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을 만든 책과 세종이 만든 책
세종의 서재/박현모 외
책은 세종을 성군으로 키웠고, 성군 세종은 그 깨달음으로 다양한 책을 발간했다. 사진은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의 '지혜의 숲'. 부산일보 DB'혁명은 안단테로.' 한 일간지의 칼럼 타이틀. 곱씹어 보니 마음에 꽂히는 네이밍이다. 혁명이야말로 '라르고'(지나치게 여유 부리다 뭘 하려는지 잊을 수도 있으니)도 아니고 '모데라토'(왠지 범생이 같아 보이니)도 아닌 '안단테'(걸음걸이 빠르기로)여야 할 듯하다.
'안단테로 세상 바꾸기'엔 독서가 분명 큰 몫을 한다.
독서로 세상 바꾼 성군 
그가 읽고 남긴 책 이야기
읽고 또 읽은 '구소수간'
훈민정음 창제의 원동력
'대학연의' 바른 정치 일깨워
의사이자 뛰어난 작가였고 시인이기도 했던 체 게바라는 전투 중에도 책을 가지고 다닐 만큼 독서광이었다. 청년 시절 우루과이를 독재 정권에서 구해내기 위해 도시 게릴라로 무장투쟁을 벌였던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을 체 게바라 이후 가장 훌륭한 남미의 지도자로 만든 힘도 방대한 독서였다. 29년 올곧은 판사로 살아온 우리나라 최초 여성 대법관 김영란은 책 <책 읽기의 쓸모>에서 자신을 키운 힘은 바로 '쓸모없는'(전공과 관계없는) 책 읽기였다고 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독서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 조선의 임금 세종이 있다. 숨 막히는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린 세종의 숨통을 틔운 건 책이었다. 그를 버티게 한 책은 세종을 성군으로 키웠다. 세종은 '정신을 고양시키는 길'을 책에서 발견했고, '하늘의 원리를 궁리해 거기에 맞춰가는 삶'을 살았다. '책을 보는 중에 그로 말미암아 생각이 떠올라 나랏일에 시행한 것이 많았다'(<세종실록> 중)고도 했다.
<세종의 서재>는 '세종을 만든 책'과 '세종이 만든 책' 이야기다. 공부를 좋아했던 세종은 병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아 태종이 서책을 모두 감추도록 했는데, 이때 병풍 뒤에 남아 있던 유일한 책이 <구소수간>이었다. 이 책을 '백 번, 천 번' 읽은 세종(책은 '구소수간을 천백 번 읽었다'는 수없이 많이 읽었다는 의미로 백 번, 천 번이라 했던 게 잘못 전해진 것이라 바로잡기도 한다). <구소수간>은 구양수와 소동파(소식)가 주고받은 편지를 담은 책이다. 세종은 구양수의 힘차면서도 감동적인 문장과 소동파의 '베를 짜내듯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빼어난 문예미에 푹 빠졌다. '본마음을 말하고, 면목을 대신한 점'도 모범으로 삼았다. 구어와 맞지 않는 한자를 쓰던 시절, 세종은 이 책의 아름다움과 표현력, 문체미학에 절실히 공감했고 이는 훈민정음 창제의 동력이 됐다. 구소수간을 읽고, 또 읽은 세종은 수많은 오류를 발견했기 때문에 당대 간행 서적의 교정을 특히 강조하기도 했다.
남송의 학자 진덕수가 편찬한 <대학연의>는 경천(敬天)에서 애민(愛民)으로 이어지는 인정의 덕치 이념과 정치에서 중요한 건 '인재를 알아보는 것'이란 걸 일깨워 세종을 성군의 길로 이끈다. 법전 <당률소의> <지정조격>은 조선을 법치국가로 자리 잡게 했다. 세종은 정신병력이 있는 광인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도 <대명률>과 <지정조격>을 바탕으로 신하들과 토론해 합당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세종의 '독한 공부'는 평생 공부로 구현됐고 정치 문화 경제 군사 과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세종시대가 만든 책'은 농업 지식의 표준화를 위한 <농사직설>, 언어의 표준화를 위한 <훈민정음해례본>을 비롯해 <삼강행실도> <향약집성방> <역대병요> <칠정산내편> 등 다양하다. '세종에게 책은 존재 그 자체'였음을 촘촘한 사례들로 일깨우는 책. 박현모 외 지음/서해문집/344쪽/1만 7000원. 강승아 기자 se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