예술감독은 천재 같다”고 감탄했다.
한편 이번 시립무용단 정기 공연엔 지역의 원로 무용가와 무용학도들도 꽤 많이 공연장을 찾아 응원과 덕담을 나누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2024-05-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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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아이돌’ 김준수가 부산서 토크 콘서트 연 이유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흔히 판소리의 3대 구성 요소는 ‘창(소리), 아니리(말), 너름새(발림, 몸짓)’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추임새까지 넣어서 관객과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리꾼 김준수(32·국립창극단 부수석 단원)는 ‘소통의 음악’으로서 판소리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를 썼다. ‘국악계의 아이돌’로 통하는 김준수가 지난 14일 오후 부산에 왔다. 부산시민회관이 기획한 토크 콘서트 ‘살롱 드 국악’ 단독 진행을 위해서다.
김준수는 이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뿐 아니라 자기 장기인 소리꾼으로서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 소리를 선보였다. 특히 앙코르로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를 땐 록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객석까지 불을 환하게 밝힌 가운데 다 같이 기립해 손뼉과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얼씨구, 좋~다, 잘한~다”를 연발했다. 객석 점유율도 약 70%로, 첫 시도치고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이날 김준수가 소극장 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런데 명색이 소리꾼인데 고수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무대에 올랐다. 옷차림도 예상 밖이었다. 흰색 상·하의에 멋스러운 브라운색 재킷을 걸쳤다. 의아해하는 관객을 향해 김준수는 첫마디를 뗐다.
“소리 하는 사람이어서 한복 차림으로 인사드리는 게 당연할 수 있는데 저는 요즘 사복을 즐겨 입습니다. 아직 우리 국악 판소리가 왠지 고루하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분이 많더라고요. 일상복처럼 가까이 있는 음악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편한 복장으로 무대에 섭니다. 고수는 왜 없냐고요? 여러 음악을 MR 반주로 들려드릴 겁니다. 기대되시죠?”
전남예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재학 시절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 춘향전’과 국립창극단의 ‘배비장전’에서 객원 주역으로 뽑혔던 그는 3학년이던 2013년 22세의 나이로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당시 “창단 51년 만의 최연소 입단”으로 화제가 됐다. 이후 ‘메디아’ ‘배비장전’ ‘오르페오전’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 등 굵직한 신작의 주연을 꿰차며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판소리라는 걸 접하고 너무 신기한 마음에 부모님을 졸라서 소리에 입문했습니다. 소리와 인연을 맺은 뒤에는 명창에 대한 꿈을 꾸면서, 이 시대의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또 공감할 수 있는 소리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열심히 소리 공부를 한 덕분에 예술고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는데, 창극이라는 또 다른 무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전통 소리를 하면서 연기도 하는 창극 배우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는 별도의 사회자가 있거나, 대담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김준수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격으로 원맨쇼를 벌였다. 심지어 고수조차 대동하지 않은 채 혼자 무대에 올랐다. 토크 콘서트가 끝나고 무대 뒤에서 만난 김준수는 “판소리 완창은 혼자 해 봤어도 이런 토크쇼는 처음이어서 많이 긴장했다”고 털어놨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처음 부산시민회관으로부터 ‘살롱 드 국악’ 출연 제의를 받고 흔쾌히 수락한 이유도 “최근 국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대중과는 거리가 있고,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국악 대중화를 향한 그의 노력과 열정은 듣던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김준수는 국립창극단 배우로서 본연의 업무나 소리꾼 공연 외에도, KBS1 ‘국악한마당’을 비롯해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3, KBS2 ‘불후의 명곡’, KBS1 ‘열린음악회’, MBC ‘복면가왕’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고, 음반과 음원 활동, 심지어 뮤지컬에도 출연하며 국악인으로서 외연을 확장하는 중이었다. “이 모든 활동이 사실은 제가 넓혀가고 싶은 무대이기도 하지만, 국악을 어려워하는 관객들과 거리를 좁히겠다는 저의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이날 공연은 소리꾼들이 목을 풀기 위해서 혹은 그날의 컨디션을 미리 체크하기 위해 부른다는 단가(사철가)부터 시작해 JTBC ‘풍류대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불렀던 ‘살아야지’, 그리고 에스닉 밴드 ‘두번째달’과 함께 작업한 판소리 <춘향가> 앨범 가운데 ‘적성가’와 ‘이별가’, ‘어사출두’ 등을 들려줬다. 한복 대신 일상복을 입고, 고수의 북장단 대신 MR 반주로 부르는 소리가 익숙하진 않았지만, 신선했다. 관객 만족도도 상당히 높아 보였다.
김준수는 현재 자기가 몸담은 국립창극단 작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 판소리는 12바탕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지금은 5바탕만 존재하고 나머지 7바탕은 유실돼 국립창극단에서 7바탕 복원 시리즈도 진행했습니다. 특히 지난 2021년 국립창극단에서 공연한 ‘리어’는 지난달 재연까지 마쳤는데 올 10월엔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영국의 바비칸센터 무대에도 오르게 됩니다. 우리 창극을 알릴 기회여서 모든 단원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부산시민회관 안주은 시민예술팀장은 “무대에서 공연으로만 만나는 예술가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며 “이야기도 듣고 소리도 들으면서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국악에 시민들이 좀 더 가까워지길 바랐다”고 취지를 밝혔다. 안 팀장은 또 “단순히 강연하는 일반적인 아카데미를 뛰어넘어 예술가가 살아온 이야기와 퍼포먼스를 함께 경험하며 관객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는데 결과가 성공적이어서 예술가의 이야기 시리즈는 내년에 다른 장르로 기획해 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준수도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우리 판소리가 절대 어려운 음악이 아닙니다. 여기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국악 공연을 보실 때 항상 오늘 같은 추임새로 함께하면 공연자도 힘이 나고 그 판을 만들어 나가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시도하겠지만 지켜봐 주십시오. 다음엔 꼭 창극 공연으로 부산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살롱 드 국악’ 2회 차는 오는 6월 27일 경기소리꾼 이희문의 ‘내 민요는 섹시하지’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형형색색의 가발, 하이힐 등 독특한 비주얼로 자신만의 개성을 선보이는 이희문은 2017년 퓨전국악으로 한국 최초로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 ‘Tiny Desk Concert’에 초대받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생긴 대로 살아간다는 ‘B급 소리꾼’ 이희문은 흔히 생각하는 민요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벗어난 무대로 ‘파격의 아이콘’, ‘국악계의 이단아’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024-05-1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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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 중인 미술관 로비에서 '다시 만나기' 마지막 콘서트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미술관에서 음악과 미술이 융합되는 실험을 시도했다. 같은 영상 작품을 보고 난 뒤 네 명의 작곡가는 각각 곡을 썼고, 이것을 미술관에서 초연한 것이다. 처음은 아니지만,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장면도 아니다. 1998년 개관 이후 25년 만인 올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는 부산시립미술관(BMA)이 마지막 스테이지로 현대 미술과 현대 음악을 느끼고 감상하는 ‘로비 콘서트’를 선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달랐다.
지난 7일 오후 5시 BMA 본관 2층 ‘2024 로비 콘서트-공간, 깊이 나누기’ 현장.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BMA후원회 (사)비마엔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종호 센텀종합병원 이사장, 부산메세나협회 화승코퍼레이션 현지호 부회장, 시민 관람객 등 100여 명이 모였다. 예정에 없던 박형준 부산시장도 자리해 무게감을 더했다. 이들은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아쟁이 따로 또 같이 연주하는 현대 창작곡을 들으며 시립미술관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게 됐다.
창작곡 연주는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멤버들이 맡았다. 이날 음악회 모티브는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인 전준호(55) 작가의 2007년 디지털 애니메이션 ‘하이퍼리얼리즘(형제의 상)’ 단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53초)이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형제의 상’을 모티브로 제작했다. 이 조형물은 한국전쟁 시기 남한의 국군 장교로 참전한 형과 조선인민군 병사로 참전한 동생이 한 전투에서 재회하는 순간을 소재로 삼았다. 전 작가는 특히 오랜만에 만난 형제가 서로 감격의 재회를 누리지 못하고, 홀로 허공을 안은 채 왈츠를 추는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분단국으로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화해의 소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슬프면서도 아이러니했다.
이 작품을 재해석한 창작곡을 써낸 네 명의 쟁쟁한 작곡가는 장석진, 배동진, 한대섭, 안성민이다. 안성민은 비올라와 첼로를 사용해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를 선보였고, 한대섭은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워크(Walk)’, 배동진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이어 클라리넷까지 넣은 ‘백 앤 포스(bank and forth)’, 장석진은 아쟁,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솔저 인 화이트 그라운드(Soldiers in White-Ground)’를 각각 작곡했다. 연주 시간도 4~5분짜리가 있는가 하면 11~13분에 이르는 곡도 있었다.
작곡가들은 ‘두 형제’가 가진 내적 아픔에 주목하면서도 각기 다른 악기와 음계로, 작품을 표현했다. 상징과 은유, 풍자로 드러난 현대 미술에 비해 현대 음악은 좀 더 비극적인 느낌으로 발현됐다. 특히 장석진 곡이 연주될 때는 전 작가 영상이 함께 화면에 송출됐는데 낮은 음색의 첼로와 아쟁, 콘트라베이스가 오열하는 듯 묵직하게 빚어낸 음악에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론, 현대 음악이 가진 특징이자 단점 중 하나인 난해함이 먼저 감상한 미술 작품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진 면도 없지 않았다. 현대 미술과 현대 음악의 만남이 여러모로 재미난 실험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은 하고많은 소장품 중에서도 전 작가를, 전 작가 작품 중에서도 ‘하이퍼리얼리즘’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전 작가야말로 국립현대미술관 ‘오늘의 작가상’을 비롯해 세계 3대 비엔날레에 모두 초청되는 등 ‘미술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부산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란 점에서 더욱 자랑하고 싶었고, ‘하이퍼리얼리즘’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열린 해석과 변주가 가능한 작품이어서 미술과 음악의 융복합을 시도하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음악회에 참석한 전 작가는 “부족한 작업에도 훌륭한 연주자와 작곡가를 연계한 행사를 시립미술관과 후원회에서 마련해주셔서 감개무량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전시 공간 미술관이 시간의 예술 음악을 만나, 더욱 웅숭깊어졌다. 약 1년 반 뒤에 모습을 드러낼 미래형 융복합 미술관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커졌다.
2024-05-0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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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공수한 ‘포르테피아노’가 들려준 옛 선율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전국에 몇 대 없다는 ‘포르테피아노(fortepiano)’를 부산으로 공수하기 위해 몇 사람이 머리를 맞댔는지 모른다. 단 한 곡의 연주를 위해서였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두 대의 포르테피아노가 무대에 오른 화제의 공연은 지난 20일 오후 ‘금정클래식위크’ 둘째 날 네 번째 공연으로 선보인 ‘바로크와 고전 사이, 질풍노도’ 2부 순서였다. 이날 연주곡은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작품번호 365. 정말이지 생전 모차르트가 곡을 만들면서 생각했을 것 같은 음색을 드물게 느껴본 시간이었다.
포르테피아노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쓰였던 고(古)악기로, 모차르트가 가장 사랑했던 악기로 알려져 있다. 현대 그랜드 피아노보다 현이 가늘고 음역이 좁다. 포르테피아노 이전에 연주하던 하프시코드(독일어로는 쳄발로)와도 달랐다. 음악회가 끝난 뒤 직접 들어보니 명징하고 투명한 음색이다. 많은 부분이 나무로 되어 있어 음량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섬세한 뉘앙스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표현 수단이 되기도 한단다.
연주에 앞서 무대로 나온 ‘금정클래식위크’ 손일훈 예술감독과 권민석 지휘자는 이날 공연의 취지를 소개하는 한편 그 귀하다는 포르테피아노를 특별 언급했다. 권 지휘자는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고음악과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이력도 있다.
“오늘 음악은 바로크 작곡가 중 유명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그의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그리고 아들 바흐의 친구인 요한 요하임 크반츠를 지나 모차르트까지 이어지는 시기를 조명하고자 준비했습니다. 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옛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알테무지크서울’을 특별히 모셨고요. 평소 보기 힘든 하프시코드와 기타처럼 생긴 테오르보도 함께 연주합니다. 무엇보다 두 대의 포르테피아노를 한 번에 연주하는 것은 아마도 금정이 국내 처음일 겁니다.”
객석에선 놀라움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관객 시선은 일제히 벽 쪽에 붙여서 세워 놓은(2부 순서용) 포르테피아노로 향했다. 아닌 게 아니라 두 대의 포르테피아노를 부산으로 ‘모셔 오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웠다. 일단 개인 소유주를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었고(서울~부산 원거리 이동에 따른 파손 우려가 큰 데다 국내 보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만에 하나 파손이 됐을 때 변상 여부도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단 한 곡이라도 제대로 된 연주를 들려주고픈 손 예술감독과 권 지휘자와 금정문화회관 김유니 공연팀장은 서로서로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말하면서 두 소유주를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박종해·김다솔 두 피아니스트의 포르테피아노 연습 광경을 영상으로 올린 SNS에는 “왜 이런 귀한 연주를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만 하느냐”는 아쉬움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손 예술감독은 “금정문화회관 콘서트홀은 전문 음악홀은 아니지만 음향이 꽤 좋은 편이고, 객석 규모도 아담해서 포르테피아노 연주를 충분히 소화할 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해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날 박종해는 1986년 데이비드 자크 웨이가 제작한 18세기 후반 요한 안드레아스 스타인 모델 포르테피아노를, 김다솔은 2012년 토마스 슐러가 제작한 19세기 초 안톤 발터 모델을 연주했다.
이날 연주에는 ‘내추럴 호른’(프랑스 원형 호른)도 ‘깜짝’ 등장했다. 금관악기 중에서도 중음역에 특화된 게 호른이지만, 내추럴 호른은 더욱더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목가적이면서도 풍부한 음색이 현대 호른과는 다른 소리를 냈다. 연주자가 벨 안에 손을 집어넣고 음정과 음색을 수동 조절한다는데 꽤 까다로운 연주라고 했다. 이런 크고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감동의 음악회를 선사한 셈이다. 부산은 머지 않아 음악 전용홀 시대를 여는 만큼 기존 공연장의 변신 노력도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도 이번 시도는 주목할 만했다.
금정문화회관이 주최한 ‘금정클래식위크’ 음악제는 올해 첫선을 보였으며, ‘터치’, 즉 건반악기를 주제로 지난 19일 오전 11시 ‘어린이를 위하여Ⅰ’ 연주로 개막했다. 총 14회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오는 26일까지 계속된다. 남은 공연은 △25일 오후 7시 30분 금빛누리홀=WE필하모닉스가 연주하는 ‘영화음악과 클래식’(4월 25~26일 오전 11시 단체 관람은 별도) △26일 오후 2시 은빛샘홀=배진우 피아노 리사이틀 ‘패러독스’ △26일 오후 7시 30분 금빛누리홀=피아노 트리오(바이올린 박규민, 첼로 문태국, 피아노 박종해)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 △27일 오후 9시 야외광장=밤에는 재즈Ⅱ(김동기 트리오) 등이다.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석사 및 최고 과정을 마친 손 예술감독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세련된 감각으로 작품 창작 활동뿐 아니라 음악감독 역할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 중이다. 현재 독일 본에서 거주하며 국내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4-04-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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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 ‘싱크 음악’으로 수익 올리는 방법 ‘눈길’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할리우드에 가지 않고도 할리우드 작곡가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부산 콘텐츠 코리아랩 5층 복합공간. 50여 명의 참석자들은 싱가포르에서 날아온 ‘싱크 음악’ 작곡가 그레고리 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눈을 반짝였다. 탄은 자신을 “영화음악, 영화 트레일러, 광고 트레일러를 쓰는 데 특화된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에서도 싱크 음악으로 특화된 작곡가는 2명에 불과하고, 싱크 음악이 영화음악 작곡가에겐 하나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는 20~30대가 다수를 이뤘지만,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있어서 왔다는 어르신도 여러 명 눈에 띄었다. 음악 혹은 작곡을 전공한 사람,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듯하지만, 음원 사용에 대한 고민이 많은 유튜버들도 다수 참석했다. 영화 관련 일을 하는 이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행사는 지난해 부산시의 ‘월드클래스 문화예술 분야 글로벌 리더’ 청년으로 선정된 안후윤(아트우드 프로덕션 대표) 영화음악 작곡가가 마련한 ‘월드클래스 글로벌 네트워킹 시리즈 인 부산’ 첫 번째 세미나. ‘할리우드를 가지 않고도 할리우드 음악 콘텐츠를 만들며 지속적인 수입을 창출하는 방법-지속 가능한 음악’을 주제로 다뤘다. 그리고 서로 간의 네트워크를 주선했다.
싱크 음악이라는 분야도 생소했지만, 이걸로 지속적인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게 눈길을 끌었다. 흔히 싱크는 영화나 광고, TV 프로모션, 게임 등에 배경음악으로 삽입하는 것으로 ‘싱크로나이제이션(syncronization)’의 줄임말이다. ‘사운드를 그림과 일치시켜 배치하는 작업’을 뜻하는 영화용어이기도 하다. 탄은 싱가포르에 살면서도 미국 할리우드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싱크 음악 작곡가가 주로 일하는 기업은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 등입니다. 이들은 작곡가와 직접적으로 일하는 클라이언트는 아닙니다. 작곡가는 대개 ‘뮤직 퍼블리셔’, 즉 음악 출판사를 통하게 됩니다. 즉, 뮤직 퍼블리셔는 제 음악을 팔아주는 영업자인 셈입니다. 대기업에 제 음악을 피칭하고 대신 팔아주고, 커미션을 받아서 저와 분배하는 구조이죠. 보통 퍼블리셔와 50 대 50으로 나눠 갖습니다.”
탄은 싱크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외에도 △싱크 음악 제작 △영화음악과 싱크 음악의 차이점 △내 음악 피칭하는 실전 방법 △음악 비즈니스의 최신 동향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예시를 보여 주며 설명했다.
“싱크 음악에는 보통 인트로, 테마, 클라이맥스로 구성되는 3가지 파트가 있습니다. 싱크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이 음악이 얼마나 편집하기 쉬운가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3가지 파트 사이사이에 브레이크(휴식)가 있습니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 사일런트(조용한) 구간을 집어넣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음악처럼 들리게 하는 것이 작곡가의 중요한 역량입니다.”
영화음악과 싱크 음악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싱크 음악과 영화음악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영화음악이 프로덕션 예산 안에 들어가는 반면, 싱크 음악은 마케팅 예산에 들어갑니다. 영화음악은 대개 하나의 영화만을 위해 특별히 쓰여진 곡으로, 영화 장면을 보지 않고 음악만 들으면 이게 무슨 음악이지 할 때가 있지만, 싱크 음악은 좀 더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음악을 가지고 여러 프로젝트에 여러 번 재사용 가능합니다.”
탄이 만든 비디오 게임 트레일러 ‘워크래프트’ 등 여러 편을 감상했다. “트레일러(예고편) 음악을 들을 때 또 하나의 특징은 사운드 이펙트 뒤에 배경음악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음악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화면 장면과 싱크 음악이 놀랍도록 잘 맞아떨어지면서 드라마틱하게 여겨졌다.
뮤직 퍼블리셔를 찾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기 경험을 공유했다.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구글 검색에 ‘음악으로 돈 버는 방법’을 쳤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100명 정도 되는 퍼블리셔에게 직접 이메일로 연락했습니다. 돌아온 회신은 3명이었고, 그중 1명만 오케이했습니다. 프로듀서들의 ‘노(no)’라는 거절이 업계에선 워낙 흔한 일이니까 여러분도 마음 상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 도전하십시오.”
마침내 탄은 워너채플뮤직과 퍼블리셔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것조차도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할리우드 뮤직 퍼블리셔와 같은 나라에 살지 않기에 이메일 접촉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링크드인이나 IMDb로 찾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메일은 최대한 간결하게 보내기 바랍니다. 학력이나 외모,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3가지 트랙에 대한 스트리밍 링크를 보내면 충분합니다. 3개의 예시를 보고 음악이 마음에 든다면 더 보내달라고 직접 요청할 것입니다.”
탄은 또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는 수익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얼마나 많이 버냐고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 정말 다양합니다. 수익률 편차가 너무 큽니다. 예를 들어서 비디오 게임의 경우 이 싱크 음악이 어디에 올라가는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소셜미디어용이라면 조금 적을 것이고, 광고용이라면 조금 더 많이 받습니다. 만약에 할리우드 영화 같은 경우라면 수천만 원에서 1억 원대까지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보통 한 편의 영화에는 8개에서 13개의 트레일러를 만드는데, 편당 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정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편 탄은 할리우드 영화음악 예고편(분노의 질주9, 쥬라기 월드:도미니언, 피파 월드컵,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게임 음악(워크래프트) 그리고 국내 TV 방송(도시어부, 골 때리는 그녀들) 싱크 음악을 만들었다.
2024-04-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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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즐기는 클래식, 입도 귀도 호사했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외국 문화단체에선 이런 식의 후원 기금 마련 디너 클래식 콘서트를 더러 개최하는데, 지역에선 시도를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직은 분위기 형성이 안 된 때문이겠죠!”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은 22개 테이블에 나눠 앉은 155명의 초대 손님으로 가득 찼다. 부산오페라단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진규 드림문화오페라단 단장과 4명의 성악가가 마련한 ‘2024 신년 디너 콘서트’이다. 장 단장 등은 코로나19 발발 이전에도 두 차례 이런 행사를 열었지만, 호텔 연회장에서 ‘신년’ 음악회 형식으로 클래식 ‘디너 콘서트’를 연 것은 처음이다.
소위 요즘 잘나가는 트로트 가수나 티켓 파워 있는 서울의 유명 연주자를 부른 것도 아니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4명과 1관 편성 오케스트라 반주만으로 여는 십수만 원짜리 신년 디너 콘서트여서 얼마만큼 호응이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호텔 대연회장 대관과 디너 경비, 아티스트 개런티 등 주요 경비를 제하고 나면 크게 남는 것도 없지만 일단 시도해 보자 싶었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년도 드림문화오페라단에 보여준 후원자들의 관심과 성원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주로 1명의 호스트가 7명이 앉는 1개의 테이블을 책임지는 식이다. 특정 연주자를 후원하는 테이블이 있는가 하면, 모 이비인후과는 원장이 간호사 등 직원들을 데리고 왔다. 어떤 기업인은 가족 친지를 자기 이름의 테이블에 초대했으며, 친구끼리 삼삼오오 한 테이블을 채운 경우도 보였다.
정찬이 제공된 코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본격적으로 음악회가 시작됐다. ‘4인 4색’의 흥겨운 음악회가 90분간 이어졌다. 장 단장은 “오늘 여러분은 클래식 공연도 즐겁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손바닥이 짝짝 갈라지도록 손뼉도 세게 쳐 달라”고 당부했다.
공연은 신년 음악회 단골 레퍼토리 ‘라데츠키 행진곡’를 비롯해 오펜바흐 ‘캉캉’ 연주로 시작했다. 무대 위 LED 디스플레이에는 시시각각 배경 화면이 바뀌었다. 예를 들면 라데츠키 행진곡이 흐를 땐 오스트리아 빈 풍경이 펼쳐지고, 캉캉 연주 땐 파리 에펠탑이 등장했다.
이윽고 성악가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소프라노 왕기헌이 무대가 아닌 객석 맨 뒤에서 등장했다. 오페레타 ‘박쥐’ 중 ‘웃음의 아리아’를 부르면서 객석을 통과해 무대에 올랐다. 메조소프라노 이지영, 바리톤 강경원, 테너 김준연이 차례로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네슨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들 역시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나타났고, 아리아 성격에 따라 즉석 오페라 연기를 펼치자 객석에선 웃음과 환호성이 터졌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배경 화면이 영국 런던으로 옮겨가 ‘위풍당당 행진곡’이 연주되기 시작하자 객석에서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일반 공연장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성악가들은 혼자서, 혹은 둘이서, 또는 넷이서 노래했다. 오페라 아리아나 클래식 곡이 어려운 분들을 고려해 ‘대성당들의 시대’(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뮤지컬 인기 음악도 추가했다.
특히 공연 마지막에 이르러 ‘축배의 노래’와 ‘볼라레’ 연주가 시작되자 대연회장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노래를 부르던 성악가들과 초대 손님이 즉석에서 왈츠를 추고, 관객은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이날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은 장 단장은 성악 전공도 살려서 지휘하다 말고 마이크를 잡고 ‘볼라레’를 함께 불러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부산에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해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전업 음악가로 사는 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녹록지 않다. 하물며 민간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건 더더욱 그러하다. ‘클래식계의 홍 반장’을 자처한 장 단장의 이번 시도는 그런 점에선 눈여겨볼 만하다. 지원 기금만 바라보며 공연 기회를 기다리기엔 지금 우리의 문화계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다.
이날 누군가의 초대로 테이블을 채운 분이 내년엔 호스트가 되어 다른 게스트를 자기 테이블로 초청할 수 있고, 그런 분이 하나둘 모여서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긍정적이겠다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이날 처음으로 맞닥뜨린 성악가 5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서는 공연장으로 달려갈 수도 있겠다.
이날 후소산기(주) 최흥수 회장은 후원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특별 출연해 드림문화오케스트라 반주로 우리 가곡 ‘그리운 마음’을 노래했다. 최 회장은 “정말 많이 떨렸다”면서도 “예술가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이런 식의 기금 마련 디너 콘서트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단장도 “오늘 제가 귀중한 팁을 하나 얻었는데요. 이렇게 모인 김에 우리도 해외에서처럼 기부 문화에 동참하고, 여기서 모인 수익금으로 다른 사회적인 활동을 해도 참 좋겠다 싶네요”라고 여운을 남겼다.
2024-01-3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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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관현악으로 ‘라데츠키 행진곡’… 무대·객석 혼연일체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신년음악회에선 거의 빠지지 않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지난 24일 오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 열린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특별 연주회 ‘2024 신년음악회, 청룡이 나르샤’의 앙코르곡으로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국악관현악 편곡으로 시립국악관현악단이 처음으로 들려준 라데츠키 행진곡은 관객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해금과 대금, 피리, 가야금, 아쟁, 거문고, 타악… 그리고 박자에 맞춰 열렬한 박수를 보낸 관객 신명까지 더해져 무대와 객석은 혼연일체가 된 듯했다.
물론 앙코르에 앞서 2부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신모듬’(작곡 박범훈)이 끌어올린 에너지가 컸다. 이날 시립국악관현악단은 40분 이상 소요되는 ‘신모듬’ 전 악장(풍장-기원-놀이)을 처음으로 연주해 객석은 후끈 달아올랐다. 1부 연주 때 심각한 표정 일색이던 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조차 사물놀이 협연자가 내부자(북 최정욱·꽹과리 이주헌·장구 최오성·징 박재현)인 덕분인지 희색만면한 모습으로 연주해 보는 이들도 즐거웠다.
게다가 이날 관객은 약 1100명으로 시립국악관현악단으로선 근년에 없던 기록이다. 공연 1시간 전부터 대극장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런 분위기에 고무된 덕분일까. 라데츠키 행진곡 앙코르 연주에 앞서 이동훈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는 마이크도 없이 입을 열었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이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습니다. 올해 첫 공연부터 2층, 3층까지 채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2월까지 매달 이렇게 오실 거죠? 제가 지난해 송년음악회 때 탬버린을 친 뒤 걱정입니다. 이번 공연에는 또 뭘 보여줘야 하나 싶어서요.”
지난해 12월 송년음악회 때 단원들도 모르게 준비한 ‘탬버린 댄스’로 즐거움을 선사한 이 예술감독을 기억하는 관객 사이에선 웃음보가 터졌다. 당시에도 “권위를 내려놓은 지휘자” “국악 공연이 맨날 이러면 대박 날 것 같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그 기운이 신년음악회까지 이어질지 예상 못 했기에 한층 사기가 오른 듯했다.
더욱이 송년음악회는 이희문과 ‘놈놈’(조원석·양진수), 동양고주파 등 협연자들이 워낙 탄탄해 어느 정도 예상된 인기였지만, 신년음악회는 유명세를 치를 만한 협연자를 내세운 것도 아니어서 놀란 것도 사실이다. 첫 곡 ‘비나리’(작곡 이동훈)는 임원식 성남시립국악단 타악 부수석과 ‘사물놀이 마당’이 풍물 협연을 했고, 나머지 협연자(남도민요 박성희·정선희,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사물놀이)는 자체 해결했다.
다만, 40주년을 맞는 해의 첫 연주회여서 ‘무료 관람’을 어렵사리 결정했는데 그 영향도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무료라고 해서 무조건 많은 관객이 오는 것도 아니어서 걱정이 없진 않았다. 예술단운영팀 조성일 부장은 “지난 2일 티켓 오픈 첫날 800장가량이 나가고 그다음 주에 곧바로 매진되는 걸 보고 긴가민가했다. 오히려 무료다 보니 ‘노 쇼’가 걱정돼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까지 못 보게 될까 봐 여러모로 애썼지만 공연 임박해 나오는 취소 표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연이 끝난 뒤, 로비에선 지휘자와 일부 단원이 관객 요청으로 함께 사진을 찍거나 사인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소통하는 지휘자’를 자처한 이 예술감독과 시립국악관현악단의 의욕 넘치는 행보는 저절로 다음 연주회를 기약하게 했다. 하지만 국악관현악단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음향’ 문제는 이날 옥에 티로 지적됐다. 국악기는 서양악기보다 음량이 작아서 마이크와 스피커 등 음향 장비를 활용해 음향 균형을 맞추는데 이날 공연에선 만족스럽지 못했다.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2024-01-28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