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시간 불평등
2024년 출간된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의 책 ‘시간 불평등’(The Politics of Time)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의 자유’가 어떻게 불평등하게 분배되며 특권이 되었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책은 ‘왜 우리는 여전히 시간에 쫓기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20세기 초,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술이 발전하면 2030년쯤엔 인류가 주당 15시간만 일하며 풍요로운 여가를 누릴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현실은 주 최대 50시간 근무 원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수많은 노동자가 밥벌이에 인생을 저당 잡힌 채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저자는 시간 빈곤의 원인이 단순히 개인의 시간 관리 문제를 넘어서, 현대 사회가 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소수의 특권층과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자기 시간을 통제할 권리를 잃어버린 자들로 양극화됐기 때문이라고 봤다.
최근 부산에서 상경한 대학생들의 일상을 걱정하게 됐다. 지난 8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대학생 기자가 던진 ‘시간 불평등’ 질문 때문이다.
“서울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은 심각한 시간 불평등을 겪고 있습니다. 값싼 월세를 구하기 위해 도심에서 외곽으로 멀어지며 이동 시간이 더 필요해졌고 주거비와 학비를 보태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니 공부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고스펙을 요구하는 취업시장에 내던져진 지방 출신 대학생들은 또다시 경쟁에서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해법이 있습니까?” 이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과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당위성을 역설할 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부푼 희망으로 인서울 대학에 합격했지만, 서울 수도권 생활은 팍팍하기만 하다. 지방 출신 학생들은 매일 왕복 2~3시간 이상을 대중교통에서 보내고, 주거비와 생활비 충당을 위해 학업 외에 아르바이트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주말이나 명절에 부산을 오가는 데 드는 시간 역시 엄청난 비용이다. 서울 토박이 학생들이 그 시간에 스펙을 쌓거나 휴식을 취할 때, 이들은 생존을 위해 보상이 낮은 단순 노동에 시간을 저당 잡히게 된다. 이는 졸업 후 다시 취업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의 대물림을 낳는다. 결국 돈의 불평등이 곧 시간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구조, 늘 시간에 쫓기는 20대 지방러에게 개인의 노력만으로 불평등을 극복하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 김경희 해양수산부장 miso@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