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산의 과학기술 혁신, 누가 설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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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철 국립부경대 공과대학 학장 한국지리정보학회 회장

해양수도 부산·인공지능 대전환
전재수 시장, 시정 양대 축 제시

국가 과학기술 예산 4.2% 불과
수도권 물론 대전에도 뒤처져

행정 체계 정립·실행 구조 확립
지역 주도 혁신 계획 수립해야

7월 1일, 민선 9기 전재수 부산시정이 공식 출범했다. 새 시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해양수도 부산’과 ‘인공지능(AI) 대전환 선도 도시’를 시정의 두 축으로 제시했다. 반갑고 고무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도시의 미래는 비전과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부산의 과학기술 미래는 지금 누가, 어떤 구조로 설계하고 있는가.

올해 4월 국회는 숙원이었던 ‘지역 주도 과학기술 혁신 촉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2027년 1월 시행 예정인 이 법은 시도지사가 5년 단위 과학기술 혁신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지역이 직접 R&D 사업을 기획·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민선 9기 부산시는 이 제도적 기반 위에서 임기를 시작한다. 출발 조건은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제도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지역의 혁신 역량까지 함께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법은 출발선일 뿐, 실제 성패는 이를 설계하고 실행할 역량에 달려 있다.

부산의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자. 정부의 지역 과학기술 혁신 역량 평가를 보면 R&D 투자액, 연구 인력, 대학 경쟁력 등 주요 지표에서 부산은 수도권과 대전에 크게 뒤처져 있다. 이러한 취약성은 연구개발 투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국 국가 연구개발 예산 중 부산의 몫은 고작 4.2%에 불과하다. 그나마 해양수산부 R&D 예산의 44.6%를 부산이 유치하며 해양 분야에서만큼은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해양수도를 표방하는 도시로서 당연한 결과지만, 동시에 해양을 제외한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부산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처럼 부산의 과학기술 기반이 취약한 이유는 단순히 연구개발 자원의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를 장기적으로 기획하고 조정할 정책 추진 체계마저 불안정했다는 점이다. 부산의 과학기술 전담 싱크탱크인 BISTEP(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은 시장이 바뀔 때마다 통합·구조조정 논란에 흔들리며 일관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시정의 잦은 개입과 구조적 불안정이 되풀이되는 사이 전문 인력은 떠났고, 도시의 과학기술을 설계할 두뇌가 싹을 틔우기도 전에 뿌리째 흔들린 결과다. 과학기술 행정 체계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 기획은 이쪽, 균형발전은 저쪽, 산학협력은 또 다른 부서가 맡는 식으로 여러 실·국에 나뉘어 각자의 논리로 움직여 왔다. 결국 그동안 부산의 과학기술 혁신을 책임질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부재했던 것이다. 전략은 분산되고 책임은 흐려졌으며, 장기적인 혁신 역량도 축적되지 못했다.

세계는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지역이 스스로 기술 전략을 기획하도록 장기 재정을 보장하고 있다. 영국은 런던 중심의 연구개발 투자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일본 역시 지자체를 단순한 정책 집행자가 아니라 혁신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격상시켰다. 지역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면 혁신도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중앙이 설계하고 지방이 따르는 하향식 구조로는 더 이상 도시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민선 9기 새 시정이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대전시는 이미 정무경제과학부시장 직제를 도입해 과학기술과 산업, 경제 행정을 하나의 라인에서 총괄하고 있다. 부산에도 미래혁신부시장 직제가 있지만, 과학기술 혁신까지 총괄하는 라인으로 작동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해양수도와 AI 대전환을 지향하는 부산이 대전의 모델을 참고할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한 해양수도의 완성은 항만과 물류의 확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양 환경, 해양 에너지, 해양 모빌리티는 물론 AI 기반 해양 디지털 전환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세계가 인정하는 해양 중심 도시가 될 수 있다. 해양과 과학기술, 산업과 균형 발전으로 흩어진 행정 체계를 한 지붕 아래로 모아야 한다. 동시에 부산의 여러 대학에 축적된 공학, 해양과학, 정보기술 분야의 연구 역량과 인재들이 중앙 공모 사업의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부산 혁신의 실질적 파트너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정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2027년 새 법률이 본격 시행되기 전, 부산시는 그에 걸맞은 지역 과학기술 혁신 계획을 미리 세워야 한다. 그러나 법은 이미 마련되었어도 부산의 준비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기존 계획과의 위계 정리도, 혁신 계획이 담아야 할 범위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 주체와 실행 구조를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새 시장의 임기가 시작된 지금이 그 출발점이다. 민선 9기 부산의 과학기술 혁신이, 그 설계에서 첫 단추를 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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