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할 자치’ 넘어 ‘2극 체제’로… 부울경, 지방분권 이끌어야 [다시, 지방분권]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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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전문가 좌담회

수도권 일극체제 위기 심각 수준
지역 스스로 정책 결정·책임져야
예산, 선집행·후통제 방식 필요
기업 유치 위한 자율성 확대 시급
권한·재원, 선택과 집중 요구돼
행정통합보다 기능적 통합 우선

지난달 31일 부산일보사 회의실에서 열린 ‘다시, 지방분권’ 기획 보도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지방분권 정립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지난달 31일 부산일보사 회의실에서 열린 ‘다시, 지방분권’ 기획 보도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지방분권 정립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출범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2할 자치’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무와 재정, 조직에 대한 권한이 중앙정부에 집중되면서 지역이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일극체제가 심화하면서 지방소멸 위기까지 커지는 상황에서 지방분권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일보〉는 지난달 31일 지방분권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실질적인 분권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계 인사를 초청해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에는 지자체와 상공계, 학계, 시민단체를 대표해 △부산시 김병권 기획담당관 △부산상공회의소 심재운 경제정책본부장 △국립부경대 차재권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방분권균형발전부산시민연대 박재율 대표가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지방분권을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나눠주는 단순한 권한 이양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이 정책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도록 권한과 재정, 조세제도를 함께 바꾸고, 나아가 부울경이 수도권에 대응할 수 있는 초광역 경제권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분권, 제로섬 아닌 윈윈”

차재권 차재권

지방분권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는 수도권 일극체제의 한계가 꼽혔다. 차재권 교수는 “지방분권은 수도권의 몫을 빼서 지방을 채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win-win)”이라며 “수도권 일극체제에서 비롯된 대한민국의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만큼 지방분권을 통한 상생발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현행 중앙정부 중심의 행정체계가 지역의 자율적인 정책 결정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재율 박재율

박재율 대표는 최근 국토교통부가 환승센터 구축 계획을 발표한 사례를 들며 “노포터미널이나 부전역에 복합환승센터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지자체의 권한이 부족해 중앙정부 발표만 기다려야 한다”며 “중앙부처가 사업을 결정하고 지방은 집행하는 톱다운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지방정부가 지역 여건에 맞는 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중앙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행정의 틀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한 이양과 재정 자율성 확보”

실질적인 지방분권의 핵심으로는 재정분권이 꼽혔다. 지방정부에 권한을 넘기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재원이 없다면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권 김병권

김병권 담당관은 “지자체가 예산을 집행하기 전 중앙부처가 엄격하게 관리하는 사전 통제방식에서 벗어나 선집행·후통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집행 결과에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앙정부가 사업 목적과 집행방식까지 정해 국고보조금을 내려보내는 현행 방식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자체가 지방비를 매칭하면서도 사업 설계 권한은 갖지 못하는 구조에서는 재정 규모가 늘어도 지방의 자율성이 커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담당관은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포괄보조금을 확대해 지자체가 지역의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이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세입 기반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박 대표는 “현재 중앙과 지방의 세입 비중을 7 대 3에서 6 대 4 수준으로 바꾸고 지방소비세 비중을 높여야 한다”며 “지방세의 파이를 키우는 동시에 지역이 스스로 용처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중앙과 지방의 세입 비율을 놓고 보면 1990년대 초반에 80 대 20 구조였고, 최근 들어서야 75 대 25 구조로 바뀌었다. 5% 포인트 올리는데 거의 40년이 걸렸다”며 “지방세의 파이를 키우면서도 용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연방제 수준의 과감한 분권과 이를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인세 차등화로 기업을 지방으로”

재정분권은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직결된다. 지방정부가 기업을 유치할 수 있도록 조세와 규제 분야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재운 심재운

심재운 본부장은 “부울경 상공계는 법인세와 지방소득세 등의 차등 적용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며 “기업이 실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세제 인센티브의 폭을 확대하고, 정책의 일관성도 최소 5년 이상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차등제처럼 지역 차원의 요구가 있었지만 기업이 체감할 정도의 혜택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도 지적했다. 기업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본사를 옮기고 투자를 확대하려면 단순한 일회성 지원보다 예측 가능한 장기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담당관은 “기업 인센티브를 포함해 지방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부족하다”며 “지방이 사업을 기획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책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부울경 ‘양극체제’의 실험지로

참석자들은 지방분권을 국가 전체의 균형발전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초광역권을 육성하되, 모든 지역에 일률적으로 권한과 재원을 나눠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5극 3특’ 구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수도권 일극체제에 맞서려면 우선 성장 잠재력이 큰 부울경을 수도권과 대응하는 또 하나의 거점, 이른바 ‘2극 체제’로 키우는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부울경에 재정·조세·산업 등 실질적인 권한을 과감하게 부여해 성과를 만들어낸 뒤 이를 다른 초광역권으로 확산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지방분권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차 교수는 “서울시청으로부터 먼 곳으로부터 소멸이 시작되고 있다. 충청 메가시티 같은 걸 전부 허용한다면 이는 수도권의 확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울경 연합에 먼저 권한을 부여하고 지역 차등조세, 전기요금, 법인세 등 다양한 제도를 테스트베드처럼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며 “부울경이 수도권과 함께 대한민국의 양극체제를 형성한다면 지방분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스페인의 경우 완전 연방제 형태를 구축하면서도 바스크나 나바라 같은 지역에는 재정의 특수성을 한층 더 부여해 특성화하고 있다”며 “부울경은 해양수도권이라는 공동 전략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만큼 광역단체장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중앙정부에 보다 강력하게 권한과 재정의 이양을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능적 통합부터 서둘러야”

부울경 초광역권 구축 방식을 두고는 행정통합보다 우선 기능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민주당은 메가시티 출범 이후 통합으로 이어지는 ‘선협력 후통합’을, 국민의힘은 행정구역 자체를 합치는 행정통합을 각각 제시하고 있지만, 참석자들은 명칭이나 행정구역보다 지역 주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협력이 우선이라고 봤다.

심 본부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행정구역이나 명칭보다 물류망과 노동시장 등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행정통합은 중장기적으로 논의하더라도 물류·교통·산업·인재 등 기능적 통합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도 “연방제적 접근이냐 기능주의적 접근이냐를 놓고 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논쟁이 되고 있지만, 결론은 둘다 장담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수렴된다”며 “기능적으로 통합해 저변을 마련한 뒤 필요하다면 위로부터의 충격을 통해 통합을 진전시키는 방식이 현실적이며, 지금은 방법론을 놓고 논쟁만 할 상황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담당관은 “정부가 5극 3특을 통해 초광역권을 중심으로 성장동력을 배분하겠다고 밝힌 만큼 지역이 파이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특별연합체부터 만들어야 한다”며 “부산시도 내부적으로 논의를 서둘러 9월 중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끝-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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