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피크 차이나’,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 경제 수출·내수 부진에 부동산 시장 침체 겹쳐
저성장 기조 고착화는 한국 경제에 타격 주는 악재
중국 의존도 줄이면서 경기 반등 가능성 잘 살펴야
위기 막고 기회 만들기 위한 객관·이성적 접근 필요
예부터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발전을 거듭해 번성하고, 그 정점에 오르면 반드시 쇠락한다는 뜻을 가진 속담이다. 이 말은 고대 로마와 대영제국 그리고 당·송·원·명·청나라에 걸친 중국 5대 제국의 흥망성쇠가 보여 주듯이 동서고금 만고불변의 진리에 가깝다. 이웃나라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시행 이후 40여 년 동안 가파른 경제 성장을 통해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는 양대 강국(G2)으로 올라섰다. 비약적인 발전 과정에서 중국은 세계의 제조공장이자 최대 소비시장 역할을 하면서 글로벌 경제의 엔진이 돼 왔다.
그랬던 중국 경제가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이 휩쓸고 간 이후부터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는 등 경기 사정이 심상치 않다. 근래 “40년의 고도성장 시대가 저물었다”는 진단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이른바 ‘피크 차이나’(Peak China·성장의 정점에 도달한 중국)다. 중국 경제에 저성장이라는 빨간불이 켜진 건 무역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도 좋지 않다. 중국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신속·정확하게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적절히 대처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최근 중국의 수출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산둥성 칭다오항 부두에 컨테이너 화물이 잔뜩 쌓여 있다. 연합뉴스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진 중국
중국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과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각각 2.2%, 3.0%에 그쳤다. 이는 2007년 무려 14.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2019년까지 매년 10% 안팎의 높은 성장률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 40년간 중국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9.4%나 된다. 이와 다르게 팬데믹 기간에 성장 둔화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중국 정부가 코로나 방역을 위해 3년간 국내외적으로 봉쇄정책을 펼치면서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진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팬데믹 영향으로 글로벌 경제 수요가 감소하는 바람에 중국 기업들의 수출 부진이 지속된 탓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올 초 코로나 봉쇄 조치를 풀고 리오프닝(Re-Opening·경제활동 재개)에 나섰지만, 아직까지는 경제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경제 회복의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삼으려고 한 까닭에 리오프닝 초기 잠깐 회복세를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각종 경기 부양책에도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침체 상황이 이어져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공산당의 강력한 코로나 봉쇄와 이동 제한 때문에 불안감과 고립감을 경험한 중국인들 사이에 현금만이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극심한 소비지출 둔화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 민간 저축률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소비 하락은 제조업체 등 기업에 악영향을 미쳐 실업률을 끌어올리며 불황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청년실업률이 지난 6월 역대 최고치인 21.3%를 기록하자 7월부터 아예 실업률 발표를 중단했다. 아마도 실질 실업률이나 체감 실업률은 통계치보다 배 이상 높을 만큼 실업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일 테다.
8월 17일 중국 1위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의 베이징 공사장에서 주택 구매자가 권리 보호를 요구하며 차량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성장 둔화로 경제 붕괴론 대두
중국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보다 훨씬 오래전에 이미 고도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이 2007년 14.2%를 정점으로 매년 조금씩 떨어지면서 하락 행진을 이어 온 것이다. 2010년 10.6%, 2012년 7.9%, 2014년 7.4%, 2016년 6.8%, 2019년 6.0% 등이다. “중국의 고도성장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가 간간이 제기돼 찬반 논란을 빚었던 이유다. 더욱이 지난해 8월 미국 정치학자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교수 등은 저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서 ‘피크 차이나’론을 제시하며 중국의 성장이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 중국은 지난해 46년 만에 두 번째로 낮은 3%의 경제 성장에 머물러 ‘피크 차이나’론에 힘을 보탰다. 올 3월 5일 리커창 중국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회의에서 올 성장률 목표치로 시장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데다 보수적으로 평가되는 5% 안팎을 제시한 것도 ‘피크 차이나’를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이 같은 저성장 쇼크에 부동산발 경제 위기 가능성이 겹쳐 중국 경제의 붕괴론마저 거론되고 있다. 부동산은 중국 GDP(국내총생산)의 약 25%인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인데, 최근 경기 침체 심화로 부동산 거래량과 주택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요즘 중국에는 분양되지 않거나 짓다가 말아 방치된 아파트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소식이다. 급기야 매출 1위 대형 부동산 개발기업인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이 지난 8월 부동산 시장의 하락세로 자금난에 빠져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에 처한 게 중국 붕괴론의 촉매제가 됐다. 중국 가구 자산의 70%가 부동산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부동산 시장 침체는 다른 산업 분야에 나쁜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이처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휘청이는 가운데 중국 내외부 곳곳에서 연쇄적인 경제 위기의 도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이 1990년 이후 겪은 장기 불황의 길을 중국이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수출국별 점유율. 자료: 코트라·관세청
■엇갈리는 중국 경제 향후 전망
중국 경제를 옥죄며 저성장 기조로 내몰고 있는 악재는 수출 및 내수 부진, 역대 최고인 청년실업률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부동산 시장 침체는 그간의 개발 주도 성장을 멈추게 하고, 잇단 기업 도산과 지방정부 부실로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생산, 투자, 소비가 모두 꺾이는 트리플 둔화 조짐이 뚜렷해져 디플레이션과 청년 실업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전망이 잇따른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지난달 19일 올 중국 경제 성장 전망치를 기존 5.4%에서 5.1%로, 내년은 5.1%에서 4.6%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어려움을 겪는 중국 경제를 ‘시한폭탄’으로 표현하며 깊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중국 내부에선 이런 비관적인 예측에 대해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과 서방 세력이 중국을 압박하고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우 “중국 경제라는 거대한 배는 계속해서 바람을 타고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낙관적 미래상을 제시했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선진국보다 더 높은 세계 평균(약 3%)에 비해서도 여전히 배가량 높다는 이유에서다.
전망이 크게 엇갈리긴 하지만, 코로나 봉쇄가 끝나고 리오프닝이 이뤄지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중국의 당초 기대가 깨진 건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가 올 한국 경제를 ‘상저하고’로 전망한 근거로 제시됐던 중국 경제의 반등을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중국의 저성장은 한국 경제에 초대형 악재여서 우리 정부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국 경제의 오랜 활황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경제를 살찌운 측면이 강하다. 이에 따라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할 경우 우리 성장률은 0.15%포인트 떨어진다는 것이 통설이다. 2021년 기준 우리 수출의 25.3%가 중국에 의존해 2위 수출 대상국 미국(14.9%)과도 격차가 크고, 대중 수입 의존도가 80% 이상인 품목만 2000여 개에 이르는 까닭이다.
지난달 23일 한덕수 총리가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의 효과적인 대응책은?
시 주석의 장담과 달리 중국 저성장이 장기화해 ‘피크 차이나’가 고착되면 우리 입장에서는 발등의 불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년간 중국의 고도성장과 경제 특수에 기댔던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수출입 다변화 전략으로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낮출 필요성이 절실하다. 예상보다 악화한 중국 경제에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거나 휘둘리는 상황을 대비하고, 피해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다. 올 1~8월 한국 전체 수출의 중국 비중이 19.7%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는 중국의 경기 부진에 따른 수입 감소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결과일 뿐이어서 중국 의존도를 서서히 줄이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숙제거리다.
한편으로는 중국 경제가 미국의 반도체 제재 등 악재 속에서도 세계 평균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등 성장 잠재력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무조건적인 중국 시장 포기가 능사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전략적인 치밀한 접근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중국 경제에 대해 깊은 이해와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으로 가능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대비하며 우리 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향상시켜야 할 시점이다. 중국의 한계와 실력을 꿰뚫어 보는 안목으로 위기든 기회든 다양한 상황에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대처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그래서 한중일·북중러가 정치적으로 대치하는 신냉전 국면에서도 한중 간에 정상회담 추진이 논의되고 있는 움직임은 고무적이다. 명분과 실리를 다 취하는 국익 최우선의 유연한 실용 외교를 병행하는 대외 경제전략이 우리의 살길인 것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