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선에서는 어떻게 밥을 해 먹었을까?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 박정훈 부산닷컴 기자 pjh045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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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부산 조선통신사선 이틀째 항해
대마도 행사 참석 위해 목포항 출발 조선통신사선
외나로도 묘박지에서 늦은 저녁 먹으며 화기애애

북한 조선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윤겸의 조선통신사선 그림 '신행도해선(信行渡海船·사신바다를건느다)'. 북한 조선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윤겸의 조선통신사선 그림 '신행도해선(信行渡海船·사신바다를건느다)'.

목포 남항을 출발한 조선통신사선은 외나로도 우주항공기지가 있는 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예당항 방파제가 훤히 보이는 앞바다에 묘박지를 정했다. 26일 오전 6시 14분에 출발해 투묘를 마친 시간이 오후 9시 7분이었다. 거의 15시간에 걸친 긴 항해였다.

조선통신사선의 선원들이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저녁 식사다. 늦은 저녁이었다. 참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이날은 반찬이 시장기를 압도했다. 고급 한우구이가 만찬 메인 메뉴로 나온 것이다. 사실상 항해 팀장을 맡은 홍순재 학예사의 배려였다.


일본 나고야성 박물관에 있는 일본인이 그린 조선통신사선 '조선통신사관선도'. 일본 나고야성 박물관에 있는 일본인이 그린 조선통신사선 '조선통신사관선도'.

조선통신사선은 서경호 선장과 김성원 항해사, 박철희 기관사와 함께 홍순재, 강원춘, 정홍일 학예사가 승선했다. 다들 하는 일이 다르지만, 배에서는 모두가 선원으로 각자 자기 역할을 했다. 무게가 50kg 훌쩍 넘는 대형 펜더(배 측면 완충장치)를 올리고 내리는 일은 합심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기본적인 뱃일 이외에 이틀 동안 하선하지 않으니 숙식을 모두 배 안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 때도 어느 시기에 이순신 장군이 군졸들의 하선을 허락해 섬에서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부분 배 안에서 숙식을 해결해 왔던 것.


조선통신사선의 가장 높은 위치이자 상석인 정사석. 정사석에 서 있으면 장수나 정사가 된 기분이다. 조선통신사선의 가장 높은 위치이자 상석인 정사석. 정사석에 서 있으면 장수나 정사가 된 기분이다.

고증을 통해 복원한 조선통신사선은 조선시대 판옥선과 거의 유사하다고 홍 학예사가 말했다. "판옥선과 길이가 일치합니다. 다만 조선통신사선은 횡으로 석 자(90cm) 정도의 물막이용 난간이 더 있습니다. 항해 중심의 배니까 그렇게 제작한 것입니다."

조선통신사선의 정원은 69명. 같은 크기의 판옥선은 100명 정도의 장수와 군사가 승선했다. 식사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조선통신사선에는 모두 5개의 솥이 걸리는 별도의 부엌 공간이 있었습니다. 여기사 정사를 비롯한 사신들의 밥을 짓고 국을 끓였습니다. 일본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에는 우리 조선통신사선을 그린 그림이 전시돼 있습니다. 일본 화공이 그린 그 그림에 솥이 뚜렷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홍 학예사는 조선통신사선은 하나의 한옥이라고 말했다. 살림집과 같은 구조이기에 부엌이 가능한 것이다.

조선통신사선 그림에 다리가 달린 솥이 여러 개 보인다. 조선통신사선 그림에 다리가 달린 솥이 여러 개 보인다.

나고야성박물관이 소장한 '조선통신사 정사관선도'는 조선통신사선 내부 선상박물관에 소개돼 있는데 정말 발이 달린 무쇠솥이 뚜렷하게 묘사돼 있었다. 홍 학예사는 "한때 바다의 습기가 감당이 안 돼 내부에 온돌을 설치하자는 건의도 있었을 정도로 한옥과 유사한 구조였다"고 말했다.

우주센터의 조명이 색색으로 빛나며 지켜주는 밤이었다. 다음 날 선상에서 먹은 '아점' 또한 진수성찬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모든 반찬이 올라간 별도의 상이 따로 차려져 있었다. 물었더니 고수레 상이라고 했다. 바다신에게 먼저 드리는 음식이란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매번 식사 때 가장 먼저 밥을 바치는 곳이 바다였다. 안전을 기원한다고 했다.

가장 먼저 뜬 밥은 해신에게 바친다. 고수레다. 가장 먼저 뜬 밥은 해신에게 바친다. 고수레다.

둘째 날 아점은 홍 학예사가 준비했다. 배의 '팀장'이라는 높은 지위라 사실상 이번 항해에서는 '정사 급' 아니던가. 옛날 조선통신사선의 양반들은 배 맨 높은 자리에 있는 정사 석에 앉아 밥상을 받고 물리기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직접 쌀을 씻는 모습을 보고 살짝 놀랐다. 밥도 잘 지었다. 알고 보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사실 홍 학예사의 장기는 '냄비 밥'이란다. 조선통신사선이 생기고 나서 처음엔 즉석 밥을 주로 먹었는데 선원들의 불만에 밥을 지어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냄비에 밥을 했는데 밥물을 잘 맞추고 불 조절을 잘 하기는 홍 학예사만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


함께 모여 거나한 '아점'을 먹는다. 함께 모여 거나한 '아점'을 먹는다.

냄비 밥 잘하는 그도 이번에는 힘겨웠던지 큼지막한 전기밥솥 하나를 장만했다. 사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전기밥솥 밥보다는 냄비 밥이 살짝 궁금하긴 했다.

밥을 물리면 냉커피를 준비하는 사람이 또 있다. 기관사 철희 씨와 정홍일 학예사다. 철희 씨는 나이로는 막내 같아 보이는데 반찬 솜씨가 어지간한 식당 주인 저리 가라는 수준이었다. 정 학예사는 얼린 생수에 커피 원액을 넣고, 얼음까지 준비해 아이스커피를 제공했다.

30도가 넘는 폭염 속의 항해에서 지치지 않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이분들의 배려다. 고작 밥 먹은 상 뒷정리밖에 못 해 죄송스럽다.


마린시티와 해운대 일대가 보인다. 27일 하루만 12시간의 항해 만에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마린시티와 해운대 일대가 보인다. 27일 하루만 12시간의 항해 만에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외나로도에서 27일 새벽 5시 40분에 출발해 이날 오후 5시가 가까운 시간에 태종대 앞바다를 지났다. 오륙도와 해운대 고층 빌딩이 차례로 보인다. 12시간 가까운 항해 끝에 오후 5시 14분 용호항 별빛부두에 무사히 도착했다. 부산문화재단 관계자들이 마중을 나와 반긴다.

긴 항해의 끝은 또 시작이다. 조선통신사선 선원들은 28일 오후 7시 부산 영가대에서 열리는 해신제에 참석한다. 이어 29일에는 배가 정박하고 있는 용호동 별빛부두에서 별도의 출항제도 지낸다. 그리고 8월초 대마도를 향해 출발할 예정이다.

부산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에도 조선통신사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여러 형태의 배들이 우리 바다를 누빈다면 그것도 즐거운 상상이다. 바다와 역사, 그리고 조선통신사선의 거룩한 사명은 여전히 오늘을 거쳐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


용호항 별빛부두에 도착한 조선통신사선. 용호항 별빛부두에 도착한 조선통신사선.

글=이재희 기자 사진=박정훈 PD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 박정훈 부산닷컴 기자 pjh045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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