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해상풍력, 선택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이경훈 전 부산 사하구청장
때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기후 위기가 피부로 와 닿는 계절이다. 전 세계적인 기후 변동 속에서 한반도가 점차 아열대 기후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은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이 부른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는 지금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중심에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무역 규범으로 자리 잡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이 있다. 오는 2050년까지 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력의 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이 흐름은 단순한 환경보호 운동의 차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공급망 전체에 이를 요구하면서, 이제는 국제무역의 무서운 진입장벽이자 새로운 경제 질서로 군림하고 있다.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대한민국으로서는 이 흐름을 맞추지 못할 경우 국제적인 상품 유통과 경쟁력 확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이러한 전 지구적 과제 앞에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대안은 단연 ‘해상풍력’이다. 해상풍력은 다른 재생에너지에 비해 발전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강력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전국적으로 가동 중인 단지가 손에 꼽을 정도로 국내 해상풍력의 발걸음은 매우 더디다. 반면 세계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누적 설비용량은 이미 92.5GW를 넘어섰으며, 현재 인허가 단계나 개발 계획 중인 물량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추세다.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의 전망에 따르면 오는 2035년까지 세계 해상풍력 설비용량은 현재의 4.5배 수준인 420GW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AI 데이터센터 확충과 첨단 제조업 전력화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주요국들이 해상풍력 선점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각광을 받으며 급속히 늘어나는 해상풍력이 유독 국내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암초는 ‘주민 수용성’ 문제와 이에 따른 격렬한 반대다. 이를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나 님비(NIMBY) 현상으로 치부하며 지역민의 애향심을 폄훼해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 평온하던 삶의 터전 앞바다에 낯선 거대 구조물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우려와 걱정을 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다. 소음이나 전자파, 경관 훼손에 대한 불안감은 사업 초기 단계부터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행정적 절차가 부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과학적 사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해안가에서 1km 이상만 떨어져도 발전기 소음은 바다의 파도 소리에 묻혀 체감하기 어려우며, 풍력발전기와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역시 일상에서 흔히 쓰는 헤어드라이어 발생량의 1.2% 수준에 불과해 인체에 전혀 무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미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제주 탐라해상풍력단지의 사례는 훌륭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야간 조명이 빚어내는 이색적인 풍광이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되어 방문객을 이끌고, 바닷속 해양 구조물이 인공어초 역할을 해 어족 자원을 오히려 늘리는 등 지역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다행히 최근 시행령이 마련된 ‘해상풍력보급 및 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갈등 해결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민간 주도의 난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가 계획적인 입지 발굴과 인허가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안이 명시한 민관협의회 구성과 ‘이익공유 의무화’는 주민 수용성을 높일 핵심 열쇠다. 여기에 REC 가중치 부여를 통한 수익성 보장, 고정가격 입찰시장 운영, 주민 참여형 사업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 등 정책적 뒷받침도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제는 사업 주체와 관할 지자체의 전향적인 발상 전환과 실행력이 선행돼야 할 때다. 주민을 설득의 대상이 아닌, 인허가 등 행정절차 초기 단계부터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실질적인 ‘동반자’로 인정해야 한다. 막연한 보상안을 제시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지자체 차원에서 주민 참여형 이익공유 모델을 명문화하는 상생 조례를 선제적으로 제정하고 구속력 있는 제도적 틀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발전 수익이 지역 사회의 복지와 일자리 창출로 선순환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온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탄소중립의 여정 속에서, 실질적인 주민 상생에 기반을 둔 해상풍력은 이제 선택의 문항이 아니라 대한민국 번영과 생존을 향해 돛을 올려야 할 필수과제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