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이어진 김한나의 ‘솔메이트’ 토끼 서사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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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까지 카린 갤러리 ‘싹싹하게’ 전시
농작물로 변주된 토끼와 소녀 ‘한나’ 이야기
식탁과 밭에서 길어 올린 계절 감각 드러내
성장과 돌봄, ‘싹싹함’이라는 삶의 태도 견지

카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는 바다를 믿기로 했다'(2025)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한나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카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는 바다를 믿기로 했다'(2025)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한나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양파가 되어'(2026).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양파가 되어'(2026). 김은영 기자 key66@

1981년생 김한나 작가가 자신의 ‘솔메이트’(soulmate) 토끼와 함께한 시간은 올해로 꼭 20년에 이른다. 2006년, 부산대 미술학과 3학년이던 그는 서울 대안공간 루프의 신인 작가 발굴전에서 ‘한나의 괜찮은 하루’를 선보이며 상상 속 친구를 처음 세상에 내놓았다. 어느덧 토끼는 성년이 되었고, 작가 역시 그 시간을 통과해 왔다. 대학 졸업 전 아라리오갤러리 최연소 전속 작가로 발탁되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그는, 8년간의 전속 계약을 마친 뒤 독립적인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많은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한 곳에 묶이는 게 점차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카린 갤러리에서 인터뷰 중인 김한나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카린 갤러리에서 인터뷰 중인 김한나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싹싹하게' 전시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싹싹하게' 전시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허수아비 연습하기'(2025).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허수아비 연습하기'(2025). 김은영 기자 key66@

2010년대 중후반 이후 그는 ‘자유인 김한나’로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이름을 딴 소녀 ‘한나’와 토끼의 서사를 다양한 시점으로 선보여 왔다. 지난달 15일부터 부산 해운대 달맞이언덕 카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한나 개인전 ‘싹싹하게’는 농작물로 변주된 토끼와 소녀 한나가 등장하며, 식탁과 밭의 풍경에서 길어 올린 계절 감각이 화면 전반을 이끈다. 해마다 두세 차례 국내외 개인전을 진행해 오고 있지만, 평소 휴대전화도 없이 지내는 데다 언론 접촉도 드문 편이어서 기자도 처음으로 대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김한나의 '다른 희망'(2026).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다른 희망'(2026).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속을 꽉꽉 채워'(2026) .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속을 꽉꽉 채워'(2026) .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두 번째 베개'(2023).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두 번째 베개'(2023). 김은영 기자 key66@

토끼와 함께하는 일상은 여전히 편안하고 따뜻하다. 도시농부인 아버지를 닮은 듯 채소에 물을 주는 토끼, 김장용 배추처럼 속이 꽉 찬 ‘배추 머리’의 한나, 당근과 양파, 버섯, 무, 상추 등으로 변형된 토끼들은 성장과 순환의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환기한다. 해운대 바닷가로 나들이를 떠난 토끼와 한나, 무릎을 베고 잠든 소녀의 장면은 정서적 친밀함을 과시한다. 한편, 작업실에서 나뒹굴던 스티로폼과 파지 종이를 구기고 뭉쳐 만든 ‘종잇조각’ 토끼는 소비된 물질이 다시 생명을 가진 형상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드러내며, 회화와는 다른 물질적 서사를 형성한다. 양파나 콩나물, 화분을 닮은 이 입체 작업은 지난해부터 계속하는 중이다.

김한나의 '보고 싶은 성장 속도'(2025).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보고 싶은 성장 속도'(2025).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긴 숨'(2025).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긴 숨'(2025). 김은영 기자 key66@

작가는 “여덟 살 때부터 생선을 먹지 않았다”고 말한다. 채식을 시작한 뒤의 변화를 두고 그는 “몸이 가벼워졌다기보다 힘에 여백이 생겼다”고 표현한다. “시금치가 흙 위에 바로 서 있듯, 꼭 필요한 만큼만 힘을 쓰게 됐다”는 작가 노트의 문장은 그의 생활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작업실까지는 늘 걸어서 이동하고,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며, 하루 8시간씩 해 오는 작업 루틴에도 큰 변화가 없다. 20년 넘도록 변함없는 일상을 유지한다는 게 놀랍다. 심지어 둘은 닮은 듯했다.

김한나의 '토끼 버섯'(2026). 카린 제공 김한나의 '토끼 버섯'(2026). 카린 제공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토록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토끼에 대해 작가가 단 한 번도 싫증이나 거리감을 느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묘한 형태의 변화, 이를테면 조금 더 둥글어진 눈을 제외하면, 토끼는 일관된 정서 속에 머문다. “완벽한 토끼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작가의 고백과 실제 동물을 길러본 적 없다는 사실은 이 존재가 철저히 통제된 상상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결국 토끼는 타자라기보다, 작가 자신을 반영하는 거울에 가깝다.

김한나의 '싹싹하게' 전시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김한나의 '싹싹하게' 전시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전시 제목 ‘싹싹하게’는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생명의 시작인 ‘싹’과, 타인에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가는 태도인 ‘싹싹함’을 결합한 말이다. 생명의 발생과 타자를 대하는 태도를 하나의 감각으로 묶으려는 시도다.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그는 “당분간은 자연과 연관된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이어진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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