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끊자] 7. 서로 향한 총구, 어떻게 내릴까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 정하고 ‘갈등 조절 공론화 기구’ 필요
일러스트=류지혜 기자 birdy@
서로를 겨눈 총구가 불을 뿜는다. ‘혐오’라는 총알이 상대의 가슴에 박힌다. 성별, 세대, 지역, 이념 등으로 찢긴 사회. 쪼개진 집단 간의 전쟁은 멈출 기미가 없다. 일방적으로 비수를 꽂는 경우도 있다. 피부색, 성 정체성 등이 다른 소수자는 때로 멸시의 대상이 된다.
혐오의 확산을 멈춰야 한다. 온라인에서 들불처럼 번진 혐오는 화면 밖에서도 당당히 활개 친다. 심지어 정치권까지 혐오를 활용해 갈등을 조장한다. 고의든 아니든 혐오는 씻지 못할 상처를 안긴다. 혐오가 줄어들 미래,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법적 규제’ 여론 거세지만
현실적으로 ‘차별금지법’ 난망
타인에 대한 포용성 강화 ‘대안’
“혐오는 사회적으로 학습”
미래세대는 물론 성인 대상
전방위적인 예방 교육 필요
■법과 자율로 혐오 줄어야
혐오를 줄이는 방향은 크게 두 갈래로 제시된다. 우선 법적 규제로 맞서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는 중이다. 사회 자정 기능에 맡기기에는 혐오가 깊게 뿌리 내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해소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규제가 근본적인 혐오를 줄일 수 없다는 시각에서다.
법적 제한을 주장하는 쪽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별·세대·인종 등에 따른 차별을 막고, 규제나 처벌을 통해 혐오 표현을 억제하려는 목적이다.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각종 혐오가 확산됐다”며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혐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정립하는 효과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권명아 교수는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에는 처벌까지 이어지는 조항은 없다”며 “실질적 규제 효과를 떠나 혐오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와 규칙을 만들기 위해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적 제한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의 강요나 제한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데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김희재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성별, 인종 혐오 등은 다른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문제”라며 “법적 제한보다는 타인에 대한 수용성을 높일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타인에 대한 표용력을 높이고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는 데 힘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희재 교수는 “사회 각층에 퍼진 혐오를 한 순간에 뿌리 뽑을 묘안은 없다”며 “타인을 받아들이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들 장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혐오 정립 선행시급
이처럼 법과 자율이 대안으로 떠오르지만, 현실적으로 법적 규제는 여의치 않다. 차별금지법만 해도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과 기독교계 등의 반발로 오랜 시간 통과가 쉽지 않았다. 당장 법적 제한이 어렵다면 우선은 자율적으로 혐오를 줄일 방안부터 찾는 게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가 나서 혐오의 개념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혐오 표현에 대한 명확한 틀을 만든 뒤, 그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정학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기획대응단 팀장은 “여론 조사 결과 주변 인물에게 혐오 표현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며 “혐오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는 이들을 위한 매뉴얼의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안에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배포할 예정이다. 김정학 팀장은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시민 사회까지 가이드라인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이드라인과 함께 혐오로 인한 갈등을 조절할 상시 공론화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올해 국회에서 ‘혐오와 차별 문제 해소’를 위한 토론회가 이어지는 만큼 공론화 기구 또한 검토해보겠다”며 “우선 혐오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갖춰지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방위적 교육도 필요
혐오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관련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혐오는 선천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혐오의 씨앗을 뿌리뽑고, 누군가에게 내재된 혐오를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래 세대를 위한 혐오 예방 교육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영근 부산시교육청 교육국장은 “혐오를 줄이려면 인간의 존엄성, 인권의 천부적 성격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교과 수업이나 학교 생활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존중하게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율적인 토론과 실천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전 국장은 “자율적인 의견 교환으로 생각의 속살을 드러내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가능하다”며 “혐오를 학교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 김정학 국가인권위원회 팀장은 “대학생은 국가인권위가 학내 인권센터와 협력해 혐오 표현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다”며 “기업들도 갑질, 미투 등과 함께 혐오와 관련한 교육을 추가하고 경영자가 나서서 직원 인권이나 감수성 교육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희재 부산대 교수도 “교육은 타인에 대한 포용력을 키우고 사회적 관계를 넓히는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우영·박혜랑 기자 verdad@busan.com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