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88서울올림픽의 추억과 기적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강희경 경제부장

서울, 88올림픽 이후 글로벌도시로
부산 등 지방은 쇠락의 길 가속화

간절함으로 도전 2030월드엑스포
정·재계 막판 힘 모아야 역전극 가능

40년이 더 지났지만, “쎄울(서울) 코리아”라고 88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당시 서독의 어딘가에 있는 발표지 ‘바덴바덴’과 발표자 ‘사마란치’ IOC 위원장 이름은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었다. 발표 당시 가족들이 얼싸안고 기뻐했는지는 가물가물한데,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다. 이듬해였던가, 올림픽 관련 만화책 ‘팔팔이만세’를 학교에서 강매하고 독후감도 쓰라고 해 열심히 읽기도 했다. 외국인 맞이를 위해 청소도, 인사도 잘하고 등등 도덕책에 나올 만한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시골구석에 사는 국민학교 1학년생에게 올림픽에 어떤 역할이 주어줬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온 나라가 단군 이래 제일 큰 행사 준비로 열을 올렸다.

정부와 서울시는 올림픽을 위해 한강 종합개발사업이란 거대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릴 서울올림픽에서 새롭게 정비된 한강과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올림픽대로 등 주요 간선도로와 교량 신설, 확장은 물론 지하철 공사도 서둘러 진행됐다. 한강도 친수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울은 올림픽 이후 글로벌 도시로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올림픽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대한민국이 곧 서울이고, 한국이 바로 서울이었다.

반면 부산 등 지방은 88올림픽 이후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부산은 신발 등 전통산업의 몰락 이후 대체 산업 육성에 실패하며 경제적 위상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부산의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은 전국에서 1990년 7.0%였으나 이젠 5%도 채 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경제규모는 물론 인구로도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내놓을 날이 머지않았다.

다행히 부산에도 기회가 왔다. 세계 3대 메가 이벤트인 월드엑스포 개최다. 5년마다 열리는 등록엑스포는 행사 기간이 길어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경제 효과가 높다. 엑스포가 열리면 6개월 동안 우리나라 인구와 맞먹는 5000만 명이 부산을 찾는 등 60조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부산시는 엑스포 개최를 통해, 부산을 수도권에 대응하는 한국 경제의 제2 성장축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엑스포를 통해 부산을 중심으로 울산과 창원 경주 등을 아우르는 새로운 경제 축이 만들어지면, 동남권의 발전을 수십 년 앞당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부산일보>가 진행한 30명의 릴레이 인터뷰 ‘부산엑스포 지지합니다’에 나선 주요 인사들도 이러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언론 노출을 꺼리던 지역의 원로 기업 대표들까지 선뜻 인터뷰에 나선 것은 ‘부산을 바꿀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로 더 열심히 뛰어달라는 호소였다. 한 대표는 생애 마지막 인터뷰라고도 했다.

“부산이 목숨 걸고 달려들어야 할 마지막 기회다”(세운철강 신정택 회장), “부산 시민의 열망으로 7년 뒤 부산항 북항에서 화끈한 카운트다운을 목 터지게 외칠 수 있길 바란다”(골든블루 박용수 회장), “부산만의 간절함으로 엑스포를 유치한다면 부산은 물론 대한민국의 대변혁을 이끌 수 있다”(강의구 부산영사단장), “다음 세대를 위해 월드엑스포 유치에 더욱더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삼정기업 박정오 회장), “후세들이 기댈 언덕 될 엑스포, 임전무퇴의 각오로 반드시 유치해야”(동일 김종각 회장) 등 수십 년간 부산의 산업현장을 누빈 백전노장의 인터뷰엔 간절함과 절실함이 담겼다.

이미 부산은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든 것만으로도 글로벌 인지도 상승 등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정부가 힘을 쏟으면서 기후산업국제박람회 등 다양한 국제행사가 잇따라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데다, 정부와 정치권, 재계, 부산시 등의 세계 전역을 상대로 한 홍보 활동으로 부산의 인지도는 최근 부쩍 올랐다. 여기에 유치전에 나서며 부산이 충분히 글로벌 행사를 치를 만한 역량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점도 큰 수확이자, 시민들에겐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시민들의 간절함을 보여 준 국제박람회기구(BIE) 현지 실사와 준비된 엑스포 도시의 면모를 보여 준 최근 열린 4차 프레젠테이션(PT)에서 부산은 경쟁 도시들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실사와 PT가 득표로 곧바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부산은 세계를 상대로 아쉬움 없이 모든 걸 보여줬다.

2030월드엑스포 유치전은 88올림픽 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당시 서울도 추격자였다. 경제 규모가 비교할 처지도 아니었던 일본이 내세웠던 나고야에 절대적으로 밀린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IOC 위원 개개인을 상대로 한 막판 치밀한 외교전으로 52 대 27, 완승을 거뒀다. 40여 년 전의 기적을 다시 만들지 못할 법은 없다. 정·재계 등 유치위 모두가 마지막까지 절실하게 나서 역전극을 이뤄보자. 부산과 지방이 부활해야 대한민국도 산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