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民慰安의 밤」서 一大參事
死亡者만도 四十八名
四万觀衆이 비바람 피해 몰려나오다가 짓밟혀
18日 零時現在
負傷者75名, 大新洞은 哭聲의 바다
十七일 하오 八시 반경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동업 국제신보사 주최「시민위안의밤」모였던 군중 약 四萬명이 폭풍과 함께 갑자기 내려 퍼붓는 비를 피하려고 앞을 다투어 걷잡을 수 없는 수라장을 일으켜 수 百명의 사상자를 낸 큰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때 현장은 엄마를 부르는 어린 것들의 목메인 소리와 『아이고 아이고』하는 죽음의 비명소리로 아비규환의 참상을 이루었으며 이 참사로 말미암아 운동자에 가까운 大新동 일대는 삽시간에 곡성의 도가니로 변해 버렸다
경찰 당국에서는 사고직후 구급차를 현장에 동원시켜 사상자를 부산대학 병원과 그밖에 東.西大新동 일대의 병원에 수용 응급 가료중에 있다 현재 까지에 판명된 사망자는 四十八명에 달하고 있으며 부상자는 七十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사상된 가족들을 집으로 옮아 간사람도 있어 확인되지 않은 사상자의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하오 七시부터 열린 「시민위안의 밤」에는 역시 이에 앞서 국제신보사에서 베푼 영화배우, 만화가의 교환 야구를 관람한 약 一万명의 군중들이 합세되었다
「프로」가 진행되던 하오 八시 三十五분경 동일 하오 二시 발표되었던 태풍경부를 증명하듯 폭풍을 겸한 소낙비가 갑자기 내기기 시작했다 약 四万의 군중은 물결치듯 동요 했으며「와!」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앞을 다투어 밀어 붙였다 주최측 에서는 즉시 「마이크」를 통하여 동요치 말고 질서를 유지해 달라고 호소했으나 군중들은 파도처럼 입구로 밀렸고 아이들과 부녀자 들의 비명소리는 수라장이 된 운동장 안팎을 뒤덮었다
사고를 방지하고자 미리 동원 되었던 약 七, 八十명의 경찰관은 소란이 일어나자 군중들의 동요를 제지하려고 약 十五발의 공포를 쏘았으나 때마침 악수같히 퍼붓는 비바람속에 四万의 아우성을 멈추지는 못했다 이와같은 공포의 한시간이 끝난 뒤에는 어린것 들의 시체가 점점히 흩어져 있었으며 많은 신발이 낙엽처럼 딩굴었다
밤 十二시 현재 밝혀진 사망자의 수는 四十八명(男=二十五, 女=二十三)이며 중상자의 수는 二十명이다 판명된 사망자는 부산대학병원 시체실에 나란히 수용 됐으며 중상자는 동대학병원 등에 입원 응급가료를 받고 있었다 사고발생 직후 사망자와 중경상자는 구별없이 손 닿는대로 모두 大新동 일대와 草梁동의 교통병원 등지에 까지 운반되어 응급가료를 한후 당국의 지시에 따라 부산대학병원으로 집결 수용된 것이다.
사고직후 경남 경찰국에서는 崔경찰국장 직접지휘 아래 시내 각경찰서 정.사복 경찰관을 전원 소집하여 부산대학병원 이외 군소병원에 입원된 중상자및 사망자를 부산대학병원으로 「앰브란스」로써 운반하여 밤 十二시 현재가지 밝혀진 것이 전기 숫자이다.
그러나 사고발생 당시 현장은 도저히 수습할수 없는 수라장으로 변하여 각기 병원이라고 간판 붙은 곳에 모조리 밀렸고 황급히 전차를 탄채 죽은것이 남자 十명 여자 十六명 등이 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상자의 숫자 파악은 좀더 시간을 요할 것으로 보였다 경찰 당국에서도 十二시 현재 정확한 숫자를 단언 못하고 있었는데 죽은 아이를 없고 집으로 이미 가버란 애도 있었던 것이다.
사고발생 직후 四万군중이 내려밀어 쏟아지는 것을 정비하기 위하여 시내 경찰관이 동원된 것이외의 헌병대와 소방차의 협력까지 얻게됐다
사건 발생이후 운동장부근이 어느정도 정리된 것은 밤 十시가 넘었으나 아들 딸을 찾아 불러 제치고 파출소로 찾아오는 피맺힌 소리는 늦게까지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사고는 재작년 十월 제 三十八 회 전국 체육대회 때에도 일어난 바 있으며 작년도 「시민위안의 밤」에도 대 혼잡을 이루어 부상자를 내었던 것이다.
이번 참사는 돌변한 천후관계로 큰 불상사를 낸 결과 이기는 하나 현 부산공설운동장의 사정으로 볼아서는 수 万이란 군중을 수용하기에는 비좁은 형편일뿐더러 출입구가 정문 밖에 없으며 단 하나의 비상구도 이날 밤에는 닫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