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共和國 비리 사건별 수사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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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학捧씨 聯철주식 東國에 양도 압력

㉮설립과정△84년3월부터 87년12월사이에 조성된 기금은 모두 5백98억5천만원이며 이를 연도별로 보면 84년에 35명의 기업인들로부터 합계 1백85억5천만원,85년 35명의 기업인들로부터 합계 1백98억5천만원 86년에 32명의 기업인들로부터 합계 1백72억5천만원,87년에 19명의 기업인들로부터 42억원을 모금했음. △기업인들이 당초 모금 계획을 훨씬 초과하는 기부금을 출연한 것은 현직 대통령이 일해재단을 설립한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나 전두환 전대통령이나 장세동등 그 측근들이 기금출연을 강요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음.

△다만 동국제강 장상태가 제출한 영수증에 의하면 동인이 85년5월24일 2억5천만원 85년11월15일 10억원 86년5월9일 30억원을 각 일해재단 기금명목으로 기부하고 영수증을 발급받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해재단 입금장부상에는 위 2억5천만원과 10억원은 전액 입금되어 있고 30억원 부분에 대하여는 2억원만 입금되어 있어 나머지 28억원의 행방과 사용처를 조사한바 그중 2억원은 심장재단에 장상태명의로 입금된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나머지의 행방과 사용처는 밝혀지지 않았음.△기금의 관리 운영실태 수사과정에서 김인배가 86년12월23일 安賢泰 당시 경호실장으로부터 재단기금으로 전달받은 15억원을 87년7월3일까지 다른 금융기관에 예치시키고 이자9천5백만원을 유용한 사실이 밝혀졌음.

△장세동 전두환 전대통령 전용으로 영빈관등 건물 5동을 건립하도록 재단사무국에 지시,재단에서는 85년1월부터 85년12월사이에 1백32억원을 들여 영빈관 체육관 연구동등 건물 5동 연건평 4천7백평을 건축하고 86년1월1일부터 87년12월사이에 14억4천3백33만원을 들여 회관등을 건축하였음. △위 과정에서 장세동이 직권을 남용하여 84년7월 당시 건설부차관 이관용에게 위 재단 부지에 대한 건축제한 조치를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84년11월 김인배에게 영빈관등 건축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음. △본건수사중 앞서 밝힌 재단건물부지 건축제한 조치해제,영빈관 건립등과 관련된 장세동의 대통령 경호실법위반 및 직권남용,김인배의 업무상 횡령사실이 드러났음.특히 장세동은 83년9월부터 84년10월사이에 서울강남구양재동 소재 全斗煥대통령의 주택 건축 예정지를 확보할 의도로 당시 서울시장 염보현에게 그 부지 부근 일대를 공용 청사용지로 지정하게 하고 당시 이 부지에 아파트를 건립하려던 신동아건설의 토지사용 수익권을 방해했음. △김인배는 85년8월 양정모 재단이사가 사임한다는 내용으로 당시 이사장 최순달명의의 이사회 회의록을 위조한 사실이 밝혀졌다.

全斗煥전대통령 친·인척 비리

△친형 全基煥(60) 횡령등 사건=83년8월부터 88년4월사이 노량진 수산시장 공금으로 개인차량구입 및 운영비 등에 사용함으로써 2억4천9백만원의 이득을 취했다.83년7월부터 88년3월사이 장부상 수익부분을 누락시키거나 지출부분을 과다 계산하여 그 차익을 조성,매월 2천만원씩 횡령했다.88년2월말 노량진수산시장㈜의 비자금에서 6억원을 인출,전기환의 사돈인 신현기에게 무이자로 차용하여 줌으로써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사촌형 全淳煥(67) 이권개입사건=86년9월말 건설업자인 박해선으로부터 대법원에 계류중인 종합건설업 면허처분 취소의 취소청구소송을 승소케 하여 주겠다며 약2억상당의 주식을 각 교부받고 이사건과 관련하여 담당재판부에게 연말인사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명목으로 금1천2백만원을 수수했다.

88년1월27일부터 87년3월20일 사이에 박해선으로부터 고위층을 통하여 성남시 하산운동산36 임야26만평에 골프장 내 인가를 받아주겠다며 교제비 명목으로 6회에 걸쳐 3천7백만원을 교부했다.

△사촌동생 全淳煥(67) 이권개입사건=86년9월말 건설업자인 박해선으로부터 대법원에 계류중인 종합건설업 면허처분 취소의 취소청구 소송을 승소케 하여 주겠다며 약2억상당의 주식을 각 교부받고 이사건과 관련하여 담당재판부에게 연말인사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 명목으로 금1천2백만원을 수수했다.

88년1월27일부터 87년 3월20일 사이에 박해선으로부터 고위층을 통하여 성남시 하산운동산36 임야26만평에 골프장내 인가를 받아주겠다며 교제비 명목 백만원을 교부했다.

△사촌동생 全禹煥(55) 이권개입사건=88년 4월7일 고속도로 휴게소 3곳의 설치운영권을 받아 주겠다고 속이고 권태수로부터 교제비 명목으로 2천50만원을 편취.87년8월14일 황유성과 조영택으로부터 부산남구 민락동산110의1 공유수면 매립면허를 받게해 주겠다며 교제비 명목으로 5천만원짜리 약속어음 3장을 받았다.

△생질 金永道(53) 변호사법 이ㅜ반사건=88년 1월 최종규로부터 동생의 사기죄 사건을 해결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3회에 걸쳐 교제비 명목으로 2천8백50만원을 받았다. △생질 曺日天(32) 변호사법위반사건=87년5월20일 고위층에 청탁하여 서울 세곡동산1소재 임야 4만1천4백평을 그린벨트에서 해제시켜 주겠다면서 ㈜선경대표이사 李순석으로부터 경비 명목으로 6억5천만원을 교부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청와대 민정비서실에 근무하던 경정 徐政熙(43)가 86년11월 남양건설㈜대표 조익환을 협박,이 임야를 구용만에게 매각토록하여 직권을 남용했다.

△동서 洪淳斗(47) 알선수재사건=한국화물협회회장으로 재직중인 84년12월 국세청 조사국에서 한구고하물협회소속 화물운송 대리점 업체들이 화물운송 알선수수료 일부를 소득금액에서 누락한다는 정보에 따라 세무조사에 착수하자 관계업체 대표들로부터 이를 무마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국세청 관계공무원들에게 청탁해 관련 업체들이 스스로 누락소득금을 세무당국에 신고하도록 하여주고 이 협회 전무이사 권영길로부터 사례금 명목으로 3억1천6백만원을 수수했다. △처남 李昌楊(36) 횡령 및 탈세사건=85년4월30일부터 86년12월 말사이에 포항제철로부터 열연코일을 납품받아 이를 가공하여 강판을 생산 판매하면서 지급 공사비와 운송비를 과다계상하여 실제 지급한 공사비등과의 차액12얼1백여만원을 빼돌리는등 29억7백여만원을 횡령했다.

또 매출수입을 누락하거나 지급 공사비등을 과대계상하는 방법으로 ㈜동일등의 법인세와 방위세 및 부가가치세 17억7천5백여만원을 포탈했다.

△처남 李圭昇(68) 알선수재사건=84년4월중순 삼호그룹회장 조봉구로부터 조흥은행에 지고 있는 부채 2천5백여억원의 상환기간을 5년정도 유예받을 수 있도록 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교제비 명목으로 5억원을 수수했다.

노량진 수산시장 인수

△83년1월 전기환이 서울수산청과㈜의 노량진 수산물도매시장 운영기간이 83년3월31일자로 만료되는 사실을 알고 김성배 당시 서울시장에게 위 시장의 운영권을 자기들에게 달라고 부탁하였고 그 얼마후 청와대 민정비서관 손지곤도 김성배를 찾아가 같은 내용의 부탁을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5월18일부터 5월21일 사이에 납부세무서가 동회사에 대해 세무사찰을 실시하여 정확한 자료도 없이 약21억원의 탈세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그에 대한 납세 담보를 요구하자 이에 겁을낸 노명우가 83년5월24일 노량진 수산시장㈜에 위시장의 운영권을 양도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하였다. △83년5월26일부터 5월27일사이에 서울지방국세청이 동회사에 대해 2차 정밀세무조사를 실시하자 노충량도 5월30일 위시장의 운영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제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처음부터 이학봉이 개입하였다고 볼 직접적인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여러가지 사실로 미루어 시장의 운영권 양도과장에 개입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세대 육영회

△서울송파구 장지동45소재 육영회 생활관부지 2만8천2백77평은 매수과정에서 국유재산 총괄청인 재무부의 지정없이 수의계약을 하고 그 대금을 60일 이내에 영수하지 아니한 점은 국유재산법상의 절차에 위배되나 형사상 처벌한 근거는 없었음.

全斗煥전대통령 사저신.개축

△경호실장 안현태가 86년2월부터 87년4월사이에 소정의 절차를 거쳐서西大門구연희동95의5에 있는 기존사저 2층주택1채78평을 개조하고 그 옆에 95의4 대지상에 단층주택1채 1백17평을 신축했다. △위 주택 신.개축 비용등으로 약16억원이 지출되었는데 이 돈은 모두 全斗煥前대통령이 지급하였으며 경호실 예산등 국고에서 지출된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는 사저부근인 연희동200의131등 1천2백76평을 서울시의 환경녹지 특정지역 토지매입 예산중8억8천5백31만원으로 서울시 소유로 구입,86년5월부터 86년6월사이에 서울시 지역건설사업 예산에서 1억5천5백만원을 들여 나무를 심는등 정비를 했다.그 과정에서 범죄를 구성할 만한 위법사실은 발견되지 않았음. △83년10월 張世東이 사저주변 주택1채를 1억1천만원에 구입하였고,85년6월과 87년8월에 安賢泰 당시 경호실장이 사저주변 주택2채를 3억3천2백만원에 매입한 후 5천만원을 들여 보수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대통령 경호실에 필요한 시설 구입을 위하여 경호실 예산에서 지출되었으므로 정당한 것이다.

釜山하얏트호텔 소유관계

△85년2월 한일합섬이 국제그룹으로부터 인수한 부산 하얏트호텔의 실소유자가 李順子라는 의혹에 대한 것으로 수사결과 84년2월17일 이후 현재까지 호텔의 등기부상 소유자는 신남개발㈜임이 밝혀졌다.

△85년 2월 국제그룹정리시 한일합섬이 국제상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한일합섬은 국제상사가 보유하고 있던 신남개발 주식 83.1%를 모두 국제상사의 자산에 포함시켜 인수했다. △현재 신남개발의 주주는 국제상사(37.5%) 한일합섬(20%) 한효개발(7.5%) 경남모직(4%) 金중원(2%) 홍콩「체블」사(21.5%)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주주들의 주식취득자금 출처를 조사한 결과 李順子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李根安경감 고문사건

△85년9월 국가보안법위반 등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연행된 金근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회에 걸쳐 전기고문을 가한 경찰관이 李근안 경감이라는 것으로 이 같은 의혹을 밝히기 위해 金근태 및 당시 서울구치소 의무과장 金익수등 참고인 8명을 조사하고 구치소 진료기록 접견관계 서류등을 검토한바 있으나 88년12월24일이후 李근안이 잠적,더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89년1월5일부터 검찰수사관을 중심으로 3개 전담반을 편성,李근안의 소재를 계속 추적하는 한편 1월7일 전국 검찰에 李근안을 조속히 검거할 것을지시하고 1월11일 전국에 李근안을지명수배했다.

골프장 내인가

△제5공화국 기간중인 81년 1월부터 87년11월사이에 이루어진 골프장 내인가는 모두 29건임.

이를 그 성격에 따라 분류하여보면 88 제주중문 기흥 뉴서울 골프장등 4개소는 국가보훈처 관광공사등 공공기관의 요청으로 내인가 되었고 광주 통도 용평 청주 충주 춘천 부곡 광양 팔공 울산 골프장등 10개소는 지역발전의 목적으로 도지사 지방상공회의소등의 요청으로 내인가 되었음.또 한성 제일 가야 선산 서울 국제 뉴부산골프장등 6개는 해외교포들의 요청에 따라 모국투자유치의 일환으로 내인가 되었고 서울근교의 태광 골드 덕평 중부 이천 칼(제주칼포함) 동부골프장등 7개소는 수도권지역 골프인구 증대로 인한 수급불균형의 해소를 위해 내인가 되었음.태평프라자 골프장등 2개소는 낙후된 지역의 관광지 개발등을 이유로 내인가 되었음.

△금품수수여부 수사결과 87년 당시 교통부장관 車圭窓(59)이 평소 가까이 지내는 朴동일등으로부터 경남 榮山군 웅상면 매곡리에 있는 뉴부산 골프장을 내인가 하여 달라는 청탁을 받고 이를 승낙한다음 그 사례비 명목으로 3회에 걸쳐 5억8천만원을 수한 사실이 밝혀졌음.

다른 골프장들의 경우에도 관계장부등을 압수하여 내인가와 관련한 금품수수 여부를 수사했으나 그 같은 비리가 발견되지 않았음.

다만 내인가를 받은 골프장중 한성골프장이 全南도에 장학기금으로 5천만원을,통도 골프장이 새마을성금 10억원을,제일 골프장이 日海재단에 5억원을,골드 골프장이 京畿도에 방위성금으로 5천만원을,가야 골프장이 일해재단에 5억원을,팔공골프장이 大邱시에 문화예술관 건립기금으로 10억원을,울산골프장이 울산에 관광시설 자금30억원,중부골프장이 심장재단에 10억원,춘천골프장이 강원도에 도내 대학생 자학기금 30억원,선산골프장이 선산군에 군민회관 설립기금으로 10억원 이천KAL 골프장의 경우 한진그룹이 일해재단에 22억원 심장재단에 10억원,새세대 육영회에 7억원,태평프라자골프장의 한국화약그룹이 일해재단에 15억원 심장재단에 8억원 새세대육영회에 4억원을 기부한 사실이 밝혀졌다.

국제그룹 정리 및 연합철강 인수

△국제그룹 정리 및 인수자 결정경위=국제그룹 해체 배경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당시 국제그룹회장 양정모에 대한 개인감정이나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작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양정모의 주장이외에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발견치 못했다.인수업체의 선정과정에서 주인수력 기업은 당시 재무부장관 김만제가 인수업체를 내정,85년2월11일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보고하여 국제상사 건설부문은 극동건설이,신발 무역부문은 한일합섬이,연합철강 국제종합기계는 동국제강이 각각 인수키로 결정되었다.

△동국제강의 연합철강 인수=85년2월11일 당시 김만재 재무장관은 연합철강의 인수자로 권철현,부산파이프,동국제강의 3개 案 가운데 재무구조와 사세등을 고려,동국제강을 추천하여 권철현이 배제되고 동국제강이 인수하게 됐다. 동국제강 회장 장상태는 연합철강 인수전 새세대 심장재단에 22억원을 기부한 사실이 있으나 인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만한 자료를 발견치 못했다.

전 민정수석비서관 이학봉은 동국제강이 연합철강 인수자로 결정된 후 행사로 연합철강 주식의 50% 취득이 어려워져 경영권 확보 계획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고교동기 동창인 동국제강 전무이사 권병용의 협조요청을 받고 85년5월21일 당시 재무부 이재국장 임창열로 하여금 연합물산등 국제그룹 3계열사 소유의 연합철강주식 91만3천6백3주(평가액 약 26억원상당,총주식의 4.8%)를 동국제강에 양도하게 압력을 가하도록하는등 직권을 남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동국제강의 연철주식 인수대금 2백37억2천만원은 동국계열사의 기업어음(CP) 발행으로 자금을 차입하여 86년8월26일부터 8월28일까지 전액지급했으며 주식중 일부가 실제 동국제강의 소유가 아니라는 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드롭 戰鬪機 도입|

△1백50만달러 추가수령경위=86년초 노드롭社 관계자가 박종규 사망후 조문차 박의 처 이종원을 방문 6백25만달러의 반환을 요구하여 이 사실을 알게된 강세희가 노드롭사에 항의편지를 보내자 노드롭사측에서는 대외부정방지 접위반등의 문제발생을 두려워한 나머지 6백25만달러는 회사내 손비로 처리하고 1백50만달러를 해약금으로 이민하에게 지불했으며 이민하는 이중 강세희와 신광수에게 무마비조로 각50만달러씩을지급했음.

나머지50만달러는 홍콩소재 외국은행에 자기명의로 보관중임. △밝혀진 범죄사실=이민하가 84년9월 박종규로부터 한국외환은행 홍콩지점발행 액면2백만달러 외화수표 1장을 교부받아 홍콩소재 동경은행 구룡지점 자신의 구좌에 입금하고 86년6월11일 美노드롭사로부터 전투기 판매대리계약 해약금 명목으로 액면 1백50만달러 외화수표 1장을 교부받아 동양고속명의 미국은행 구좌에 입금함으로써 집중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음.

오대양사건

△현장상황 사체부검 결과 변사자들의 행적 현장에서 발견된 메모의 내용등을 종합하여 보면 변사자들은 4박5일동안 천장속에서 은신하면서 더위와 탁한 공기 배고픔으로 탈진상태에 빠져있던중 공장이 수색당하는등 상황이 더욱 긴박해지자 모두 함께 자살할 것을 결의하고 이경수 김길환등이 박순자등 나머지 30명을 목을 졸라 살해한 후 계속하여 이경수가 김길환을 목 졸라 살해한다음 자신도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판단된다.

△박순자는 전겨오한 전순환과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고 박순자의 남편 이기정과 전국방부장관 이기백은 14촌간이나 이기백은 오대양에 관여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2민항 면허취득

△아시아나항공의 발행주식100만주는 금호그룹회장 박성용등 7명이 각2주씩을,나머지는 모두㈜금호가 소유하고 있으며 이순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음.

大韓航州정리

△포기각서 강요여부=윤석민은 장세동 사공일 이원조등이 공모하여 주식 포기각서를 쓰도록 회유,협박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사공일은 안기부에 협조요청한 사실이 없고 장세동은 정인용으로부터 윤석민의 외화유출 혐의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안기부1차장에 게 그 내용을 알아보게 한후 대공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이원조는 87년5월께 윤석민이 대한선주를 포기하겠으니 금융기관의 관리업종 중 증궈노히사나 단자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하여 거절한 것 뿐이다.

△밝혀진범죄사실=대한선주 전 사주尹楊民(52)이 84년1월30일부터 85년11월29일 사이에 윤활유대금등 명목으로 허위지출결의서를 작성,회사 당좌구좌에서 53억8천여 만원을 인출 횡령하고 84년3월2일부터 86년9월5일 사이에 일본 니산회사로부터 환불받은 하역비를 서울산탁은행 홍콩지점 비밀구좌에 송금하는 방법으로 미화 1백17만달러(한화 10억원상당)를 국외에 은닉도피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하철 전동차 도입등

△영국 GEC회사의 전동차가 83년10월14일 일본에서 도입한 부산지하철 전동차 보다 량당 2억2천9백만원씩 비쌌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차량의 크기(서울 4백54명 부산3백27명) 하자보수기간(서울2년 부산1년) 차관조건(서울 영국 파은드화로 15년상환.부산 일본엔화로 12년상환)등 여러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부산전동차 구입당시는 일본회사가 한국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당시의 국제시세보다 싼값에 입찰하였기 때문이었다. △86년12월부터 88년4월 사이에 실시한 3회의 승진시험 및 1회의 공채시험에서 사장 김재명의 지시로 총무부장 김백환 인사과장 권영택 등이 답안지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합계 47명을 부적합격 시키고 해당 압안지를 소각하였으며 사원주택조합 업무추진과 관련하여 조합장 박상진 간사 윤원근이 운영회의록을 위조하고 서기 박영진이 6백74만원을 편취한 사실이 밝혀졌다.

외국산소 導入

△84년 소값파동의 원인=84년 국내소값이 도입소의 분양가 보다도 더 하락하여 도입소를 분양받은 농가들이 손해를 입게된데에는 새마을 관계로 소 2만마리가 추가도입된 것도 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나,더 큰 원인은 81년 이후 소값상승에 따라 농민들의 소사육 의욕이 높아지고 정부지원등으로 인한 소 사육두수가 81년의 1백51만두에서 84년에는 2백65만두로 급증한 반면 84년도에 일반 경기침체 및 돼지고기값 하락등으로 쇠고기 소비가 감소되었기 때문이었다. △도입 소 폐사의 진상=83년 소도입시 도입수량 증가로 혹서,혹한기에도 도입을 계속함에 따라 도입소들의 기후 적응이 어려웠고 미국중남부 내륙산 샤로레 품종을 희망하는 농가들이 많아 이를 도입함에 따른 장거리 수송과 과적협소환 국내검역 시설로 인한 무리한 관리,입식농가의 잘못된 사육방법등이 중첩되어 3천7백43마리의 소가 폐사했다.

[聯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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