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23] ‘총을 든 스님’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 “늦깎이 민주주의 부탄, 대립 대신 평화 택했죠”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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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분장실에서 만난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이 신작 '총을 든 스님'을 소개했다. 황예찬 인턴기자 6일 오후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분장실에서 만난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이 신작 '총을 든 스님'을 소개했다. 황예찬 인턴기자

행복지수 1위 국가로 알려진 부탄의 영화가 부산에 공개됐다.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은 2019년 영화 ‘교실 안의 야크’에 이어 올해 ‘총을 든 스님’으로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총을 든 스님’은 BIFF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됐다.

10일 오후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분장실에서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을 만났다. 파오 감독의 신작 ‘총을 든 스님’은 2006년 부탄의 첫 번째 선거 과정을 다뤘다. 세계에서 가장 늦게 민주화된 부탄에서는 국왕이 선거권을 쥐어 줬지만 국민들이 오히려 이를 거부하는 흔치 않은 상황에 놓였다. 영화는 ‘초보’ 민주주의 국가 부탄에서 대립 대신 화합해 나가는 ‘부탄식 해법’을 말한다.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은 현대화된 세계에서 부탄이 지키고 있는 순수함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부탄의 순수함은 정말 아름답다. 부탄에서 어떤 모르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는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부탄도 현대화되고 외부세계와 접촉이 늘어나면서 그런 순수함이 평가 절하되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위대함을 짚고 싶었다.”

파오 감독이 말하는 부탄의 순수함을 이해하려면 국민총생산(GDP)가 아닌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중요시하는 나라 부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부탄은 정치와 물질보다 종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나라다. 그는 “불교국가로서 부탄의 핵심에 불교 관련 교리가 놓여있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는 생각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공존, 상생을 중요시한다. 행복해지려면 주변 환경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유함보다 주변 환경의 안정이 행복을 불러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탄의 뒤늦은 외부 세계로의 개방은 이런 행복에 대한 합의된 개념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는 “외부의 관념이 들어오는 순간 우리가 지켜온 가치들이 비교된다”며 “부탄이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지금의 환경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6일 오후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분장실에서 만난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이 신작 '총을 든 스님'을 소개했다. 황예찬 인턴기자 6일 오후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분장실에서 만난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이 신작 '총을 든 스님'을 소개했다. 황예찬 인턴기자

행복을 위해 은둔을 택한 부탄의 숨은 얼굴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것은 그였다. 데뷔작 ‘교실 안의 야크’는 그의 첫 작품이자 해외 영화제에 진출한 최초의 부탄 영화다. 부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순수한 아이들의 이야기로 그는 첫 작품부터 해외 영화계의 눈길을 끌었다. ‘교실 안의 야크’는 지난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부탄에서 파오 감독은 이미 젊은 거장이다.

그는 “부탄은 올림픽도 월드컵도 출전하지 않는, 기대할 국민 행사가 많지 않은 나라다. 조용한 나라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 소식은 무척 큰 행사라 온 국민의 응원과 축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받았던 따뜻한 응원 이야기도 전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가 되었을 때 이탈리아, 일본 등 다른 나라 후보에게는 수백만 달러 지원이 거론됐지만, 내게는 한 스님이 연락이 왔다. 스님은 ‘5대 시상식 영화제에 초청됐다고 들었다’며 가진 것은 없지만 나를 위해 그가 가진 가장 좋은 소가 만든 싱싱한 버터로 램프에 불을 밝혀 부처님께 바쳤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가난하지만 나는 강력한 응원을 받고 있다.”

갓 인터넷과 민주주의가 도착한 2006년 영화 속 부탄은 평화롭지만 파오 감독은 ‘지금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한다. 파오 감독은 “외부사회와 접촉하면서 부탄도 순수를 잃고 실업, 자살, 우울증 등 사회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어떤 곳에서 왔고 예전에는 어땠는지 상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 두 번째 작품을 내놓은 파오 감독의 이야기 보따리는 아직 무궁무진하다. 그는 “저는 영화 학교에서 영화를 배운 것이 아니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만들게 된 사람이다”라며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그의 끝없는 이야기의 원천은 이야기가 일상인 부탄 문화에 있다. “부탄에서는 이야기가 생활에서 너무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야기 좀 해줘’라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고 대신 ‘매듭을 푼다’고 말한다. 어휘가 부족하거나 원시적이라서가 아니다. 마음에 묶인 감정과 말을 풀어 해방시키는 것이 이야기하는 목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영화는 가장 큰 이야기 묶음을 풀어내는 정석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일단 부탄에 대해 더 많이 보여주고 싶고 또 지금의 부탄을 기록하고 싶다”면서도 “부탄을 넘어선 영화들도 도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영화 인생에 BIFF는 중요한 이정표다. 그는 “2016년 PD로 BIFF를 찾았고 2019년에는 감독으로 오게 됐다”며 “올 때마다 관객 뿐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아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게 한다.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이 자리를 빌려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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