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지속 가능한 선박 금융 생태계가 필요하다
김준석 법무법인 YK 고문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전 이사장
국적선 친환경 선박 전환 투자 필요
민간금융 참여 미미·외국계 비중 커
선박 투자 '조세리스' 제도 도입해야
해운업은 B2B 산업이기에 국민에게 친숙한 분야는 아니다. 가끔 국민적 관심을 끄는 경우가 있는데, 한진해운 파산이나 코로나 팬데믹 때 선박 부족으로 아우성치거나 최근 이란 전쟁으로 바닷길이 막힐 때다. 2025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수출입 비율은 약 72%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일본의 약 33%와 비교해도 두 배에 달한다. 극단적인 개방경제 국가이자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 안정적인 바닷길 확보의 중요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자명하다.
그러나 아직도 해운업을 포함한 물류산업을 제조업 등 다른 산업에 종속된 산업으로 보거나 비용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결과가 한진해운 파산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이 투입됐을 뿐 아니라 많은 중소 수출기업이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물론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등 정부의 과감한 정책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 등 예상 밖의 대외 여건까지 맞물리면서 해운업의 위상은 어느 정도 회복됐다.
2024년 기준 국적선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외항선대는 약 1억 톤으로 중국, 그리스,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이며, HMM은 컨테이너 선복량 기준 세계 8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국적선사들 각고의 노력은 물론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독자적인 정책 금융기관 신설과 톤세제 연장 등 정부 정책이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특히 2021년 코로나 팬데믹 특수 이후 지난해까지 유례없는 해운업 호황이 이어지면서 국적선사들은 과거의 부실을 털어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달이 차면 기울기 마련이다. 해운업도 호황 뒤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호황기에 발주된 신조선의 인도가 지난해부터 본격화하고 있고 운임 수준도 하향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국적선사들의 영업이익률 하락 등으로 장기 투자 여력은 줄어드는 반면, 국제해사기구(IMO)의 탈탄소화 규제 강화와 자율운항선박 도입 본격화 등 중장기 투자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국적선의 친환경 선박 전환을 위해서만 2050년까지 약 70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선사의 자금력과 운송계약 형태에 따라 다르지만 선박 건조 시 자기자금 비율은 최저 10%에 머무는 등 안정적인 선대 확충을 위해서는 건전한 선박금융 생태계 조성이 필수적이다. 반면 2000년대 후반 이후 10년 가까이 지속된 해운업 장기 불황으로 우리나라의 선박금융 생태계는 매우 왜곡된 형태를 띠고 있다. 정책 금융기관의 비중이 3분의 1 이상에 달하고 민간 금융의 참여는 매우 미미한 반면, 외국계 자금 비중은 6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운업 호황이 유지되고 국제 환경이 우호적일 때는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지만 향후 큰 위기로 부각될 수 있다. 특히 선사의 경쟁력이 그 어느 때보다 선박의 비용 효율성과 규모에 좌우되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 선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지속 가능하고 대외 의존도가 낮은 선박금융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른바 선박 투자에 대한 ‘조세리스’ 제도를 전향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조세리스’는 산업자본 등을 선박 건조에 유치하고 해당 선박의 조기 감가상각을 인정해 투자기업에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다. 필자는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국형 조세리스 도입을 위해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한 적이 있다. 최근에도 해양수산부는 친환경 선박 등으로 투자처를 좀 더 제한하는 등 제도를 개선해 재추진했으나 역시 세제 당국의 벽을 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하고 관련 비용을 손비 처리하는 법인세의 대원칙을 준수하고자 하는 세제 당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에서 해운업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위기 시 국적선대의 역할을 좀 더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한다.
해운 당국과 해운업계도 세제 당국에 대한 설득과 조선업계 등 관련 업계와의 협력을 강화해 정책 타당성을 더욱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현 정부의 ‘해양수도권 정책’, 해운업계의 ‘전략상선대’ 등 다른 정책과의 연계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부산 지역에 선박 특구를 신설하고 특구 등록 선박에 한해 조세리스 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전략상선대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해운 정책을 담당했던 필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정책의 핵심 3대 요소는 선대 확보, 인력 양성, 국제 규제 대응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경쟁력 있는 선대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해운 당국과 해운업계, 부산 지역의 적극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추진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