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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대가 허진호 감독이 조성우 감독에게 대본 건네는 이유는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한 달에 한 번, 매달 마지막 수요일 오전 조성우 영화음악 작곡가가 이끄는 영화의전당 ‘11시 영화음악콘서트’. 25일 ‘감독의 작품 세계를 채색하다2:허진호’편 콘서트는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했다. 멜로 영화의 대가 허진호 감독이 출연했다. 평소 70분이면 끝이 나던 ‘11시 영화음악콘서트’가 이날은 허 감독의 솔직담백 이야기가 더해져 무려 110분간이나 진행돼 커튼콜도 제대로 못 하고 허겁지겁 끝내야 했다. 관객들은 아름다운 영화음악 못지않게 그 음악이 스며든 작품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날 라이브로 연주된 작품은 모두 11곡. 허 감독이 연출한 대부분의 작품을 포괄했다. 허 감독의 장편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부터 내달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에 이어 정식 개봉을 앞둔 ‘보통의 가족’(2024)까지 단 1편을 빼고 모든 작품을 조 음악감독이 함께했다.
1편(‘호우시절’, 2009)은 왜 빠졌을까? “(조 감독이)너무 바쁠 때였는데 안 한다고 해서 기분 나빴어요(웃음).”(허진호) “안 한 게 아니라 저한테 안 맡겼어요. 제가 너무 바쁠 때였거든요.”(조성우) 그렇게 빠진 1편을 제외하고는 허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 ‘인간실격’(2021)을 포함해 장편 9편은 함께했다.
“사실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단편 ‘고철을 위하여’(1993)가 조 감독과는 첫 작업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의기투합한 거죠, 작곡료로 5만 원인가 줬어요. 미디(MIDI)라고 하나요? 당시는 필름 작업이어서 음악 싱크(사운드를 그림과 일치시켜 배치하는 작업) 맞추는 게 쉽지 않은데 정말 기가 막히게 했어요. 다들, 이거 누가 작업한 거냐고 물었으니까요.”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셈이다.
1963년생 조·허 감독은 연세대 철학과 동기이다. 허 감독은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박광수 감독 연출부를 거쳐 감독 데뷔했다. 허 감독이 첫 장편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들 당시를 회고하면서 들려준 말이다.
“당시 오승욱 감독이랑 각본 작업을 했었는데, 어느 고깃집에서 조 감독에게 대본을 보여주게 됐어요. 조 감독이 철학박사잖아요. 대본을 읽더니 ‘8월의 크리스마스’는 되게 철학적인 이야기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영화가 갖는 철학적인 의미와 기준을 짚어주는데 놀라웠어요. 그 후로는 항상 대본이 나오면 맨 먼저 조 감독에 보여줬어요. 조 감독이 철학적 텍스트를 짚어주면 그게 나중엔 제 것이 되는 거죠(웃음).”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신뢰와 우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첫 드라마 연출작이었던 ‘인간실격’은 영화 제작과는 많이 다른 작업 환경으로 어려움이 컸다고 토로했다. “16부작인데 대본도 다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도 모르고 찍기 시작했어요. 영화보다 훨씬 빨리 찍어야 한다는 게 가장 달랐습니다. 그때 느낀 건, 드라마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감독이 구현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허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외출’(2005)은 또 다른 색깔의 사랑을 느끼게 한 영화였다. 주연배우였던 배용준이 개인 화보를 낸 직후에 출연한 영화여서 캐릭터에 맞춰 근육을 뺄 시간이 없어서 극 중 직업을 다른 걸로 바꿔야 하나 고민했었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요즘 같으면 근육질의 남자 배우가 많아서 관객도 관용적인 편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진 않았어요. 스크린에서 최대한 신체가 드러나는 걸 줄이고 싶었지만 그게 안 돼 노출했는데 ‘욘사마 인기’에 기대려고 하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외출’이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흥행하긴 했습니다.”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 중에 어떤 게 가장 좋으냐는 질문도 나왔다. 그런데 허 감독은 뜻밖의 대답을 들려줬다. “‘봄날은 간다’(2001)는 음악이 정말 좋았고, 국내 관객에겐 좀 외면받았지만 ‘외출’을 꼽을까 싶기도 하다가 ‘행복’(2007)이 마음에 다가가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영화감독이 자기 영화를 잘 안 봅니다. 평생 한두 번 정도랄까요. 감히 제 영화를 다시 볼 용기가 없는데 음악은 다시 듣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허 감독과 조 감독이 오랜 작업을 이어 가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가끔 술을 한잔하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영화가 보고 싶다는. 그런데 영화는 쉽게 볼 수 없으니 유튜브 같은 데서 짧은 영상을 찾아보게 되는데 그때 나오는 장면에 음악이 딱 입혀져 있거든요. 그때 ‘아! 내가 연출한 한 편의 영화를 이렇게 기억하는구나. 어떻게 보면 음악이 훨씬 더 많은 생각과 깊이를 주는구나’ 싶어서 저는 항상 조 감독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영화음악 감독을 향한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조 감독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내달 개봉하는 새 영화 ‘보통의 가족’을 두고 “허 감독의 새로운 시작이 되는 영화일 것”이라고 칭찬했다.
이 외에도 허 감독은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이영애)가 상우(유지태)에게 하는 명대사 “라면 먹을래요?”가 “라면 먹고 갈래요?”로 바뀌게 된 경위라든지, 국내 첫 사극 연출에 도전한 ‘덕혜옹주’(2016)를 만든 계기, 단편 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2017) 제작 배경 등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콘서트의 마지막은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 두 남자의 반짝반짝 빛나는 연기 호흡을 보여준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 연주였다. 조·허 감독의 두 사람의 우정도 별처럼 빛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2024-09-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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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테아터 힘 보여준 ‘사랑의 묘약’ 앙코르 요청 쇄도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지난 11~12일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에서 ‘2024 부산오페라시즌’ 마무리 작품으로 선보인 도니체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부산 제작 오페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였다. 비록 콘서트 오페라(원뜻은 무대 장치나 의상 없이 진행하는 연주회 형식의 오페라)였지만, 무대 세트를 직접 제작하고, 의상과 분장까지 갖춘 성악가들이 나와 전막 공연처럼 진행했다. 부산오페라시즌이란 이름으로, 부산오페라하우스 합창단·오케스트라 단원을 자체 선발·운영한 2022년 이래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는 평가였다. 오페라 부파(코믹 오페라)답게 코믹하고 발랄한 요소도 있었지만, 공연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행복해 보였다. 아주 드물게 오페라 재공연 요청도 잇따랐다.
오페라를 처음 보는 관객은 물론이고, 애호가·전문가까지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날 호평을 끌어낸 데는 엄숙정 연출의 힘이 가장 컸다. 조희창 음악평론가는 “이번 오페라에서 가장 큰 박수를 보내야 할 곳은 엄숙정의 연출이었다”며 “그는 이탈리아 전원극을 현대의 디자이너 작업실로 옮겨놓았는데 모든 설정과 장치가 밝고 색채적이며 세련되었다. 특히 곳곳에 배치된 관객 참여적 요소들이 극을 자연스럽고 경쾌하게 연결해 주었다. 적은 예산으로 뽑아낼 수 있는 최대치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향후 이런 식의 레지테아터(RegieTheater, 연출자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된 극) 오페라가 늘어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첫날과 이틀째 출연진은 달랐지만, 각각의 색깔로 관객을 만족시켰다. 특히 이틀 모두 출연한 둘카마라 역의 베이스 김대영은 명확한 발성과 탁월한 연기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울산 출신으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김대영은 이날 부산 관객들한테도 확실히 눈도장을 찍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틀 모두 출연한 신예 곽유정(잔네타)은 존재감은 낮은 캐릭터였지만, 성장 가능성을 기대하게 했다.
이미 월드클래스로 활약하는 소프라노 홍혜란(아디나)과 테너 최원휘(네모리노) 부부, 바리톤 이동환(벨코레), 베이스 김대영 조합의 첫날 공연은 묘한 긴장감과 흡인력으로,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홍석원 부산시향 예술감독과 함께 첫날 공연을 관람한 이병욱 인천시향 상임지휘자는 “걸크러시 모드의 홍혜란 아디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웃음을 선사한 최원휘 네모리노의 새로운 모습에 반했다”며 “완전 팬 모드로 관람한 행복한 공연이었다”고 즐거워했다. 다만 2막에서 네모리노로 분한 최원휘가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감동적으로 부른 뒤 객석에선 앙코르를 요청하는 박수가 한참 동안 이어졌지만, ‘극 중 앙코르 논란’을 빚은 서울 ‘토스카’ 공연 여파로 성사되진 못했다.
둘째 날은 부산 출신의 성악가들로 꾸린 무대였는데, 첫날과는 또 다른 색깔로 관객들의 만족감을 높였다. 이날 소프라노 박하나는 더욱 과감해진 아디나를 선보였고, 부산 데뷔 무대를 장식한 테너 도영기의 네모리노는 수줍은 듯 부드러웠다. 테너 기근에 시달리는 부산으로선 유럽을 무대로 활동 중인 오페라 가수의 발견이 반갑기만 했다. 바리톤 김종표의 벨코레는 더욱 코믹해지면서 자신만만해졌다. 도영기의 은사인 민상순 전 부산대 교수는 둘째 날 공연을 보고 “정말 잘 커서 다행이다. 영기가 열심히도 하지만, 체격도 좋아지는 등 조건을 두루 갖춘 만큼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덕담을 했다.
부산대 출신으로, 독일 비스바덴 주립극장에서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소프라노 스텔라 안(안지현)은 때마침 부산에 머물고 있어서 이틀 내내 공연을 관람한 뒤 “부산의 오페라 제작 수준도 이 정도면 상당히 올라온 듯하다”면서 “앞으로는 이들이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휘도 첫날 공연을 마친 후 “좋은 분들이 힘을 합쳐서 좋은 작품을 만든 만큼 단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다”며 “향후에는 공연 횟수를 늘려 더 많은 관객과 만나도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오페라 애호가 최우석은 “독일 합창단만큼은 아니더라도 30명 규모의 부산오페라합창단이라도 꾸리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극장은 예술가의 일터이고, 시는 수천억 원짜리 회사(부산오페라하우스)를 하나 짓고 있는 셈인데, 음악가들이 직장을 못 찾는 건 애석하다. 공장(부산오페라하우스)을 하나 세웠는데 사무직만 있고, 기술자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역설했다. ‘클래식부산’에 최근 부임한 박민정 신임 대표도 둘째 날 첫 공연장 나들이에 나서 “오페라 공연은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건 아니기에 몇 년 동안 내공이 쌓인 덕분일 것”이라고 축하했다.
금정문화화관 김유니 공연팀장은 “이틀 동안 공연하면서 재공연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무대 세트를 보관할 곳이 별도로 없어서 폐기하게 된 것이 아쉽다”면서도 “경성대 패션디자인학과와 협업으로 제작한 오페라합창단 의상 등은 보관해 향후 사용 기회를 엿보게 된다”고 밝혔다.
2024-09-1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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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표 구하기 힘들 듯?” 부산시향 향한 즐거운 고민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홍석원 지휘자가 짧은 시간에 자기 색깔을 제대로 입혔네요.” “오케스트라와 밀당을 제대로 보여주는 듯해서 보기 좋았습니다.” “앞으로 부산시향 연주회 입장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지는 것 아닐까요!” “지금보다 더 자주 시향 연주회를 찾을 거 같습니다.” “작년 객원으로 부산시향 지휘봉 잡았을 때와는 완전 다른 느낌인 게, 상주 예술감독 타이틀이 무게감이 크긴 큰가 봅니다.” “이제, 부산시향이 공연하는 오페라 연주를 들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부산시향이 음악으로 시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6일 오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12대 홍석원 예술감독 취임 기념 제612회 정기 연주회 ‘프렐류드’에 쏟아진 반응이다. 공연이 끝나고, 대극장 3층까지 꽉 채운 객석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붙들고 현장에서 전해 들은 소감이지만, 창단 62년의 부산시립교향악단이 새 예술감독을 맞아 산뜻하게 출발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응원과 격려,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날 음악회는 반가운 매진 소식과 함께 차재근 (재)부산문화회관 대표와 임직원, 부산시립합창단 이기선 예술감독 등 시립예술단 관계자, 신상준 인제대 교수와 김동욱 부산대 교수 등 역대 부산시향 악장, 부산시 이준승 행정부시장과 심재민 문화체육국장 등 행정 관료,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일반 시민 관객 약 1400명이 함께했다. 2시간을 훌쩍 넘긴 연주가 끝난 뒤 지휘자는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었고, 객석은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했다.
첫 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는 “아름답고 희망에 찬 음악”이어서 프로그램에 포함했겠지만, 약간 아쉬웠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래도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코르산티아의 역동적인 연주를 돋보이게 하려고 지휘자 홍 감독이 오케스트라의 화음과 빠르기, 음량 등을 조절하면서 밸런스를 잡아간 모습은 탁월했다는 평가였다. 협주곡의 아쉬움은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홀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와 피아노 위치 등에서 빚어진 듯했다. ‘황제’ 2악장이 시작될 때 들려준 현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2부에 연주한 두 곡은 홍 감독이 앞으로 오케스트라의 색깔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다. 2부 첫 곡은 전임 최수열 예술감독에 대한 ‘오마주’ 의미로 R.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모음곡을 연주했는데, 오페라 지휘 역량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홍 감독 이력과 맞물려 부산시향이 연주하는 제대로 된 오페라를 보고 싶다는 희망 사항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 곡에 등장하는 첼레스타와 래쳇 같은 타악기는 평소 보기 드물었던 만큼 보고, 듣는 재미도 있었다.
마지막 곡 리스트 교향시 제3번 ‘전주곡’은 홍 감독 체제의 확실한 출발을 알린 곡이었다. 홍 감독은 앙코르도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3막에 나오는 ‘전주곡’을 들려줬다. 시향 단원 A 씨는 “우리 모두에게 감춰져 있던 그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해 주었다”는 말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단원 B 씨는 “홍 감독님은 스타일이 연습 때부터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면서 “본 공연은 얼마나 달라질까 싶어서 공진단을 먹고 왔다”고 말해 힘든 연주였음을 고백했다.
연주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만난 홍 감독은 “단원들이 잘해줘서 고마웠고, 뭐가 문제인지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또 “제가 보기보다 섬세하고 부드럽다”고 말하며 특유의 ‘스마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통적인 관현악 레퍼토리는 물론 오페라와 발레, 현대음악을 모두 아우르는 젊은 명장으로 일컬어진 홍 감독이 부산시향을 만나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부산시향은 또 얼마나 달라질지 궁금해진다.
2024-09-0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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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기대 컷던 ‘나비부인’, 연출 부재 아쉬워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제대로 된 오페라 한 편을 제작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부산시가 주최하고, (재)부산문화회관·금정문화회관이 공동 제작한 전막 오페라 ‘나비부인’ 이야기다. ‘2024 부산오페라시즌’을 맞아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이틀에 걸쳐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였다. 부산에서 연간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작품이 10여 편에 이르지만, 그중 전막 공연은 손꼽을 정도이다 보니 관객들의 기대도 어느 때보다 컸다. 더욱이 올해 오페라시즌 제작 발표회 때부터 ‘무대 세트도 못 만들고 싸게 빌려 오는 부산 오페라 현실’(부산일보 6월 20일 17면 보도)로 크게 질타를 받은 터라 실제 공연은 그 한계를 얼마나 극복했을지 궁금했다.
전반적인 작품 수준은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첫날과 둘째 날 두 공연을 모두 보거나 둘 중 하나를 본 관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연출의 부재’를 언급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음악인 A 씨는 “오페라 대본과 음악은 바꿀 수 없다 치더라도 연출로써 이를 커버해야 할 텐데 안 봐도 다음 장면이 그려질 정도였고, 무대는 기시감이 드는 게 설득력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오페라인 B 씨는 “원작연출 정갑균이란 표기를 보며 김숙영 연출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것은 제작 발표회에서 나온 의문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B 씨는 또 “조명은 너무 어두워 성악가들의 표정 연기를 볼 수 없었고, 무대 상·하수의 거대한 벽은 시종일관 답답함을 주었으며, 무대 연출에서 합창단과 주·조연의 동선이 무대 앞으로 쏠리면서 1막의 핑커톤과 초초상 대화는 너무나 산만했다”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배역별로는 첫날 무대를 장식한 ‘초초상’의 소프라노 조선형은 전통의 강자를 뽐냈고, ‘핑커톤’의 테너 박지민은 ‘혈기 넘치는 미국인’으로 에너지가 넘쳤다. 둘째 날의 초초상 임경아는 한층 조심스러웠으며, 핑거톤의 양승엽은 당당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고로’의 테너 원유대는 첫날보다 둘째 날이 훨씬 편해 보였다. ‘스즈키’의 메조소프라노 신성희(첫날)와 김세린(둘째 날)은 호평이었다. 양승엽 외에 부산 성악가로는 둘째 날 ‘샤플레스’ 역의 바리톤 나현규가 안정적이었다. 또한 ‘본조’를 맡은 베이스 김정대·박순기, ‘케이트’의 메조소프라노 이지영은 역할이 크지 않고, 무난했다.
60대 부산 기업인 관객 C 씨는 “여주인공 초초상은 극에 따르면 열다섯 살의 게이샤였고, 2막에선 열여덟이 되는데 이를 소화하는 가수들은 40대 같아 보이는 게 도무지 극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고 한탄해 오페라의 비주얼과 작품 내용이 맞지 않아 생기는 괴리감 문제는 어김없이 불거졌다. 이에 비해 클래식 애호가 D 씨는 “연극계에서는 시대에 맞춘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텍스트 자체를 수정하고 새로 쓰는 작업이 일반화됐지만, 오페라 분야는 변화가 어렵기 때문에 음악(오케스트라와 노래)과 연기 등에 충실해야 하는데…”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D 씨는 “바그너의 복잡한 오페라와 달리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아주 단순한 줄거리에다 중창도 많지 않지만 오래도록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음악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반면 백현주 작곡가는 “시즌 오케스트라라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연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병욱 지휘자가 컨트롤을 잘한 것 같다. 다만 시즌 합창단의 경우, 병풍처럼 만들어 버려서 안타까웠고, 결국 이런 것도 연출의 역량 때문 아니겠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 백 작곡가는 “지역의 테너 사정이 썩 좋은 편이 아닌 만큼 잘하는 사람을 데려와서 무대에 세우는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비중이 크지 않은 역까지 서울에서 데려오는 건 주최 측의 성의 부족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첫날 공연을 관람한 (사)대한민국오페라단 신선섭 이사장은 “지역 성악가들은 서울에 비해 설 수 있는 무대가 적은 것도 사실”이라면서 “오페라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무대가 마련돼 지역 성악가한테도 성장의 기회가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금정문화회관의 콘서트 오페라 ‘사랑의 묘약’ 공연(9월 11~12일)까지 끝낸 뒤 종합 품평회 등을 해봐야 알겠지만, ‘클래식부산’이라는 별도 조직도 올해 새로 출범한 만큼 내년에는 직접 제작 방식을 포함한 여러 방면에서 다각도로 장단점을 비교한 뒤 부산 오페라시즌 개선을 포함한 전막·콘서트 오페라 제작 방침을 정하겠다”고 전했다. 어찌 됐든, 현재의 오페라 제작 방식을 심도 있게 재검토하는 건 불가피해졌다. 2027년 개관을 목표로 건립 중인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성공적 운영과 오페라 전문 인력 육성, 오페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부산오페라시즌’의 당초 취지에 부합하는 좋은 방안을 찾기 바란다.
2024-09-0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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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꾼이 디딜 ‘시간의 징검다리’ 놓은 정영만 구음 빛나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호남은 소리, 춤은 영남’이라고 했다. 영남엔 최고 춤꾼이 많았다. 그런데 춤을 부르는 영남무악(舞樂·춤 음악)이 자취를 감춰 호남이나 경기의 악에 맞춘다고 한다. 영남 하면 춤인데 춤 음악 대부분이 영남악(樂)이 아니라니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국립부산국악원의 2024 영남춤축제 ‘춤, 보고 싶다’ 일환으로 지난 3일 오후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에서 선보인 ‘영남무악’이 그 질문에 답했다. 춤 음악의 근본은 김홍도의 ‘무동(舞童)’에 나오듯 좌고, 장고, 목피리, 겹피리, 대금, 해금 등 삼현육각인데 영남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통영의 삼현육각 시나위(한국 무속음악의 일종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기악곡)를 중심으로 판을 만든 것이다. 경상좌도(낙동강 동편)에서 가장 춤이 흥했던 동래의 반주음악 전승이 끊어졌고, 경상우도(낙동강 서편)의 풍류 본향 진주 삼현육각도 지금은 사라졌기에 이날 정영만과 남해안별신굿이 보여준 영남무악은 그만큼 귀한 자리였던 셈이다.
이날 공연의 기획·연출을 맡은 진옥섭은 “춤은 발로 노닐고, 음악은 손으로 하니, 춤판이란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한다”며 “춤을 보면 음악이 들리고, 음악을 들으면 춤이 보이는 것이 판다운 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연주는 징과 구음을 맡은 정영만(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을 필두로 자녀인 정석진(피리), 정승훈(대금), 정은주(해금), 그리고 제자 이현호(장구), 신승균(타악), 이정민(가야금)이 함께했다. 특히 정영만 선생의 구음은 “춤꾼이 디딜 발밑에 시간의 징검다리를 놓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최고의 춤 음악을 선사했다.
영남무악의 시작은 처용이 등장하는 ‘무제(舞祭)’가 알렸다. 김운태와 연희단팔산대, 그리고 정영만과 남해안별신굿 악사들이 함께 처용을 부르는 노래를 하며 파란 천 위에 달걀 흰자위와 참깨로 처용을 그려 무대 위로 걸어 올리자, 객석에선 환호와 함께 큰 박수가 쏟아졌다. 이윽고 영남무악에 참가하는 춤꾼 전원이 무대로 나와 한바탕 즉흥춤을 춘 뒤 처용신에게 예를 갖추는 것으로 무제는 끝이 났다.
본격적인 춤 무대는 남해안별신굿 반주에 맞춰 호남 출생(전남 목포)이지만 영남(부산)에서 춤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춘 부산춤꾼 이민아가 열었다. 이민아는 2022년 이 춤으로 제46회 부산동래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에서 기악·무용일반부종합대상(1위·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어진 무대는 서울대 음대 국악과 교수로 있는 이지영이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려 선보인 승무였다. 이지영은 가야금으로 일가를 이뤘지만, 경주의 예기 이말량(1908~2001)에게 가무악을 사사한 덕택에 통영 삼현육각 반주로 옛 영남승무 모습을 선보일 수 있었다.
동래학춤은 부산에선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는 무대지만, 김태형의 쇠가락, 김신영의 구음, 남해안별신굿의 타악이 합을 맞췄다. 김갑용이 춘 영남지전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남의 박병천 음악에 맞추던 것을 영남으로 바꿔서 제대로 그 맛을 살려보자며 남해안별신굿 음악에 맞춰서 췄다. 원래도 이 춤은 망자를 위한 춤이지만 시나위 음악에 스며들어서 무거운 듯 적적하면서도 우아함을 연출했다.
신은주 창작춤 ‘굿 바라’는 남해안별신굿 즉흥음악에 맞춰 맨발로 춤을 추는데 굿판의 즉흥성과 영남의 파릇파릇한 기세가 어우러져 흥과 신명이 넘쳤다.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은 특히 압권이었다. 소고는 어깨에 메고 상모를 돌리면서 바람개비처럼 ‘연풍대’를 돌거나 몸을 공중으로 날려 비트는 ‘자반뒤집기’는 기예의 극치였다. 현재 ‘연희단팔산대’ 이사장으로, 호남 여성농악단의 명맥을 잇고 있는 김운태는 유랑 시절 경기와 부산 조방 앞 등에서 공연하며 익힌 영남 춤을 더해 자신의 바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날 공연은 오후 5시에 시작해 7시를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객석에선 웃음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2시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장쾌했다. 한편 영남무악은 일부 출연진과 작품을 변경해 내달 서울에서 열리는 제27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페스티벌)와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2024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에서도 각각 공연된다. 영남무악이 새로운 영남춤 브랜드 공연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4-08-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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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합창단 벌인 판 위에서 청년 예술가들 빛났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다소 미흡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젊은’ 에너지가 넘쳤다. 의욕과 도전이 빛났다. 판은 부산시립합창단이 벌였지만, 사실상 주인공은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악장 심채영)과 경성콘서트콰이어(인스펙터 서유민), 동아대합창단(단장 박정훈) 등 100여 명의 청년 예술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시립합창단(예술감독 이기선)이 23일 오후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톨가 카쉬프(1962~ )의 1시간 남짓 걸리는 ‘퀸 심포니’(원제 The Queen Symphony:A symphony in six movements inspired by the music of Queen)를 초연했다. 이날 공연 지휘와 레퍼토리 선정은 시립합창단 임희준 부지휘자가 했다. 합창과 오케스트라 지휘를 함께 공부한 임 부지휘자는 2020년부터 시립합창단 부지휘자를 맡고 있다.
이번 공연이 주목받은 이유는 전설적인 영국의 록 밴드 퀸 음악에 영감을 받은 6악장의 교향곡 ‘퀸 심포니’를 부산에선 처음으로-보도자료는 ‘한국 초연’으로 잘못 배포됐다-선보인 덕분이다. 한국 초연은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2021년 10월 1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가 기록했다. 영국 왕립 음악학교에서 지휘와 작곡을 공부한 톨가는 2002년 11월 6일 영국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이 곡을 세계 초연했다.
특별 연주회는 시립합창단이 주도했지만, 곡은 합창보다 기악에 가깝다. ‘Radio Ga Ga’ 모티브 등과 합창이 나오는 1악장, ‘Love of My Life’의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인 2악장, 첼로와 바이올린이 주고 받는 협주곡이 포함된 3악장, ‘보헤미안 랩소디’ 선율과 ‘We Will Rock You’ 등이 등장하는 5악장을 지나 쉬지 않고 이어지는 6악장의 ‘안단테 소수테누토’는 음 하나하나를 충분히 눌러 느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처럼 장엄한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어우러지며 마무리된다. 곡 성격상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무대 배치도 신경 썼다. 포디엄 바로 앞 정중앙에 그랜드피아노를 두고, 그 양옆으로 오케스트라를 배치했으며, 무대 깊숙이 100명 가까운 혼성 4부 합창단(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파트)이 자리 잡도록 했다. 연주에 참여한 총인원은 170여 명에 이른다. 연주단 규모로 치자면 흡사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을 보는 듯했다. 그만큼 자주 공연되는 곡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다목적홀 부산시민회관 좁은 무대에 많은 연주자가 올라가느라 후면(정면) 음향반사판을 없앴다. 아쉬운 음향이었다. 시립예술단이 주로 이용하는 부산문화회관은 지난달부터 부설주차장 확장 공사에 들어가 올여름 시립예술단 극장 공연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태. ‘2024 서머 판타지’ 타이틀로 진행한 시립합창단 공연은 부산시민회관으로 옮겨서 진행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약 900명의 관객은 5060세대는 물론이고 MZ세대까지 다양했다. 공연이 끝난 뒤 대체적인 반응은 “재미있었다” “신선했다”였지만, “퀸의 유명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교향곡이라고 해서 퀸 노래 한두 곡쯤은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으로 들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 클래식 관현악곡이었다”며 허탈한 미소를 짓는 관객도 있었다.
공연에 참여한 청년 예술인들은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전했다. 경성콘서트콰이어 황인태 베이스는 “시립합창단 선생님들과 함께하면서 소리 내는 질감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배웠다”며 “‘보헤미안 랩소디’ 정도만 알았는데, 새로운 곡을 많이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베르디 레퀴엠’ 공연 이후 시립합창단 공연을 찾기 시작했다는 관객 홍새롬 씨는 “유명 오케스트라가 발매한 음원으로 곡을 찾아서 듣고 왔지만, 라이브 공연은 또 다른 매력”이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공공 예술단의 역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번처럼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청년 예술가에게 새로운 공연 기회를 준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립합창단 특별 연주회는 참 특별했다.
2024-07-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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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이렇게 꽉꽉 차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작은 힘이 모인 소공연장 공연이 부산 문화의 큰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 감동적입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하루하루 음악에 흠뻑 취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부산의 소공연장이 더 흥해서 더 많은 공연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노란색 포스트잇에 꾹꾹 눌러 쓴 소감이 ‘2024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우리 동네 문화살롱 페스타 3rd’ 의견 개진 게시판을 빼곡히 장식했다. 감상평, 개선점 등 뭐든지 적어 달라는 주최 측 요청에 관객이 남긴 메시지였다. 그날 본 공연 소감부터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이나 부산의 작은 공연장에 대한 기대와 주문 등 다양했다.
이달 1일 부산 서구의 ‘문화주소 동방’에서 막을 올린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이 중반을 지나 종반에 접어들고 있다. 올해는 행사 기간이 두 차례(7월과 10월 총 62회 공연 41개 공연장 참여)로 늘었고, 적은 금액이지만 1만 원의 입장료를 받으면서 무료였던 지난해와 상황이 달라져서 혹시나 객석이 차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객석 수는 많지 않지만 공연장마다 만석이다. “서서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귀여운’ 민원에 시달릴 정도다. 심지어 ‘도장 깨기’ 하듯 공연장을 순례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목격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7시 30분 부산 동래구 명륜동 스페이스 움에서 만난 60대의 이경순 씨는 이날 공연 관람이 11번째였고, 이달 말까지 사전 예약을 마친 곳까지 치면 스무 곳은 족히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부산에 살지만 한 번도 안 가 본 곳도 있어서 “부산을 여행하듯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밝혔다.
스페이스 움은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 행사를 주최·주관하는 부산소공연장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은숙 대표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한쪽은 일반 카페이고, 다른 한쪽을 분리해서 전시회를 열고, 매주 금요일마다 기획 공연을 진행한다. 2011년 4월 시작한 스페이스 움 음악회는 지난해 5월 12년 만에 500회를 맞았으며, 이날로 550회를 기록했다.
3년 전 소공연장끼리 연대해 ‘우리 동네 문화살롱 페스타’를 만들었고, 지난해부터는 부산시 지원으로 한 달 내내 부산 어디선가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취지의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을 선보였다. 올해는 함께하려는 공연장이 늘어서 프로그램 공모(심사)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움은 이번에 5인조 오리엔탈 탱고 음악팀 메츠클라의 ‘바모스 탱고(Vamos Tango)-정열을 노래하다’ 공연을 기획해 선정됐다. 김 대표는 공연 시작에 앞서 인사말로 “오늘 여러분을 보면서 가슴 뭉클하다. 매번 이렇게 꽉꽉 차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움은 이번에 평소보다 좌석 수를 늘려서 80석 예약을 받았는데 매진됐고, 서서 관람한 사람 외에도 공연장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관객을 위해 카페 쪽에서 라이브 사운드가 들리도록 했다.
이런 분위기에 붐 업 된 메츠클라는 더욱 열성적인 공연을 펼쳤고, 객석은 환호성으로 넘쳤다. 피아노, 클래식기타, 색소폰,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바리톤 등 5명이 편성을 바꿔 가며 탱고 음악을 중심으로 라틴팝, 샹송, 칸초네를 다양하게 연주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열기는 가시지 않아서 포스트잇 응원 메시지로 이어졌다. “메츠클라만의 편곡 잘 들었어요.” “가장 훌륭한 악기는 사람 목소리라는 걸 오늘 다시 느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준비에 정성을 많이 들인 듯! 힐링하고 갑니다.” “메츠클라, 꼭 기억하고 찾아보고 듣겠습니다.”
연주자(예술가)도 관객(시민)도, 공연 주최자(소공연장)도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상의 문화공간에서 함께 감동받고 행복해지기를’ 소원하던 김 대표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다. 오늘도 부산 어디선가 ‘원먼스 페스티벌’ 공연은 이어질 것이고, 그곳이 우리 동네라면 크게 마음 한번 내어 볼 일이다. 공연장 문턱을 넘어서는 일은 각자 마음 먹기에 달렸다.
2024-07-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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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안무가 캠프 3년 만의 성과… 무용으로 부산-칸 잇는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지난해는 한국에 와서 처음 공연을 하면서 한국을 새롭게 발견했다면, 올해는 댄서들, 즉 무용 예술가에 대한 발견이 있었습니다. 다음 여정은 한국, 부산에서 만난 무용수들을 제 고향 프랑스 칸으로 데려가서 우리 무용단과 함께 공연하는 일입니다. 프랑스와 한국, 부산과 칸이 부산이 영화뿐 아니라 무용예술로 연대와 협력을 꽃피우고 싶습니다.”(에르베쿠비무용단 대표 겸 안무가 에르베 쿠비)
“부산과 칸 협력 프로젝트가 비로소 가동되는 것이죠. 쿠비가 조심스러운 마음에 굉장히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이번 쇼케이스 작품은 이미 내년 칸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받았습니다. 이번에 작업한 몇몇은 정단원 제안을 받을 것 같고요. 이런 게 바로 부산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창작·유통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습니다.”(부산국제무용제 신은주 운영위원장)
아직은 모든 게 ‘진행 중’이지만 부산국제안무가캠프 개최 3년 만에 이룬 놀라운 성과라 할 만했다. 지난해 부산국제무용제(BIDF) 전막 초청작으로 영화의전당에서 아시아 초연한 에르베쿠비무용단의 ‘낮이 밤에 빚진 것’ 공연을 볼 때만 해도 “대단한 작품을 부산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올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부산국제무용제조직위원회는 에르베쿠비무용단의 대표이자 세계적인 명성의 안무가 에르베 쿠비를 부산으로 초청해 지난 3일부터 16일까지 제3회 BIDF 부산국제안무가 캠프를 진행했다. 쿠비는 마스터안무가로, 같은 무용단의 조안무가 훼쌀 함락, 무용수 압델가니 훼랃지와 마마정김이 지도위원으로 수고했다. 창·제작 요청을 칸시(市)로부터 받으면서, 서울이 아닌 부산(BIDF)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부산 공연이 인연이 됐다.
31명의 지원자 중 최종 선발된 14명의 남녀 무용수는 쿠비가 이끄는 2주간의 캠프를 통해 안무법에 대한 마스터클래스와 안무 창작품 제작 과정에 참가는 특별한 경험을 쌓았다. 14명 중 절반이 부산 출신이고, 나머지는 서울 대구 등 전국에서 선발했다.
지난 16일 오후 부산시민회관 4층 연습실에서 열린 쇼케이스 공연은 이번 캠프를 마무리하는 결과물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날 쿠비는 에르베쿠비무용단의 최신작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무적의 태양신)’에서 영감을 받아 재창조한 ‘솔 인빅투스의 불빛’이라는 10여 분짜리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자리에는 주한프랑스대사관 루도빅 기요 문화교육과학참사관, 현대무용가 박은화 부산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비보잉이 가미된 현대무용 공연은 짧았지만 감동적이었다. 박 교수는 “짧은 시간 완성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기에 놀라웠다”며 “댄서들이 움직이는 매 순간이 불꽃 같았고, 몇몇 제자를 포함해 모든 댄서가 행복하게 춤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용수로 참가한 황예인은 “쿠비 안무는 섬세함이 남달랐다”면서 “관객이 보는 옆모습까지 신경 쓰고, 연습 때도 무용수마다 일일이 찾아와 코멘트 했다”고 감사를 전했다. 백서현은 “함께 춤추고, 즐겁게 춤추라고 늘 강조한 쿠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고 말했고, 유예리는 “지금까지 군무를 많이 춰 봤지만 2주간 워크숍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라고 언급했다. 한기태는 “춤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됐으며, 이런 교류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쿠비는 “한국 댄서들은 표현력이 참 좋은 편이다. 부족한 점도 없진 않지만, 굉장히 빨리 배우고 익히면서 부족한 점을 지워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소 1년에서 2~3년이면 훨씬 좋은 댄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기에 우리 무용단의 정단원으로 캐스팅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르베쿠비무용단은 다국적 무용단으로 유명하다. 현재 30여 명의 단원이 있는데 20여 국적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인 단원도 2명이 있었다.
신 운영위원장은 “이런 기회를 통해 한국, 특히 부산에서 세계적인 무용가의 지도를 받고, 작품 제작 과정에 함께하고, 더 나아가 유럽 현지 무대에 함께 설 기회를 얻거나 단원으로 스카우트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라며 선배 무용가로서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또 “앞으로도 부산의 재능 있는 예술 인재를 발굴해 국제 무대와 연결하고, 동시에 작품 제작과 유통의 매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한편 기요 참사관은 “무용 교류와 별개로 오는 9월 부산(홍티아트센터)에서 부산시와 칸시가 협력한 프랑스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3개월간 문을 연다”면서 “부산과 칸의 문화협력이 앞으로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2024-07-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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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춤에서 현대 무용 못지않은 '파워' 느끼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오랜만에 열정적인 춤 무대를 만났어요” “숨소리까지 작품이 되는 걸 알고 경이로웠습니다” “빛과 음악,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돋보인 무대였습니다” “한국 창작 무용과 라이브 재즈 음악 조합이 인상 깊은 공연이었습니다” “‘빙빙’의 의미를 어떻게 풀었는지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대본이 약했던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지난 17~18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만난 부산시립무용단 제89회 정기 공연 ‘빙빙 Being Being’(안무·연출 이정윤 예술감독, 부산일보 5월 16일 16면 보도)에 쏟아진 무용 전문가를 포함한 관객 반응이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5월 제87회 정기 공연이자 창단 50주년 기념 작품 ‘1002 Nights_천 두 번째의 밤-춤추는 세헤라자데(셰에라자드)’ 이후 근 1년 만에 이 예술감독 안무·연출로 만난 시립무용단 신작 공연인 데다 부임 4년 차를 맞은 예술감독이 직접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관객은 이틀간 900명 가까이 관람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공연 시간 75분 내내 무대를 지킨 이 예술감독이 무용수로서도 중심을 잘 잡아준 덕분에 작품의 완성도나 관객 호응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뛰고, 구르는 무용수 모습에서 객석의 관객은 물론이고 함께 뛴 단원들조차도 감동이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시립무용단 안무자를 역임한 A 무용가는 “(무용수들) 움직임이 되고, 춤 본연에 집중한 무대여서 보기 좋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반복된 패턴 안무를 조금만 줄이고, 이정윤 예술감독 독무를 부각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었는데, 예술감독이 직접 무용수로 뛰면서 자기 분량을 늘인다는 게 부담스럽긴 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B 무용가는 “예술감독이 풀 타임으로 뛰는 공연이었기에 단원들은 더욱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민간 무용단은 이제 무용수가 없어서라도 저렇게 대형 작품을 만들거나 공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립무용단 역할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지에서 공연을 보러 온 C 무용가는 “이전 공연보다 무용수들 기량은 확실히 발전했고, 열정적으로 다가왔다”면서 “다만 춤의 모티프가 된 ‘강강술래’의 ‘달’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오로지 눈에 보이는 한 가지로만 드러내니까 감흥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즉, 달을 해석하는 게 자기 삶과 어떻게 연결해서 뭘 보여주고자 하는지, 그걸 철학적으로 어떻게 풀었는지가 안 보이니까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D 무용가는 “색소폰과 일렉트릭 기타 등 한국 창작무용으로선 드물게 라이브 재즈 연주와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한 건 신선했는데 색소폰 음향이 다소 강해서 여운을 즐기기엔 다소 아쉬웠다”고 밝혔다.
시립무용단 강모세 수석은 “입단한 지 20년이 넘도록 여성 무용수들 비중과 크게 다르지 않게 남자 무용수들끼리 단독 무대를 30분 넘게 가진 건 처음이었는데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예술감독님 옆에서 협력안무도 겸하면서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역시 협력안무와 무용수로 함께한 김미란 부수석도 “다들 힘들다고 난리였고 저도 심장이 아릿했는데 이건 제작 과정과 연습 과정을 다 알기에 더 와닿은 게 아닐까 싶다”고 털어놨다.
음악 작업을 처음 함께한 손성제(색소포니스트 겸 작곡가) 음악감독은 “무용음악은 처음이었는데 라이브로 연주하면서도 환상적이었다”며 “이정윤 예술감독은 천재 같다”고 감탄했다.
한편 이번 시립무용단 정기 공연엔 지역의 원로 무용가와 무용학도들도 꽤 많이 공연장을 찾아 응원과 덕담을 나누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2024-05-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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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아이돌’ 김준수가 부산서 토크 콘서트 연 이유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흔히 판소리의 3대 구성 요소는 ‘창(소리), 아니리(말), 너름새(발림, 몸짓)’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추임새까지 넣어서 관객과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리꾼 김준수(32·국립창극단 부수석 단원)는 ‘소통의 음악’으로서 판소리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를 썼다. ‘국악계의 아이돌’로 통하는 김준수가 지난 14일 오후 부산에 왔다. 부산시민회관이 기획한 토크 콘서트 ‘살롱 드 국악’ 단독 진행을 위해서다.
김준수는 이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뿐 아니라 자기 장기인 소리꾼으로서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 소리를 선보였다. 특히 앙코르로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부를 땐 록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객석까지 불을 환하게 밝힌 가운데 다 같이 기립해 손뼉과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얼씨구, 좋~다, 잘한~다”를 연발했다. 객석 점유율도 약 70%로, 첫 시도치고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이날 김준수가 소극장 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런데 명색이 소리꾼인데 고수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무대에 올랐다. 옷차림도 예상 밖이었다. 흰색 상·하의에 멋스러운 브라운색 재킷을 걸쳤다. 의아해하는 관객을 향해 김준수는 첫마디를 뗐다.
“소리 하는 사람이어서 한복 차림으로 인사드리는 게 당연할 수 있는데 저는 요즘 사복을 즐겨 입습니다. 아직 우리 국악 판소리가 왠지 고루하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분이 많더라고요. 일상복처럼 가까이 있는 음악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편한 복장으로 무대에 섭니다. 고수는 왜 없냐고요? 여러 음악을 MR 반주로 들려드릴 겁니다. 기대되시죠?”
전남예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재학 시절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 춘향전’과 국립창극단의 ‘배비장전’에서 객원 주역으로 뽑혔던 그는 3학년이던 2013년 22세의 나이로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당시 “창단 51년 만의 최연소 입단”으로 화제가 됐다. 이후 ‘메디아’ ‘배비장전’ ‘오르페오전’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 등 굵직한 신작의 주연을 꿰차며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판소리라는 걸 접하고 너무 신기한 마음에 부모님을 졸라서 소리에 입문했습니다. 소리와 인연을 맺은 뒤에는 명창에 대한 꿈을 꾸면서, 이 시대의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또 공감할 수 있는 소리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열심히 소리 공부를 한 덕분에 예술고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는데, 창극이라는 또 다른 무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전통 소리를 하면서 연기도 하는 창극 배우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는 별도의 사회자가 있거나, 대담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김준수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격으로 원맨쇼를 벌였다. 심지어 고수조차 대동하지 않은 채 혼자 무대에 올랐다. 토크 콘서트가 끝나고 무대 뒤에서 만난 김준수는 “판소리 완창은 혼자 해 봤어도 이런 토크쇼는 처음이어서 많이 긴장했다”고 털어놨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처음 부산시민회관으로부터 ‘살롱 드 국악’ 출연 제의를 받고 흔쾌히 수락한 이유도 “최근 국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대중과는 거리가 있고,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국악 대중화를 향한 그의 노력과 열정은 듣던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김준수는 국립창극단 배우로서 본연의 업무나 소리꾼 공연 외에도, KBS1 ‘국악한마당’을 비롯해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3, KBS2 ‘불후의 명곡’, KBS1 ‘열린음악회’, MBC ‘복면가왕’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고, 음반과 음원 활동, 심지어 뮤지컬에도 출연하며 국악인으로서 외연을 확장하는 중이었다. “이 모든 활동이 사실은 제가 넓혀가고 싶은 무대이기도 하지만, 국악을 어려워하는 관객들과 거리를 좁히겠다는 저의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이날 공연은 소리꾼들이 목을 풀기 위해서 혹은 그날의 컨디션을 미리 체크하기 위해 부른다는 단가(사철가)부터 시작해 JTBC ‘풍류대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불렀던 ‘살아야지’, 그리고 에스닉 밴드 ‘두번째달’과 함께 작업한 판소리 <춘향가> 앨범 가운데 ‘적성가’와 ‘이별가’, ‘어사출두’ 등을 들려줬다. 한복 대신 일상복을 입고, 고수의 북장단 대신 MR 반주로 부르는 소리가 익숙하진 않았지만, 신선했다. 관객 만족도도 상당히 높아 보였다.
김준수는 현재 자기가 몸담은 국립창극단 작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 판소리는 12바탕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지금은 5바탕만 존재하고 나머지 7바탕은 유실돼 국립창극단에서 7바탕 복원 시리즈도 진행했습니다. 특히 지난 2021년 국립창극단에서 공연한 ‘리어’는 지난달 재연까지 마쳤는데 올 10월엔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영국의 바비칸센터 무대에도 오르게 됩니다. 우리 창극을 알릴 기회여서 모든 단원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부산시민회관 안주은 시민예술팀장은 “무대에서 공연으로만 만나는 예술가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며 “이야기도 듣고 소리도 들으면서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국악에 시민들이 좀 더 가까워지길 바랐다”고 취지를 밝혔다. 안 팀장은 또 “단순히 강연하는 일반적인 아카데미를 뛰어넘어 예술가가 살아온 이야기와 퍼포먼스를 함께 경험하며 관객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는데 결과가 성공적이어서 예술가의 이야기 시리즈는 내년에 다른 장르로 기획해 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준수도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우리 판소리가 절대 어려운 음악이 아닙니다. 여기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국악 공연을 보실 때 항상 오늘 같은 추임새로 함께하면 공연자도 힘이 나고 그 판을 만들어 나가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시도하겠지만 지켜봐 주십시오. 다음엔 꼭 창극 공연으로 부산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살롱 드 국악’ 2회 차는 오는 6월 27일 경기소리꾼 이희문의 ‘내 민요는 섹시하지’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형형색색의 가발, 하이힐 등 독특한 비주얼로 자신만의 개성을 선보이는 이희문은 2017년 퓨전국악으로 한국 최초로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 ‘Tiny Desk Concert’에 초대받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생긴 대로 살아간다는 ‘B급 소리꾼’ 이희문은 흔히 생각하는 민요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벗어난 무대로 ‘파격의 아이콘’, ‘국악계의 이단아’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024-05-16 [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