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여름 갈치구이
마침표 찍지 못한 문장들
칼치는 요래 무야 맛나는 기라
등더리를 펴자
임성용 소설가
원고 마감을 열 시간쯤 넘긴 아침. 시끄럽던 새벽 새소리도 어느새 사라지고, 뻑뻑한 눈동자 따라 끔뻑끔뻑 점멸하는 문장들과, 마침표 하나 제대로 못 찍는 손가락 위로, 여름 햇볕이 슥 내려앉았다. 유리창 뚫고 들어온 열기에 손가락이 따끔따끔하다가, 갑갑하다가, 점점 더워졌다.
‘이 더위는 마감 때문인가? 마감을 품은 여름 때문인가? 아닌가? 여름을 마감이 품은 건가?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인가? 정신을 좀 차려야 될 것 같은데… 그래, 마감이고 나발이고 일단 뭘 좀 먹을까? 어차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뇌로 포도당을 보내면 마침내, 마침표가 둥실 떠오를 수도 있잖아?’라고, 생각 아닌 생각이 마구 뻗치다가, 오돌돌 생선구이 집이 떠올랐다. 에어컨을 너무 빵빵하게 틀어서 오돌돌 닭살이 돋는. 나는 벌떡 일어나서 때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갔다. 들어서니 첫 손님이다. 앉으니 역시 오돌돌 닭살이 돋는다. 언젠가, ‘여기는 지구에 해로운 가게야’라고 말하며 고갈비를 야무지게 뜯던 시인을 떠올리며, 고등어구이 정식을 시켰다.
놓아 지는 밑반찬과 에어컨 송풍구에 송송 맺힌 물방울들을 번갈아 보며 묵직한 눈꺼풀을 끔뻑거리고 있을 때,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 백발의 할머니와 반백의 아저씨가 들어왔다. 미간의 간격과 코의 모양이 똑같다. 할머니는 근처 병원의 환자복을 입었다. 할머니가 창가 자리를 향해 간다. 아들이 뒤따르며 툭 내뱉는다.
“거는 해 든다 아이요. 더분데 안으로 앉지.”
할머니는 못 들은 척 창가 자리에 가서 햇볕에 달은 의자에 손을 대 본다. 앉으며 말한다.
“어 뜨시다. 바닥은 뜨시고 공기는 칼칼하이,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욜로 앉아라.”
아들은 뭐라 입을 떼려다가 말고 마주 앉는다. 할머니가 내 테이블에 놓이는 고등어구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갈치구이 정식을 시킨다. 이내 적당히 익어 적당히 반짝이는 갈치 토막이 놓인다. 고등어구이를 먹으며 끔뻑끔뻑 모자를 구경했다. 할머니가 갈치 가시를 반듯하게 발라내며 말한다.
“요를 요래 갈라가 살살 띠마, 깨끔케 돼. 요래가 가운데 꺼는 새끼 주고, 요 옆에 꺼는 어매가 묵는 기라.”
그러며 아들 밥에 가운데 살을 올린다.
“됐어요. 엄마나 잡솨.”
“칼치는 요래 무야 맛나는 기라. 니도 얼라들 한테 요래 발카가 주라.”
“시대가 어떤 시댄데… 그라고 얼라들 다 컸어요. 고마 엄마나 잡솨.”
뜬금없이 시대 타령이 튀어나온 아들의 눈알이 붉어진다.
“그래, 묵자.”
할머니의 백발에, 노랗게 구워진 갈치 등에 내려앉은 햇볕이 눈 부시다.
“등더리 피고!”
반백의 아들은 말없이 등을 편다. 나도 덩달아 등을 편다. 펴다 보니 등이 아프다. 뒤따라 아들의 척추 사이로 잔소리가 피어오른다.
“앞만 보고 살마 등더리가 꾸부러지. 사람이 뒤에를 너무 안 보고 살마, 치받고만 사는 기라.”
아들은 말없이 미역국을 뜬다. 내 척추 사이에서도 뭔가가 스물스물 기어 나온다.
‘내 뒤는 어떤 모양이었더라… 마감하지 못한 내 원고도 구부러져 있을까? 뒤돌아보면 펴질까. 마감이 열 시간, 아니 이제 열한 시간 지났는데, 뒤돌아봐도 될까.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아! 그렇게 되면, 불쌍하다, 내 원고. 그리고 내 척추. 그 사이에 스민 전설들.’
젓가락을 놓았다. 밥값을 내며 생각한다.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하자. 별수 없다. 등더리를 펴자.’
하고 뒤돌아보니, 반백의 아들이 벌건 눈으로 미역국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