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小史 5 5회 방콕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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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최초 2위 도약



정치적 문제로 얼룩졌던 자카르타대회가 끝난 지 4년 뒤인 1966년 12월 8일 자유중국과 이스라엘이 참가한 가운데 제5회 아시안게임이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개막됐다.

18개국에서 총 2천5백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 대회에 한국은 손기정씨를 단장으로 한 총 275명(선수 181명·임원 94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 사상 최초로 종합 2위를 노렸다.

「금메달 가뭄」에 시달리던 한국은 사격에서 3개의 금을 한꺼번에 수확하는 전과를 올렸다. 연습에 필요한 총기와 실탄조차 부족해 주한미군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당시의 처지를 고려해 본다면 이러한 결과는 예상을 뛰어 넘는 전적이 아닐 수 없었다.

강세종목 사이클에서 간신히 금메달 1개를 건진 한국은 11개의 금메달이 걸린 「효자종목」복싱에서 5개의 금과 3개의 은을 따내 종합 2위권 진입에 한발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금2 은3으로 당초 기대치를 밑돌았던 역도에서는 대표선수들이 부상과 엔트리 규정 문제 등으로 참가조차 못하는 사태가 발생, 선수관리와 스포츠 정보의 허술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회폐막 전날 밤 마지막 경기로 펼쳐진 남자탁구 단식 한국 대 일본 전. 이때까지 주최국 태국에 금메달 1개를 뒤져 있던 한국으로서는 종합2위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었던 만큼 벤치의 긴장은 더 했었다. 그러나 무명의 김충용 선수가 세계최강 하세카와에게 3-2 역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따내자 선수단은 서로 부둥켜 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종합2위의 일등공신이 된 김은이 공으로 귀국 뒤 제5회 대한민국 체육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또한 이 대회서는 부산출신인 복싱의 손영찬(현 동아대교수)과 장대높이뛰기의 홍상표(현 시 체육대회 사무처장)등이 금과 동을 획득해 「체육 부산」의 성가를 드높이기도 했다.

한편 일본은 금78 은53 동33개로 우승했고 한국이 금12 은18 동21개로 종합 2위를 차지했으나 텃세의 만용을 부렸던 홈팀 태국은 금 12 은14 동11개로 3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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