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보호자 “의대 증원과 진료가 무슨 상관” 아우성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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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분위기

부산 주요 병원 진료 차질 북새통
수술 연기·조기 퇴원 내몰려 울상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 도미노
일각에선 출근만 하고 진료 거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집단 행동을 시작한 20일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에 환자와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집단 행동을 시작한 20일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에 환자와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도대체 의대 증원과 환자가 무슨 상관인가요. 아픈 환자에게 당일 퇴원하라니요.”

20일 오전 10시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본관 1층 로비에서 만난 김봉수(79) 씨는 “같은 병동 중증 환자 2명이 어제 억지로 퇴원 조치 당했다”며 입을 뗐다. 그는 “설마했지만, 오늘 오전에 의료진이 느닷없이 병실을 방문하더니 내게도 퇴원 하라고 했다”며 “애꿎은 환자들만 피가 말라가고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김씨는 폐렴으로 호흡기내과에 10일째 입원 중이었다. 이번 주까지 입원 예정이었지만 병원에서 당일 퇴원을 통보 받았다.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 등으로 의료 파업이 현실화하자 부산 대학병원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파업으로 사실상 강제 퇴원 조치를 받고 있다고 호소하고, 진료와 입원 대기가 길어지면서 혹시 모를 피해를 입을까 불안감이 커진다.

실제 부산대병원에는 이날 낮 12시를 전후해 짐을 실은 캐리어를 끌거나 양손에 짐가방을 든 채 병원을 나서는 환자들이 이어졌다. 이날 배우자 퇴원 수속을 위해 병원을 찾은 박제선(76) 씨는 “남편이 위대장내시경을 했고 종양이 나와서 꼬박 일주일을 입원했다. 이번 주 검사 결과를 듣기로 했는데 파업이 겹치면서 결과를 못 듣고 퇴원하는 길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입원 환자도 난색을 표하고있다. 부산대병원에서 장기 치료를 받고 있는 한 환자의 배우자는 “아내가 십이지장 선종 제거와 대장 검사를 받기 위해 19일 입원할 예정이었는데 3월 말로 입원 일자가 변경됐다고 통보받았다”며 “당황스럽고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병원들도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대병원의 한 교수는 “전공의들이 다 빠져 인력에 구멍이 났는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환자를 받는 것은 환자에게도 못할 짓”이라며 “각 과 판단 하에 교수들은 조기 퇴원을 시키거나 수술과 입원을 줄이는 절차를 어쩔 수 없이 진행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대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병원 곳곳에는 아직 전공의들이 남아있었다. 취재진이 이들에게 입장을 물어보려 했으나 손사래를 치고 서둘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아청소년과에서는 통영에서 온 이민지(36) 씨가 두 딸과 함께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씨는 소아내분비과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고의적으로 진료 기록을 삭제한다는 뉴스를 접해서 공포스러웠다”며 “가뜩이나 소아과 진료 일정을 잡기가 어려운데, 파업으로 행여 수개월씩 일정이 더 밀린다고 생각하면 환자들은 낙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해운대백병원 1층 원무과에서 만난 최 모 씨는 전공의 집단 사직 전에 배우자 수술이 끝났다며 안도했다. 최 씨는 “파업 전에 수술을 마쳐서 천만다행”이라면서도 “환자를 놔두고 의사가 파업하는 게 올바른가. 마음 같아선 파업 반대 집회에 나가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남 역시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이날 오전 9시께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에서는 흉부외과 등에서 수술 2건이 연기됐다. 현재 이 병원은 전공의 99명 중 71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단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대부분 전공의는 출근을 했지만 근무는 하지 않았다.

병원 지하 1층 수술실 앞에서 만난 50대 A 씨는 “이미 어머니가 수술실에 들어갔으니 다행”이라며 “전공의 파업이 환자 입장에서 좋을 리 있겠냐”고 반문했다. 별관 2층 응급중환자실 앞에 앉아 있던 전 모(74) 씨는 “의사분들도 사정이 있겠지만, 아픈 환자 입장을 좀 더 생각하고 배려해 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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