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감금·조롱한 시위대…온라인에선 "경찰이 폭행" 여론몰이도
'에펨코리아'등에서 음모론 확산
시위대는 여성 유소년 선수들 검문
경찰 "허위사실 유포 자제해달라"
5일 서울 송파구 잠실7동 2투표소 인근에서 투표함 이송과 시위대 해산을 위해 경찰 기동대가 투입돼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나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경찰 내부에선 현장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문제 제기와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8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전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시위대가 몰려 있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 출동한 기동대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용자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이날 오후 3시 현재까지 700개의 '좋아요'와 200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경찰 내부에서 공감을 얻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작성자 A 씨에 따르면 경기장 1-3 게이트 경비를 맡은 기동대 인원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하지 말라는 지침에 따라 시위대의 영상 촬영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로 근무해야 했다.
A 씨는 자신이 지난 6일 근무했다고 밝히면서 "시위대가 투입 인원의 복장을 점검했다. 마스크·선글라스·불봉 등을 착용하면 (근무 장소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며 "근무모와 형광조끼만 입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위대 인솔자가 (경찰) '근무자는 여기서 일하라'고 접이식 철제 폴리스 라인을 개방하며 직접 건물 안쪽 문 앞에 근무지를 지정해줬다"며 "폴리스라인 뒤엔 철문으로 닫혀 있어 복도만큼 공간에 고립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들의 지침에 따르지 않으면 이렇게 감금 비슷한 조처를 해서 화장실도 못 가고 6시간 동안 교대하지 못한 부대도 있었다"며 "갇힌다는 생각에 우리 동료들은 벌벌 떨었다"고 덧붙였다.
이 경찰관은 교대 과정에서 시위대가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 '평화 시위'의 증거처럼 확산된 것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A 씨는 "경찰들이 그 수많은 시위대를 지나쳐갈 때 비아냥처럼 낄낄대고 박수치고, 시위대 인솔자가 경찰을 데리고 그 사이를 지나가게 하는 것 자체가 경찰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잠실에 모여있는 시위대만 국민인가. 경찰관도 공직자이기 전에 국민"이라며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지침으로 더는 경찰관을 조롱거리로 몰아넣지 말라"고 촉구했다.
다른 경찰관들도 댓글을 통해 "수치스럽다" "경찰 초상권·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 "저 현장에 왜 들어가야 하나" 등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
경찰 둘러싸고 조롱하는 시위대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등 SNS에는 시위대가 한 경찰관을 둘러싸 고립시키며 "왕따야 뭐야"라고 말하는 등 조롱하는 영상이 확산되고 있다.
또 개표소 앞 시위에 투입된 기동대 소속 B 경정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중국인이냐는 욕설을 듣는 영상이 SNS에 퍼져 B 경정 가족의 고발이 예고된 상태다.
경찰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온라인상에서도 심각했다. 젊은 남성들의 이용이 많은 대표적 인터넷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의 지난 5일 인기 게시판은 '경찰이 시위대를 폭행한다'는 내용의 게시물로 도배됐다.
인터넷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캡처
15초 분량의 이 짧은 영상에는 다수의 경찰이 일부 시위대를 둘러싸고 팔을 잡아 당기는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담겼다. 시위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다급하게 "하지 마, 하지 마"라고 외치고, 한 경찰관이 흥분한 듯한 동료를 제지하는 장면도 담기기는 했으나 폭행이라 부를 만한 장면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경찰이 시위대를 폭행했다'고 몰아갔고, 게시물이 삭제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같은 영상물을 거듭 확산시켰다. 그러면서 폭행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오지 않는 것을 두고 '언론이 정부로부터 보도 통제를 당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유포하기도 했다. 이들 게시물은 8일 오후 현재는 상당수가 삭제된 상황이지만 일부 게시물은 여전히 남아있다.
잠실 개표소로 사용됐던 핸드볼경기장에서 공인구와 훈련기구를 꺼내오는 선수들. 연합뉴스
한편 현장에 남아 있는 시위 참가자들은 이날 핸드볼 여성 유소년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둘러싸고 가방을 강제로 검문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께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1-5 출입구에서 태극마크 선수복을 입은 핸드볼 여성 유소년 국가대표팀 선수 6명은 "문을 열어달라"며 시위 참가자들에게 간청해야 했다.
이들 선수들은 오는 24일 중국 산시성 진중시(晋中市)에서 시작되는 제25회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U20) 출전을 앞두고 연습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이 시위로 봉쇄되자, 인근 한국체육대학교에서 대신 훈련하기 위해 훈련기구를 꺼내러 온 것이다.
그러나 시위 참가자들은 "핸드볼 선수인지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 "얼굴 대조를 위해 경기 영상을 보여달라"며 길을 내주지 않았다. 입구를 지키던 경찰이 "아직 주니어 선수라 영상은 없는 거 같다"며 협조를 구하고, 선수들이 "안에 있는 공인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참가자들은 "왜 꼭 그 공이어야 하느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한 선수가 "제발요"라며 손을 비비는 등 '간청'한 끝에 시위 참가자들은 길을 내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0시 24분께 선수들이 공이 담긴 수레와 비닐백 등 훈련용품을 갖고 나오자 시위자들이 몰려들어 '소지품 검사'를 시작했다. 가방 안에 부정선거 증거물인 투표용지 등이 섞여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20세 안팎의 어린 선수들은 몰려든 이들의 기세에 위축돼 검사에 응했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얼굴은 시위 참가자들의 촬영 세례에 노출돼야 했다. 한 남성 시위 참가자는 "양말도 벗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가 경찰 등에게 "성적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선수들과 함께 온 감독은 "시위가 하루 이틀 내에 끝나면 기다리겠지만 2∼3주가 걸리면 그 손해를 감수할 수가 없다"고 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위대 피켓. 연합뉴스
한 외신 기자도 시위대에게 휩싸여 봉변을 당했다. 경기장 앞에서 중국어로 들리는 듯한 언어로 카메라 앞에서 생중계를 하는 외신 기자는 시위 참가자 20여 명에게 포위당했다.
이들은 "중국인 아니냐" "하도 위장이 많아 의심스럽다"고 기자를 몰아세웠다. 약 5분 뒤 방송이 끝나자 중국어를 구사하는 시위 참가자가 다가가 소속을 물었고, "대만"이라는 답을 듣고서야 이 기자에게 길을 터줬다.
이날 현재 핸드볼경기장 일대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1600여 명이 재선거를 요구하며 시위 중이다. 이들은 투표용지 반출을 막겠다며 경기장 출입구 10곳을 봉쇄 중이다. 경찰은 현재 기동대 350명가량을 현장에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촉발한 투표·개표소 시위에 출동한 경찰관에 대한 억측·명예 훼손을 멈춰달라고 8일 공개 당부했다.
경찰청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집회·시위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을 대상으로 '외국 경찰' '가짜 경찰' 등 확인되지 않는 억측과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이 확산 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경찰청은 "해당 인원은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대한민국 경찰관"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려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14만 경찰관 사기를 저하하고, 정당한 법 집행을 어렵게 하는 근거 없는 허위 사실 유포를 자제해달라"고 덧붙였다.
본 투표일인 지난 3일부터 이어진 투표·개표소 일대 시위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다친 경찰관은 5명이며 모두 경상으로 파악됐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