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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공수한 ‘포르테피아노’가 들려준 옛 선율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전국에 몇 대 없다는 ‘포르테피아노(fortepiano)’를 부산으로 공수하기 위해 몇 사람이 머리를 맞댔는지 모른다. 단 한 곡의 연주를 위해서였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두 대의 포르테피아노가 무대에 오른 화제의 공연은 지난 20일 오후 ‘금정클래식위크’ 둘째 날 네 번째 공연으로 선보인 ‘바로크와 고전 사이, 질풍노도’ 2부 순서였다. 이날 연주곡은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작품번호 365. 정말이지 생전 모차르트가 곡을 만들면서 생각했을 것 같은 음색을 드물게 느껴본 시간이었다.
포르테피아노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쓰였던 고(古)악기로, 모차르트가 가장 사랑했던 악기로 알려져 있다. 현대 그랜드 피아노보다 현이 가늘고 음역이 좁다. 포르테피아노 이전에 연주하던 하프시코드(독일어로는 쳄발로)와도 달랐다. 음악회가 끝난 뒤 직접 들어보니 명징하고 투명한 음색이다. 많은 부분이 나무로 되어 있어 음량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섬세한 뉘앙스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표현 수단이 되기도 한단다.
연주에 앞서 무대로 나온 ‘금정클래식위크’ 손일훈 예술감독과 권민석 지휘자는 이날 공연의 취지를 소개하는 한편 그 귀하다는 포르테피아노를 특별 언급했다. 권 지휘자는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고음악과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이력도 있다.
“오늘 음악은 바로크 작곡가 중 유명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그의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그리고 아들 바흐의 친구인 요한 요하임 크반츠를 지나 모차르트까지 이어지는 시기를 조명하고자 준비했습니다. 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옛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알테무지크서울’을 특별히 모셨고요. 평소 보기 힘든 하프시코드와 기타처럼 생긴 테오르보도 함께 연주합니다. 무엇보다 두 대의 포르테피아노를 한 번에 연주하는 것은 아마도 금정이 국내 처음일 겁니다.”
객석에선 놀라움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관객 시선은 일제히 벽 쪽에 붙여서 세워 놓은(2부 순서용) 포르테피아노로 향했다. 아닌 게 아니라 두 대의 포르테피아노를 부산으로 ‘모셔 오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웠다. 일단 개인 소유주를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었고(서울~부산 원거리 이동에 따른 파손 우려가 큰 데다 국내 보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만에 하나 파손이 됐을 때 변상 여부도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단 한 곡이라도 제대로 된 연주를 들려주고픈 손 예술감독과 권 지휘자와 금정문화회관 김유니 공연팀장은 서로서로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말하면서 두 소유주를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박종해·김다솔 두 피아니스트의 포르테피아노 연습 광경을 영상으로 올린 SNS에는 “왜 이런 귀한 연주를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만 하느냐”는 아쉬움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손 예술감독은 “금정문화회관 콘서트홀은 전문 음악홀은 아니지만 음향이 꽤 좋은 편이고, 객석 규모도 아담해서 포르테피아노 연주를 충분히 소화할 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해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날 박종해는 1986년 데이비드 자크 웨이가 제작한 18세기 후반 요한 안드레아스 스타인 모델 포르테피아노를, 김다솔은 2012년 토마스 슐러가 제작한 19세기 초 안톤 발터 모델을 연주했다.
이날 연주에는 ‘내추럴 호른’(프랑스 원형 호른)도 ‘깜짝’ 등장했다. 금관악기 중에서도 중음역에 특화된 게 호른이지만, 내추럴 호른은 더욱더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목가적이면서도 풍부한 음색이 현대 호른과는 다른 소리를 냈다. 연주자가 벨 안에 손을 집어넣고 음정과 음색을 수동 조절한다는데 꽤 까다로운 연주라고 했다. 이런 크고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감동의 음악회를 선사한 셈이다. 부산은 머지 않아 음악 전용홀 시대를 여는 만큼 기존 공연장의 변신 노력도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도 이번 시도는 주목할 만했다.
금정문화회관이 주최한 ‘금정클래식위크’ 음악제는 올해 첫선을 보였으며, ‘터치’, 즉 건반악기를 주제로 지난 19일 오전 11시 ‘어린이를 위하여Ⅰ’ 연주로 개막했다. 총 14회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오는 26일까지 계속된다. 남은 공연은 △25일 오후 7시 30분 금빛누리홀=WE필하모닉스가 연주하는 ‘영화음악과 클래식’(4월 25~26일 오전 11시 단체 관람은 별도) △26일 오후 2시 은빛샘홀=배진우 피아노 리사이틀 ‘패러독스’ △26일 오후 7시 30분 금빛누리홀=피아노 트리오(바이올린 박규민, 첼로 문태국, 피아노 박종해)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 △27일 오후 9시 야외광장=밤에는 재즈Ⅱ(김동기 트리오) 등이다.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석사 및 최고 과정을 마친 손 예술감독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세련된 감각으로 작품 창작 활동뿐 아니라 음악감독 역할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 중이다. 현재 독일 본에서 거주하며 국내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4-04-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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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 ‘싱크 음악’으로 수익 올리는 방법 ‘눈길’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할리우드에 가지 않고도 할리우드 작곡가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부산 콘텐츠 코리아랩 5층 복합공간. 50여 명의 참석자들은 싱가포르에서 날아온 ‘싱크 음악’ 작곡가 그레고리 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눈을 반짝였다. 탄은 자신을 “영화음악, 영화 트레일러, 광고 트레일러를 쓰는 데 특화된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에서도 싱크 음악으로 특화된 작곡가는 2명에 불과하고, 싱크 음악이 영화음악 작곡가에겐 하나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는 20~30대가 다수를 이뤘지만,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있어서 왔다는 어르신도 여러 명 눈에 띄었다. 음악 혹은 작곡을 전공한 사람,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듯하지만, 음원 사용에 대한 고민이 많은 유튜버들도 다수 참석했다. 영화 관련 일을 하는 이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행사는 지난해 부산시의 ‘월드클래스 문화예술 분야 글로벌 리더’ 청년으로 선정된 안후윤(아트우드 프로덕션 대표) 영화음악 작곡가가 마련한 ‘월드클래스 글로벌 네트워킹 시리즈 인 부산’ 첫 번째 세미나. ‘할리우드를 가지 않고도 할리우드 음악 콘텐츠를 만들며 지속적인 수입을 창출하는 방법-지속 가능한 음악’을 주제로 다뤘다. 그리고 서로 간의 네트워크를 주선했다.
싱크 음악이라는 분야도 생소했지만, 이걸로 지속적인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게 눈길을 끌었다. 흔히 싱크는 영화나 광고, TV 프로모션, 게임 등에 배경음악으로 삽입하는 것으로 ‘싱크로나이제이션(syncronization)’의 줄임말이다. ‘사운드를 그림과 일치시켜 배치하는 작업’을 뜻하는 영화용어이기도 하다. 탄은 싱가포르에 살면서도 미국 할리우드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싱크 음악 작곡가가 주로 일하는 기업은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 등입니다. 이들은 작곡가와 직접적으로 일하는 클라이언트는 아닙니다. 작곡가는 대개 ‘뮤직 퍼블리셔’, 즉 음악 출판사를 통하게 됩니다. 즉, 뮤직 퍼블리셔는 제 음악을 팔아주는 영업자인 셈입니다. 대기업에 제 음악을 피칭하고 대신 팔아주고, 커미션을 받아서 저와 분배하는 구조이죠. 보통 퍼블리셔와 50 대 50으로 나눠 갖습니다.”
탄은 싱크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외에도 △싱크 음악 제작 △영화음악과 싱크 음악의 차이점 △내 음악 피칭하는 실전 방법 △음악 비즈니스의 최신 동향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예시를 보여 주며 설명했다.
“싱크 음악에는 보통 인트로, 테마, 클라이맥스로 구성되는 3가지 파트가 있습니다. 싱크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이 음악이 얼마나 편집하기 쉬운가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3가지 파트 사이사이에 브레이크(휴식)가 있습니다.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 사일런트(조용한) 구간을 집어넣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음악처럼 들리게 하는 것이 작곡가의 중요한 역량입니다.”
영화음악과 싱크 음악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싱크 음악과 영화음악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영화음악이 프로덕션 예산 안에 들어가는 반면, 싱크 음악은 마케팅 예산에 들어갑니다. 영화음악은 대개 하나의 영화만을 위해 특별히 쓰여진 곡으로, 영화 장면을 보지 않고 음악만 들으면 이게 무슨 음악이지 할 때가 있지만, 싱크 음악은 좀 더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음악을 가지고 여러 프로젝트에 여러 번 재사용 가능합니다.”
탄이 만든 비디오 게임 트레일러 ‘워크래프트’ 등 여러 편을 감상했다. “트레일러(예고편) 음악을 들을 때 또 하나의 특징은 사운드 이펙트 뒤에 배경음악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음악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화면 장면과 싱크 음악이 놀랍도록 잘 맞아떨어지면서 드라마틱하게 여겨졌다.
뮤직 퍼블리셔를 찾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기 경험을 공유했다.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구글 검색에 ‘음악으로 돈 버는 방법’을 쳤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100명 정도 되는 퍼블리셔에게 직접 이메일로 연락했습니다. 돌아온 회신은 3명이었고, 그중 1명만 오케이했습니다. 프로듀서들의 ‘노(no)’라는 거절이 업계에선 워낙 흔한 일이니까 여러분도 마음 상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 도전하십시오.”
마침내 탄은 워너채플뮤직과 퍼블리셔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것조차도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할리우드 뮤직 퍼블리셔와 같은 나라에 살지 않기에 이메일 접촉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링크드인이나 IMDb로 찾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메일은 최대한 간결하게 보내기 바랍니다. 학력이나 외모,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3가지 트랙에 대한 스트리밍 링크를 보내면 충분합니다. 3개의 예시를 보고 음악이 마음에 든다면 더 보내달라고 직접 요청할 것입니다.”
탄은 또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는 수익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얼마나 많이 버냐고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 정말 다양합니다. 수익률 편차가 너무 큽니다. 예를 들어서 비디오 게임의 경우 이 싱크 음악이 어디에 올라가는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소셜미디어용이라면 조금 적을 것이고, 광고용이라면 조금 더 많이 받습니다. 만약에 할리우드 영화 같은 경우라면 수천만 원에서 1억 원대까지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보통 한 편의 영화에는 8개에서 13개의 트레일러를 만드는데, 편당 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정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편 탄은 할리우드 영화음악 예고편(분노의 질주9, 쥬라기 월드:도미니언, 피파 월드컵,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게임 음악(워크래프트) 그리고 국내 TV 방송(도시어부, 골 때리는 그녀들) 싱크 음악을 만들었다.
2024-04-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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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즐기는 클래식, 입도 귀도 호사했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외국 문화단체에선 이런 식의 후원 기금 마련 디너 클래식 콘서트를 더러 개최하는데, 지역에선 시도를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직은 분위기 형성이 안 된 때문이겠죠!”
30일 부산 동래구 농심호텔 대연회장 대청홀은 22개 테이블에 나눠 앉은 155명의 초대 손님으로 가득 찼다. 부산오페라단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진규 드림문화오페라단 단장과 4명의 성악가가 마련한 ‘2024 신년 디너 콘서트’이다. 장 단장 등은 코로나19 발발 이전에도 두 차례 이런 행사를 열었지만, 호텔 연회장에서 ‘신년’ 음악회 형식으로 클래식 ‘디너 콘서트’를 연 것은 처음이다.
소위 요즘 잘나가는 트로트 가수나 티켓 파워 있는 서울의 유명 연주자를 부른 것도 아니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4명과 1관 편성 오케스트라 반주만으로 여는 십수만 원짜리 신년 디너 콘서트여서 얼마만큼 호응이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호텔 대연회장 대관과 디너 경비, 아티스트 개런티 등 주요 경비를 제하고 나면 크게 남는 것도 없지만 일단 시도해 보자 싶었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년도 드림문화오페라단에 보여준 후원자들의 관심과 성원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주로 1명의 호스트가 7명이 앉는 1개의 테이블을 책임지는 식이다. 특정 연주자를 후원하는 테이블이 있는가 하면, 모 이비인후과는 원장이 간호사 등 직원들을 데리고 왔다. 어떤 기업인은 가족 친지를 자기 이름의 테이블에 초대했으며, 친구끼리 삼삼오오 한 테이블을 채운 경우도 보였다.
정찬이 제공된 코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본격적으로 음악회가 시작됐다. ‘4인 4색’의 흥겨운 음악회가 90분간 이어졌다. 장 단장은 “오늘 여러분은 클래식 공연도 즐겁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손바닥이 짝짝 갈라지도록 손뼉도 세게 쳐 달라”고 당부했다.
공연은 신년 음악회 단골 레퍼토리 ‘라데츠키 행진곡’를 비롯해 오펜바흐 ‘캉캉’ 연주로 시작했다. 무대 위 LED 디스플레이에는 시시각각 배경 화면이 바뀌었다. 예를 들면 라데츠키 행진곡이 흐를 땐 오스트리아 빈 풍경이 펼쳐지고, 캉캉 연주 땐 파리 에펠탑이 등장했다.
이윽고 성악가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소프라노 왕기헌이 무대가 아닌 객석 맨 뒤에서 등장했다. 오페레타 ‘박쥐’ 중 ‘웃음의 아리아’를 부르면서 객석을 통과해 무대에 올랐다. 메조소프라노 이지영, 바리톤 강경원, 테너 김준연이 차례로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네슨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이들 역시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나타났고, 아리아 성격에 따라 즉석 오페라 연기를 펼치자 객석에선 웃음과 환호성이 터졌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배경 화면이 영국 런던으로 옮겨가 ‘위풍당당 행진곡’이 연주되기 시작하자 객석에서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일반 공연장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성악가들은 혼자서, 혹은 둘이서, 또는 넷이서 노래했다. 오페라 아리아나 클래식 곡이 어려운 분들을 고려해 ‘대성당들의 시대’(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뮤지컬 인기 음악도 추가했다.
특히 공연 마지막에 이르러 ‘축배의 노래’와 ‘볼라레’ 연주가 시작되자 대연회장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노래를 부르던 성악가들과 초대 손님이 즉석에서 왈츠를 추고, 관객은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이날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은 장 단장은 성악 전공도 살려서 지휘하다 말고 마이크를 잡고 ‘볼레로’를 함께 불러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부산에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해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전업 음악가로 사는 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녹록지 않다. 하물며 민간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건 더더욱 그러하다. ‘클래식계의 홍 반장’을 자처한 장 단장의 이번 시도는 그런 점에선 눈여겨볼 만하다. 지원 기금만 바라보며 공연 기회를 기다리기엔 지금 우리의 문화계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다.
이날 누군가의 초대로 테이블을 채운 분이 내년엔 호스트가 되어 다른 게스트를 자기 테이블로 초청할 수 있고, 그런 분이 하나둘 모여서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긍정적이겠다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이날 처음으로 맞닥뜨린 성악가 5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서는 공연장으로 달려갈 수도 있겠다.
이날 후소산기(주) 최흥수 회장은 후원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특별 출연해 드림문화오케스트라 반주로 우리 가곡 ‘그리운 마음’을 노래했다. 최 회장은 “정말 많이 떨렸다”면서도 “예술가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이런 식의 기금 마련 디너 콘서트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 단장도 “오늘 제가 귀중한 팁을 하나 얻었는데요. 이렇게 모인 김에 우리도 해외에서처럼 기부 문화에 동참하고, 여기서 모인 수익금으로 다른 사회적인 활동을 해도 참 좋겠다 싶네요”라고 여운을 남겼다.
2024-01-3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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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관현악으로 ‘라데츠키 행진곡’… 무대·객석 혼연일체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신년음악회에선 거의 빠지지 않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지난 24일 오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 열린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특별 연주회 ‘2024 신년음악회, 청룡이 나르샤’의 앙코르곡으로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국악관현악 편곡으로 시립국악관현악단이 처음으로 들려준 라데츠키 행진곡은 관객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해금과 대금, 피리, 가야금, 아쟁, 거문고, 타악… 그리고 박자에 맞춰 열렬한 박수를 보낸 관객 신명까지 더해져 무대와 객석은 혼연일체가 된 듯했다.
물론 앙코르에 앞서 2부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신모듬’(작곡 박범훈)이 끌어올린 에너지가 컸다. 이날 시립국악관현악단은 40분 이상 소요되는 ‘신모듬’ 전 악장(풍장-기원-놀이)을 처음으로 연주해 객석은 후끈 달아올랐다. 1부 연주 때 심각한 표정 일색이던 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조차 사물놀이 협연자가 내부자(북 최정욱·꽹과리 이주헌·장구 최오성·징 박재현)인 덕분인지 희색만면한 모습으로 연주해 보는 이들도 즐거웠다.
게다가 이날 관객은 약 1100명으로 시립국악관현악단으로선 근년에 없던 기록이다. 공연 1시간 전부터 대극장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런 분위기에 고무된 덕분일까. 라데츠키 행진곡 앙코르 연주에 앞서 이동훈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는 마이크도 없이 입을 열었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이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습니다. 올해 첫 공연부터 2층, 3층까지 채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2월까지 매달 이렇게 오실 거죠? 제가 지난해 송년음악회 때 탬버린을 친 뒤 걱정입니다. 이번 공연에는 또 뭘 보여줘야 하나 싶어서요.”
지난해 12월 송년음악회 때 단원들도 모르게 준비한 ‘탬버린 댄스’로 즐거움을 선사한 이 예술감독을 기억하는 관객 사이에선 웃음보가 터졌다. 당시에도 “권위를 내려놓은 지휘자” “국악 공연이 맨날 이러면 대박 날 것 같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그 기운이 신년음악회까지 이어질지 예상 못 했기에 한층 사기가 오른 듯했다.
더욱이 송년음악회는 이희문과 ‘놈놈’(조원석·양진수), 동양고주파 등 협연자들이 워낙 탄탄해 어느 정도 예상된 인기였지만, 신년음악회는 유명세를 치를 만한 협연자를 내세운 것도 아니어서 놀란 것도 사실이다. 첫 곡 ‘비나리’(작곡 이동훈)는 임원식 성남시립국악단 타악 부수석과 ‘사물놀이 마당’이 풍물 협연을 했고, 나머지 협연자(남도민요 박성희·정선희,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사물놀이)는 자체 해결했다.
다만, 40주년을 맞는 해의 첫 연주회여서 ‘무료 관람’을 어렵사리 결정했는데 그 영향도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무료라고 해서 무조건 많은 관객이 오는 것도 아니어서 걱정이 없진 않았다. 예술단운영팀 조성일 부장은 “지난 2일 티켓 오픈 첫날 800장가량이 나가고 그다음 주에 곧바로 매진되는 걸 보고 긴가민가했다. 오히려 무료다 보니 ‘노 쇼’가 걱정돼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까지 못 보게 될까 봐 여러모로 애썼지만 공연 임박해 나오는 취소 표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연이 끝난 뒤, 로비에선 지휘자와 일부 단원이 관객 요청으로 함께 사진을 찍거나 사인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소통하는 지휘자’를 자처한 이 예술감독과 시립국악관현악단의 의욕 넘치는 행보는 저절로 다음 연주회를 기약하게 했다. 하지만 국악관현악단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음향’ 문제는 이날 옥에 티로 지적됐다. 국악기는 서양악기보다 음량이 작아서 마이크와 스피커 등 음향 장비를 활용해 음향 균형을 맞추는데 이날 공연에선 만족스럽지 못했다.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2024-01-2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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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부산 대표 실내악 축제로 발돋움시키자”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지난해 대비 관객 숫자는 1000명가량 늘어서 2744명으로 집계됐고요, 유료 객석점유율은 전년 대비 12%P 올라서 60.6%를 달성했습니다. 올해는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공연 횟수를 지난해 1회에서 4회로 늘리고, 반대로 챔버홀 공연은 지난해 6회에서 3회로 줄이면서 극장 크기도 영향을 미쳐 관객이 늘어난 배경이 된 것 같습니다.”
지난 20일 ‘앙상블오푸스’ 폐막 연주를 끝으로 막을 내린 ‘2024 부산문화회관 챔버 페스티벌(이하 부산 챔버 페스티벌)’ 업무를 담당한 (재)부산문화회관 박승빈 대리 답변이다.
“공연계는 1~2월이 비수기인데 이 정도 관심이라면 앞으로 확대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관객층을 공연장으로 더 많이 불러들일 프로그램 구성에 신경 써야겠습니다.”
부산 챔버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은 김동욱 부산대 교수의 평가다. 전년 대비 수치로도 한층 나아진 평가에 부산 챔버 페스티벌을 주관한 조혜운 ‘마린7 아티스트&매니지먼트’ 대표와 김 예술감독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
김 교수는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해 부산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도 제공해야겠지만, 부산의 수준 있는 젊은 연주자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점에서 총 7개의 프로그램이 어느 것 하나 밀리는 것 없이 골고루 관객이 들어서 정말 기분 좋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예술감독으로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균형을 꼽았다. 특히 부산 출신 연주자로만 꾸린 지난 19일 공연(‘올 어바웃 탱고’)은 거의 매진돼 “부산문화 미래가 밝기를 염원할 수 있었던 밤”이었다고 조 대표가 소감을 밝힐 정도였다.
페스티벌 형식으로 꾸리는 음악회가 가진 장점 중 하나겠지만, 이 공연에서 저 공연으로, 그다음 공연으로 연주자를 따라 움직이는 관객 모습도 다수 포착됐다. 부산 챔버 페스티벌 경우엔 2년 전부터 통합 패키지 티켓 판매를 하지 않는데도 3~4개 공연을 봤다는 사람이 제법 나왔고, ‘모든 공연 관람’을 한 관객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올해 페스티벌 반응이 좋았던 것은 관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래밍 변화일 것이다. 예를 들어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개막 연주회)나 대니 구(토크 콘서트)처럼 연주자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객석을 채운 공연이 있었던가 하면, 각각의 실력 있는 연주자를 엮어서 색다른 조합의 콰르텟(4중주)이나 퀸텟(5중주)으로 소개하면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날(마스터스 앤드 마스터피스Ⅰ)도 있었다. 또 첼로와 발레의 만남,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친친탱고’와 콰르텟 BCMS(부산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 바리톤 이승민의 협업 무대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도 폐막 연주회(마스터스 앤드 마스터피스Ⅱ)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앙상블오푸스’의 피아노 5중주 연주로 정통 실내악의 갈증을 해소해 주기도 했다.
최 모 관객은 “처음 몇 회는 프로그램이 중복되고 실망스러웠지만, 김동욱 예술감독이 점차 역량을 발휘하는 것 같아 기대된다”며 “챔버 페스티벌답게 다양한 시도가 좋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부산 챔버 페스티벌은 지난 2017년 첫선을 보인 이래 올해로 7회를 맞았다.
사실 규모에 비해 예산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알 만한 사람들은 예산 규모에 비해 정상급 해외 초청 아티스트들이 많은 데 놀라는 눈치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직접 섭외에 비결이 있다. 즉, 소속사가 있는 아티스트라도 일단 연주자와 직접 소통한 뒤 소속사를 설득하는 식으로 초청을 진행했다. 그것이 가능한 데는 초청 아티스트 관리 시스템에 있다.
이들은 아티스트가 아티스트를 돌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선후배 사이고, 한두 사람만 건너면 연결되는 구조다. 연주자들이 부산에 머무는 동안에도 남다른 스킨십으로 이들을 보살피다 보니, 전회 연주자가 다음 해 연주자를 소개해 준 경우도 생겨났다. 심지어 부산 챔버 페스티벌을 통해 국내 소개된 연주자가 다른 음악회 섭외 요청을 받기도 한다. 이때는 제대로 된 개런티를 지급해야 돼 지금보다 4~5배는 더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득, 지난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민간 기획사로는 드물게 부산국제음악제를 직접 운영하며 부산 실내악 발전에 큰 몫을 했던, 지금은 고인이 된 부산아트매니지먼트 이명아 대표가 꿈꾸던 실내악 축제의 꿈이 떠올랐다. 부산국제음악제 참가 등으로 이 대표와 남다른 인연이 있었던 앙상블오푸스 리더 백주영 바이올리니스트도 폐막 연주회 후 말했다. “이 대표가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부산의 실내악 문화는 더 나아졌겠죠!” 부산 챔버 페스티벌을 부산의 대표적인 겨울 실내악 축제로 키울 수 있느냐 여부는 이제 남은 사람의 몫인 듯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부산의 실내악 페스티벌인 만큼 향후 전국적인 겨울 실내악 축제로 발돋움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담당자의 포부도 꼭 이뤄지길 바란다.
2024-01-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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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독 부재’에도 저력 보여준 말러 교향곡 1번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지난 19일 제607회 부산시립교향악단 2024년 첫 정기 연주회는 백승현 부지휘자와 임홍균 악장 등 전 단원이 예술감독 부재의 공백을 어떻게든 메워 보겠다는 의지가 돋보인 음악회였다. 새해를 여는 첫 정기 연주회 레퍼토리로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을 과감하게 선택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최수열 전 예술감독 티켓 파워’를 대신할 주목할 만한 협연자로 지난해 11월 ‘2023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정규빈을 내세운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이번 정기 연주회는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이날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은 거의 매진에 가까웠고, 정규빈의 오케스트라 협연을 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등 수도권에서 내려온 관객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규빈은 콩쿠르 우승 이후 김대진이 지휘하고 서울예고 재학생과 동문 음악가 연합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에 출연한 뒤 부산시향과 첫 호흡을 맞췄다.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정규빈은 한예종에서 김대진을 사사했고, 지금은 뮌헨 국립음대 석사과정에 있다. 이번 연주가 끝난 뒤 곧바로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사실 이날 부산시향 공연은 지난달 14일 제606회 정기 연주회를 끝으로 부산시향과 6년 동행을 마친 최수열 예술감독이 떠난 뒤 처음으로 열린 정기 연주회인 데다 부산시립예술단 운영을 담당하는 (재)부산문화회관과 부산시의 후임 예술감독 선임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어서 걱정스러운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1부 순서에 나선 정규빈은 국제음악콩쿠르 우승으로 이제 막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패기 만만한 젊은 연주자로선 아주 드물게 차분한 모습으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3번(연주 시간 약 28분)을 아름답게 연주해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무엇보다 이날 부산시향 공연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말러 교향곡 1번(연주 시간 약 55분) 연주였다. 백승현(34) 지휘자는 자신의 기량을 모처럼 맘껏 발휘했다. “40대의 최수열·홍석원 지휘자 연륜에는 다소 못 미쳤지만, ‘참신한 말러’였다” “스물여덟 살의 말러가 그의 첫 교향곡(1번)을 완성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작곡가 지시사항을 최대한 존중한 거겠지만, 너무 악보에 충실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뒷모습은 영락없는 구스타보 두다멜이었는데 곡 해석이 좀더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무겁지 않게 그려낸 말러여서 생각보다 재밌었다” 등의 평가가 있었다.
부산시향의 말러 교향곡 1번 연주는 지난 2016년 7월 제521회 정기 연주회(지휘 귄터 노이홀트) 이후 8년 만이다. 그보다 앞서 리 신차오가 2009년 6월 부산시향 취임 기념 연주회를 겸해 말러 교향곡 1번을 선보였고, 2003년 6월 곽승 지휘로 말러 교향곡 1번을 선보인 적이 있다. 이때 연주들도 관객에 따라 호불호는 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부산시향이 제600회 정기 연주회 때 선보인 말러 교향곡 9번만큼은 아니더라도 말러 교향곡 연주는 지휘자나 오케스트라 단원에겐 또 다른 도전임은 틀림없다. 악기 편성도 큰 데다 여러 성부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까닭에 앙상블을 만들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부산시향이 2024년 첫 정기 연주회 레퍼토리로 선곡한 이유이기도 했다.
부산시향은 앞으로 최소 반년 이상은 현재 나와 있는 상반기 프로그램으로 꾸려야 한다. 이르면 설 전후해서 새로운 예술감독 선임을 발표하더라도 구체적인 취임 시기나 프로그램 구성에 관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서다. 새해 첫 정기 연주회의 열정으로 흔들림 없는 부산시향 모습을 부산 시민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부산시나 해당 기관에서는 새 예술감독 선임 절차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2024-01-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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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투어 위해 마을 하나가 움직일 정도…”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거의 한 마을이 움직인다고 보면 됩니다. ‘루치아’ 팀은 총 120명이 움직이는데, 이 중 49명이 아티스트이고, 20명이 기술 담당자, 또 주방이나 세관, 이민국 문제를 처리하는 스태프도 있습니다. 국적도 달라서 무려 26개국에 이릅니다. ‘루치아’ 팀에 아시아인은 아티스트 2명(중국과 베트남)을 포함해 3명이 있습니다.”
13일 ‘태양의서커스 루치아’ 부산 공연 개막에 앞서 만난 ‘태양의서커스’ 홍보 담당 찰리 와그너의 설명이다.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태양의서커스’는 1984년 캐나다 퀘벡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돌며 공연 중이다. ‘루치아’ 팀을 포함해 5개의 빅탑(초대형 텐트 극장) 공연이 월드 투어 중이고, 아레나(체육관 또는 공연장) 공연 3개, 라스베이거스 상설 공연 등 통상 7~10개 작품이 동시에 공연되고 있다. 본부가 있는 퀘벡에선 공연은 이뤄지지 않고 프로그램 개발이나 아티스트 교육 등을 주로 한다.
찰리는 “‘태양의서커스’ 성격상 평균 연령 20대의 아티스트들이 가장 주목받지만, 정말 중요한 건 기술팀”이라면서 “기술팀과 예술팀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전체를 총괄하는 무대감독을 비롯해 오토메이션 담당, 음향부, 조명부, 리거(로프나 케이블 관리자), 목수와 페인트공 등 이들이 공연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음악은 라이브로 연주된다.
■‘빅탑’ 등 본국서 95% 가져와
부산의 경우처럼 5000평 규모 대지에 세우는 지름 52m, 높이 20m의 빅탑은 주로 메인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그외 아티스틱 텐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람들을 받고 물건(굿즈 등)을 파는 로비 텐트 등 총 3개 동으로 구성된다. 현지에선 오피스 사무실, 발전기, 현장 스태프용 컨테이너만 조달한다.
빅탑 외부에는 총 4개의 깃발이 내걸리는데, ‘태양의서커스’ 휘장, ‘태양의서커스’가 탄생한 나라 캐나다 국기, ‘태양의서커스’가 시작된 퀘벡주 휘장, 마지막 하나는 공연이 진행되는 나라의 국기다.
빅탑 공연 특성상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2400명 정도 된다. 빅탑 공연장의 장점이라면 마지막 줄에 앉은 관객도 공연자의 표정을 볼 수 있도록 아늑하면서도 가깝게 설계된 것이다. 빅탑 등 총 3개 동 텐트에 들어간 장비의 95%는 캐나다 본국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이동 컨테이너 개수만 99개에 달하고, 2000톤에 달한다. 심지어 이동식 화장실조차도 캐나다 본토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도시를 옮겨다닐 때마다 일정한 공연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집에 온 듯한 느낌을 갖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것이 ‘태양의서커스’ 방침이다.
곡예를 담당하는 아티스트 단원들의 심리적 안정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커플이나 가족 동반도 많이 지지한다. ‘태양의서커스’는 한 번 투어가 시작되면 오랜 기간 함께 세계를 여행하게 돼 사내 결혼도 많다고 했다. 이때 함께 투어를 다니는 아이들 교육은 홈스쿨링으로 해결한다. 단원들도 공연이 없을 때는 인문학 강의를 듣거나 공연 도시 특성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복지 일환이다.
■‘태양의서커스’ 창립 40주년
찰리의 안내에 따라 리허설부터 관람했다. 이날 시연은 본 공연 인터미션 후 2부에 나오는 ‘공중 스트랩(AERIAL STRAPS)’ 장면이었다. 시연자는 체조 선수 출신의 아티스트 제롬 소르디용으로, 이 장면만을 위해 3개월 정도 준비했으며, 12년 정도 곡예 연습을 했다고 한다. 제롬은 네 살 난 아들이 있는 부부 (서커스) 아티스트이다.
제롬은 “체조 선수 출신인 게 서커스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체조에서 배운 테크닉과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서커스로 가져와서 예술적인 것을 어떻게 더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는데 체조와 서커스가 상당히 보완적인 관계라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제롬은 또 “항상 무대에 설 때마다 무서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 뒤 “우리는 늘 높은 데서 공연하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그 무서운 감각을 유지하면서 긴장 상태로 공연하기 위해 관객이 없을 때도 이 아드레날린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주관사인 마스트인터내셔널 조은주 차장은 “뮤지컬은 A그룹, B그룹, C그룹을 만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한 작품을 공연하지만, ‘태양의서커스’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현재 ‘태양의서커스 루치아’를 볼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부산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루치아’ 아티스틱 디렉터 그레이시 발데즈는 “올해가 ‘태양의서커스’ 창립 40주년인데, 새로운 도시에 와서 공연할 수 있다는 게 새로운 힘과 에너지가 된다”며 “새로운 관객과 새로운 팬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기대되고, 더 멀리 여행하지 않아도 자기 집이 있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 기쁘다”고 전했다.
■‘아티스틱 텐트’ 백스테이지 투어
이번엔 아티스틱 텐트로 이동했다. 공연자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준비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선 메이크업도 하고, 공연에 필요한 스트랩을 걸고 연습하는가 하면, 춤을 추거나 체력을 다지고, 휴식도 했다. ‘태양의서커스’ 공연자 분장은 기본적으로 아티스트 본인이 직접 수행하는데 45분~1시간가량 걸린다고 한다.
아티스틱 텐트 입구 소파 옆에는 2대의 TV가 설치됐다. 1대는 실시간 공연 실황을 보여줘 아티스트가 언제 무대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체크하도록 했고, 다른 하나의 TV는 5분 정도 지연돼 아티스트가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자기가 어떻게 공연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태양의서커스’는 절대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데, ‘루치아’처럼 동물이 많은 작품의 경우 동물 요소를 추가하기 위해 ‘퍼펫’이라는 줄인형을 도입했다. 퍼펫은 조종하는 사람도 따로 있다.
의상실로 이동했다. 공연에 들어가는 의상은 1000벌 정도 된다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의상 전부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제작돼 운송해 왔다. 의상은 아티스트 개개인의 체형과 퍼포먼스 종류, 캐릭터를 고려해 맞춤 제작된다. 의상 관리팀 장인은 공연 전후로 악어, 이구아나, 바퀴벌레, 메뚜기, 아르마딜로, 뱀, 청새치 머리, 참치 머리 등도 일일이 색칠하고 관리했다. 가발을 관리하는 스태프도 만났다. 의상팀은 4명의 상시 의상 관리 스태프와 현지 직원 4명이 함께한다.
신발 관리도 중요하다. 루치아에는 총 140켤레의 신발이 등장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티스트들의 신발이 남아날 리 만무하다. 신발 수선팀에서는 매일 수선하고 색칠한다. 일부 아티스트는 물속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새로운 신발 밑창을 개발하고, 쇼 사이 의상 건조 시스템도 개발했다.
■“부산은 준비된 도시… 너무 늦게 온 듯”
마스트인터내셔널 김용관 대표는 “2007년 처음으로 ‘태양의서커스’를 국내에 소개한 뒤 제2의 도시를 찾았는데 17년 만에 겨우 성사됐다”면서 “부지 확보 문제를 부산시의 적극적인 협조로 해결한 뒤에도 부산의 공연 시장 규모가 이를 뒷받침해 줄지 의문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번에 보니까 이제 부산도 ‘태양의서커스’ 공연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경제력이나 문화적 수준을 갖춘 것 같다”며 “오히려 티켓 판매 상황을 보니까 부산은 이미 준비가 돼 있었는데 우리가 좀 늦게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개막 직전까지 70%대 티켓 판매율을 보여 2월 4일 폐막 때까지 90% 선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또 “내년 2025년 ‘태양의서커스’ 공연은 확정이며, 2년 간격을 예상하지만 조금 빨라질 수도 있어서 2026년과 2028년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태양의서커스’ 빅탑 공연은 워낙 많은 장비를 셋업하고 철수해야 돼 5주 정도는 해야 하고 4.5주가 최소인데, 이번 부산 공연은 다음 호주 투어 일정상 3.5주(31회 공연)밖에 안 돼 아쉽다”면서도 “‘태양의서커스’는 공연 공급 자체가 제한된 편이어서 원하는 시점에 공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13일 부산 개막 공연장을 찾은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이 글로벌 허브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물류나 금융 등 신산업도 중요하지만, 문화관광 콘텐츠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목표이자 꿈”이라면서 “‘태양의서커스’는 글로벌 문화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이고, 2030년까지 부산이 ‘태양의서커스’를 공연하는 새로운 도시로 부산이 선정된 만큼 부산 시민들과 부산을 찾는 많은 분이 새로운 문화관광 콘텐츠를 많이 향유할 수 있도록 더욱더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태양의서커스 루치아’는 낙하산을 타고 멕시코에 덩그러니 떨어지게 된 어느 한 남자의 여정으로 시작된다. 멕시코 전설·신화 속에 등장하는 실물 크기의 말, 재규어 등 동물 모형이 무대에 등장하고, 인간 한계를 넘어선 아찔한 아트 서커스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태양의서커스’ 빅탑 공연 최초로 도입한 물에서 펼치는 곡예도 압권이다. 공연은 2월 4일까지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빅탑에서 이어진다.
2024-01-1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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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사용·발레리나 등장… ‘파격’ 요나 김 리사이틀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새해를 여는 1월 부산 공연계는 한산한 편이다. 부산문화회관에서 주최·주관하는 ‘부산문화회관 챔버 페스티벌(Busan chamber Festival·이하 챔버 페스티벌)’이 있어서 그나마 클래식 음악팬들에겐 위안이 되지만, 부산시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 결과가 나온 뒤라야 공연계가 움직이는 관행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5일 스테판 피 재키브가 바이올린 활을 잡은 개막 연주회는 “올해 첫 대박 공연”이라고 할 정도로 평가가 좋았다. 프로젝트성 오케스트라였지만 지휘자 없이 협주곡 두 곡을 선보인 부산체임버페스티벌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도 컸다. 김동욱 예술감독은 “오랜만에 다들 음악을 즐기면서 연주하는 거 같아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본 관객 중에는 “2만 7000원에 본 게 미안할 정도로, 27만 원이어도 아깝지 않을 시간이었다”고 SNS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개막 연주회에 이어진 두 번째 공연은 지난 9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열린 첼리스트 요나 김과 발레리나 줄리아 로(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수석무용수)의 ‘Songs That Make Us Dance(우리를 춤추게 하는 음악들)’이란 프로그램이었는데 호불호가 갈렸다. “클래식 무대가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무대였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클래식 공연인데 굳이 음향반사판을 치우고 확성까지 해야 됐나 싶어서 안타까웠다”는 반응이 그것이다.
이날 공연은 첼리스트 요나의 리사이틀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두 곡(라흐마니노프, 쇼팽) 연주 외에도 그의 부인인 발레리나가 라이브 음악(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와 쉐리던 사이프리드 ‘폭풍의 눈안에서 춤’)에 맞춰 발레 공연을 함께 펼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들려준 곡은 영화 ‘십계’의 개봉 100주년을 기념하는 지난해 미국 행사에서 요나 김과 친구인 작곡가 쉐리던 사이프리드가 공동으로 창작한 ‘살아 있는 자의 노래’였는데, 관련 영화 장면 송출에다 MR(미리 녹음 제작한 음원)에 맞춘 첼로 연주여서 확성이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요나 역시 “마지막 작품에는 MR이 있어서 사운드가 일치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융복합’ 공연을 시도하면서 클래식 음악회로선 드물게 확성을 하고, 음향반사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미리 예상하지 못한 관객이 가진 이질감이었다. 부산문화회관의 경우 음향반사판을 치지 않으면 아무래도 자연의 소리(울림)가 관객 쪽으로 잘 전달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더욱이 요나는 이날 무대에서 “이틀 전에 만난 첼로라서 아직은 낯설지만 서로 알아가는 중”이라면서 미국에서 본인이 사용하던 첼로를 가져오지 못하고 한국의 첼로 장인이 만든 악기를 서울에서 공수해서 사용한다고 밝혀 혹자는 다소 튀는 듯한 첼로 소리가 새로운 악기 때문인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첼로는 국제 항공을 이용할 경우, 1좌석을 오롯이 구매해야 돼 사실상 비용 부담이 커서 현지에서 대여할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나마 요나는 지난해와 올해 비니아스키 국제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 입상 경력이 있는 김민성 장인이 만든 첼로를 무상 대여해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대여한 2018년산 김민성 첼로는 음악회가 끝난 뒤 곧바로 새 주인을 찾기도 했다.
이래저래 이야깃거리를 많이 남긴 요나 공연이다. 그래도 달리 생각하면 페스티벌이다 보니 이런 색다른 공연도 한두 개 포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챔버 페스티벌이 아니었으면 개점휴업 상태였을 1월 부산 공연계가 이렇게라도 활기를 띄고 있어 고맙다.
2024-01-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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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피아노 통째 ‘공수’… ‘건반 위 완벽주의자’의 완벽 연주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명징. 관조. 유려. 비장. 무심. 격정. 절제. 여유. 평안. 지난 27일 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크리스티안 짐머만(지메르만)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면서 시시각각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들이다. 이날 공연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이색적인 장면도 여러 번 목격됐다.
먼저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들이 텅 빈 무대 위에 동그마니 놓여 있는 피아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중간휴식과 음악회가 끝나고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다른 음악회에선 거의 보기 드문 광경이다. 짐머만이 스위스 자택에서 직접 가져온 피아노였기 때문이다. 그는 피아노를 비행기에 태우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내한 공연 땐 피아노 액션(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리게 하는 장치)과 키보드만 들고 와 국내 피아노(롯데콘서트홀)로 전국 순회 연주를 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사용하던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 파브리니’를 통째 가져와 부산 연주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만큼 한국 연주에 공을 들인다는 게 눈에 보였다.
열흘 전쯤 피아노와 함께 국내에 도착한 그는 한적한 도시 밀양에서 머물며 피아노를 새롭게 조립하고 적응한 뒤 이날 공연장에 들여왔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엔 그의 전속 조율사가 마지막 점검을 하는 듯 피아노를 살피고 들어갔다. 그는 전속 조율사도 대동했다. 지난 9월 독일 뉘른베르크 연주 때에는 무려 세 대의 피아노를 무대에 올려놓고 이번 부산 공연에서 선보인 같은 레퍼토리 녹턴을 각기 다른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더 좋은 연주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란다. 그에게 왜 ‘건반 위 완벽주의자’라는 별칭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시작된 공연. ‘쇼팽 스페셜리스트’답게 전반부는 쇼팽 곡으로 채웠다. 네 곡의 녹턴과 피아노 소나타 2번이다. 첫 곡 녹턴 2번부터 달랐다. 한국인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야상곡 2번, 밤의 음악이 객석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녹턴 5번, 16번, 18번 연주까지 박수 없이 이어 가니 더욱 곡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오른손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피아니시모에서조차 한 음 한 음 온전히 살아나는 게 짐머만의 피아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했던가. 연주 홀이 좀 더 나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그가 왜 전용 피아노를 힘들게 들고 다니는지 짐작됐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피아노로 최고의 음악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겠다는 의지로 읽혔기 때문이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은 더욱 화려한 손놀림으로 연주했다. 지난해 소나타 3번에 이어서 올려진 프로그램으로 “매번 준비되지 않았다”고 하다가 들려준 곡이어서 그런지 더욱 울림이 컸다. 짐머만의 소나타 2번은 연륜이 느껴졌다. 콩쿠르에서 막 우승한 젊은 연주자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테크닉과 다이내믹한 타건으로 탄성을 자아낸 것과는 결이 다른 감동이었다.
다만 이날의 짐머만 컨디션은 최상이 아니었다. 녹턴 연주가 끝날 때마다 그는 잔기침을 했고, 이때다 싶었는지 객석 여기저기서도 “콜록콜록” 소리가 이어졌다. 짐머만의 까탈스러움을 익히 들었던 관객들조차 숨죽이고 있다가 한꺼번에 터진 ‘기침 도미노 현상’은 오히려 무대 위 짐머만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래도 프로는 프로였기에 2부 클로드 드뷔시 ‘판화’ 연주에선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미얀마로, 스페인(그라나다)으로 데려가는 마법을 부렸다. 마지막 곡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폴란드 민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같은 폴란드 태생으로서 가늘고 섬세한 표현부터 굵고 웅장한 표현까지 완벽하게 선물했다. 그리고 거의 쓰러질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거부하지 못하고 ‘고뇌의 앙코르’ 두 곡을 선사했다. 특히 마지막 앙코르는 객석에 불이 켜지고 관객들이 퇴장하는 도중 흘러나와 더욱더 박수갈채를 받았다.
연주가 끝나고 만난 짐머만 리사이틀 초청 기획사 마스트미디어 박현진 이사는 “모든 아티스트가 대부분 예민한 편이지만, 짐머만도 예외가 아니다”며 “그는 이날 연주를 앞두고 무대 위 마이크 철거에서부터 공연은 물론이고 커튼콜, 앙코르까지 절대 사진 촬영 금지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전했다. 더욱이 통상 사후엔 공지하는 앙코르 곡명조차 ‘미공지 안내’로 내보냈다. “관객 한 분 한 분의 저마다 다른 생각과 마음으로 자신의 연주가 기억되기를 바랐던 짐머만의 뜻”이라는 내용과 함께였다. 어느 명상센터에라도 다녀온 듯 평안한 마음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 대기실에서 얼핏 지켜본 짐머만은 연주가 끝났다는 안도감에서인지 한층 활기찬 모습이어서 다음 연주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 부산 공연은 거의 매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온 그의 전용 피아노는 이날 밤 다음 연주 장소인 대전으로 옮겨졌다. 새해에는 서울에서 세 차례 연주를 갖는다.
2023-12-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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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 예술인 협업 ‘창작공간 두구’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다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심승보 작가) “집에 있으면 신경 쓰이는 게 많은데 여기선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황성제 작가) “다른 공간과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곳은 혼자 작업하는 공간으로 자기 작업실의 연장이지만, 여긴 (장애 예술인과) 같이 하니까요. 장애·비장애 예술인을 아우르는 협업 공간은 국내서도 보기 드문 사례일 겁니다.”(신수항 작가) “이런 공간과 프로그램을 마련해 준 부산문화재단에 감사드립니다. 다양성이나 포용성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점점 나아지기를 기대합니다.”(신현채 작가)
지난 21일 ‘창작공간 두구’ 개소식에서 만난 입주작가들의 이야기다. 이날 부산문화재단은 장애 예술인 4명과 비장애 예술인 4명 등 총 8명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협업 공간 ‘창작공간 두구’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면서 전시, 작가와의 대화, 워크숍,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함께 진행했다. 입주 작가는 김은지, 신수항, 신현채, 심승보, 이은혜, 임이정, 오정민, 황성제이다. 이들은 8곳의 공간에 상주하면서 내년 4월까지 작업을 이어 간다.
지난해 12월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은 예술인 창작공간 운영을 위한 사무 계약을 체결하고, 올 2월 스포원의 행정재산 사용 수익 허가에 따라 2023년 2월부터 향후 5년간 임대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뒤 공사를 진행해 지난 9월 준공에 이르렀다. 물론 예기치 못한 석면 제거라든지 장애인 화장실 추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다소 지체됐지만, 전국 최초의 포용예술(혹은 포용적 예술·Inclusive Arts) 공간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공간은 연면적 704.46㎡(약 213평) 규모로, 작가 창작공간 8실, 다용도실, 라운지, 장애인 화장실 등을 갖췄다. 기존 창작공간과 달리 장애 작가, 시민이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배리어프리, barrier free) 예술인 창작 환경으로 조성됐다. 부산문화재단이 지난 2020년 수영구 망미번영로 일대 비콘그라운드 한쪽에서 개관한 부산 최초의 ‘장애 예술인 창작공간 온그루’와 다른 게 있다면 이곳은 장애 예술인뿐 아니라 비장애 예술인도 함께한다는 점이다.
창작공간 두구 입주작가 신현채는 “저는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셰이드신이라는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을 원하지만 잘하지 못했다. 저는 자폐성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 아닌,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내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저의 장애가 더 이상 저를 규정짓지 않기를 소망한다”고 작가 소개에 적었다. 실제 오픈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나자, 자신의 작업을 그 누구보다 또박또박 자신 있게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람들이 너는 장애가 뭐냐고 물어보면 현재 내 머릿속에 든 걸 사람들이 하나도 못 알아듣고, 나도 똑바로 말하지 못해 이 모든 삶 장애라고 이야기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신현채 작가와 짝을 이뤄서 협업을 신수항 작가는 “특별히 한 게 없다”면서 “그저 함께 밥 먹고, 산책하고, 서로가 고민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신수항 작가는 또 “제가 이번에 창작공간 두구에 입주해서 가장 좋았던 건, 신현채 작가를 만난 것”이라면서 “협업 파트너로서 이야기하다 보니 저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 고민을 같이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포용공간이 주는 장점인 듯했다.
개소식에 참석한 부산시 김기환 문화체육국장은 공간을 들러보고선 감탄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이 공간에 와 봤지만, 마법처럼 바뀐 걸 보고 반가웠어요. 특히 지난해 ‘온그루’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좀 더 많은 창작공간의 필요성과 장애·비장애인이 같이 할 수 있는 연결의 장이 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뒤 구체화하고 실현된 것이어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요.”
부산문화재단 이미연 대표이사는 “‘온그루’를 개소하고, 시간이 지나서 포용예술과 다양성 예술을 지향하는 콜렉티브 공간을 열게 되었다는 것이 뜻깊다”고 강조한 뒤 “향후 여러 예술가에게 문을 열어 이곳에서 다양한 창작과 소통이 일어나고, 예술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 대표이사는 공간 임대에 적극 협조해 준 부산시설관리공단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이 공간을 통해 보다 포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산시설공단 백운현 감사도 “스포원이라는 피지컬한 공간에 문화예술 창작 공간이 들어와서 더욱더 조화로운 공간이 되는 듯하고, 특히 젊은 분들 또한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함께한다는 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며 “앞으로도 문화예술 공간이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2023-12-26 [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