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채동선의 '고향', 서리서리 얽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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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채동선. 부산일보DB 채동선. 부산일보DB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운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고향’이라는 오래된 시가 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정지용(1902~1950)이 1930년대 초에 쓴 시로 알려져 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산꿩이 알을 품고 /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산꿩, 뻐꾸기, 흰점꽃, 풀피리 소리를 나열하며 잃어버린 옛 고향의 정서를 새겨놓은 명작이다. 당대의 작곡가 채동선(1901~1953)은 이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였다. 도쿄 독창회에서 처음 발표한 후, 1933년 ‘채동선 가곡집’에 수록했다.

채동선은 한국 근대 음악사에서 홍난파와 함께 초기 예술가곡의 기초를 세운 1세대 작곡가다. 특히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 ‘향수’, ‘그리워’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01년 6월 11일 전남 벌교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에서 바이올린과 음악 이론을 공부한 정통 유학파 출신이다. 1929년에 귀국하여 이화여전 등에서 교육 활동을 펼쳤고, 여러 차례 바이올린 독주회도 열었다.

시인 정지용은 한국전쟁 기간에 행방불명되어 소식이 끊어졌다. 이를 두고 미군 폭격 사망설, 납북 중 사망설 등이 제기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문제는 전쟁 직후 정지용이 ‘월북·납북 작가’로 분류되면서 그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마저 금지곡이 될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출판사는 동요 작가 박화목에게 의뢰해 새 가사를 붙이고 ‘망향’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으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1964년 채동선 타계 12주기를 맞아 유족은 새 가사를 의뢰했다. 그렇게 태어난 곡이 이은상 작사의 ‘그리워’였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내 님은 뵈지 않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한동안 가장 많이 불린 가사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음대 교수였던 소프라노 이관옥이 “내 정든 고향을 떠나와서~”로 시작하는 ‘고향 그리워’라는 곡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8년 7월 19일 자로 정지용을 비롯한 김기림, 임화, 백석 등 이른바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되었다. 무려 네 개의 서로 다른 가사를 지녀야 했던 채동선의 곡은 그때서야 비로소 정지용의 원래 가사를 되찾아 불리기 시작했다. “좁쌀 한 톨에도 우주가 들어있다”라는 말처럼, 노래 한 곡에도 한국 현대사의 쓰디쓴 사연이 얽혀 있음을 증명하는 가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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