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시선'을 담아낸 '의도'된 사진
제국의 렌즈/ 이경민
부여 능산리고분 앞에 여위고 지저분한 조선 아이를 세워놓은 제국의 시선이 경멸적이다
제 몸집보다 네댓 배는 더 큰 짐을 진 지게꾼, 거북이 등껍질처럼 보이는 초가집이 들어선 진흙투성이 골목, 줄지어 늘어서서 옷에 번호표를 달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백정, 유적 앞에 뻣뻣하게 서 있는 꾀죄죄한 아이, 가슴 다 내놓은 아낙이 활보하는 지저분한 거리.
우리에게 근대 사진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황실의 이미지도 그렇다. 머리를 짧게 깎고 어울리지 않는 서양 제복을 입은 키 작은 고종 황제나 소년병 같은 군복 차림의 영친왕 모습만 떠오를 뿐 황실의 위엄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진짜 근대'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근대사진 속 오리엔탈리즘 분석
식민지배 정치도구로 활용된 사진
생산부터 전유통과정 의미 짚어내
사진아카이브연구소를 운영하는 이경민이 쓴 '제국의 렌즈-식민지 사진과 만들어진 우리 근대의 초상'은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근대 사진을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들은 많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파악한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 책의 미덕은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는 전과정의 의미 맥락을 읽어냄과 동시에 고집스럽게 이면에 있는 의도들을 명쾌하게 짚어낸다는 점이다.
1907년 일본인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이 찍은 황태자 이은(영친왕)과 이완용 내각. 훈장을 찬 군복 차림의 영친왕이 서구식 대례복을 입은 대신들과 촬영한 사진이다. 흥미로운 건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 신체의 반이 잘려진 채 서 있는 인물의 존재다. 바로 흰 평복을 입은 채 영친왕의 촬영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고종 황제이다. 사진의 프레임에 의해 신체 일부분이 잘리는 것조차 금기시했던 조선 사회에서 임금의 옥체를 반토막낸 채 유포시켰다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엔 일본 천황의 사진을 잘못 관리했다는 이유로 조선인들이 대역죄에 준하는 처벌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이 사진은 고종 황제의 모습이 절반가량 잘리거나, 혹은 온전한 형태로, 혹은 완전히 지워진 상태로 이런저런 책에 실려 유통됐다. 고종과 조선 황실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상징 조작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1907년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의 방문 기념 사진에서도 어떤 정치적인 의도를 발견한다. 가장 중요한 인물로 요시히토를 화면 중심에 세워놓고 영친왕을 비롯한 다른 인물은 오른쪽으로 몰아넣은 자리 배치가 첫 번째다. 여기다 앞 줄에 선 인물들을 사선으로 배치시켜 요시히토의 키를 상대적으로 커보이게 했다. 인물들 간의 서열관계를 시각화하기 위한 사진적 배치라는 설명이다.
일제가 고적 사진을 촬영하면서 조선인을 유물 옆에 세워두고 촬영한 방식에서도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인물의 인격을 제거하고 그저 유적의 크기를 알 수 있는 눈금자로서의 기능만 부각시킨 거다. '휴먼 스케일(human-scale)'로 전락한 조선인은 자기 의지나 인격도 없이 일제의 의도대로 움직인다는 식민주의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조선인은 주민증 사진이나 범죄자 사진을 찍듯이 항상 정면을 향하고 있는 반면, 일본인들은 고적조사의 발굴 주체로서 고고학자의 면모를 드러내는 포즈와 행동으로 연출되고 있다.
사진은 가장 객관적이고 정직한 매체로 이해되지만,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이미지를 조작할 수 있는 매체다. 우리가 만나는 근대의 사진들 역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서구 열강과 일제의 의도가 개입된 사진들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가장 신경 쓴 식민지 지배 작업 역시 사진을 통해 일제의 지배를 받을 법한 나라 조선을 그려가는 작업이었다. 사진을 통한 '재현의 정치학'이다.
저자는 책머리에 이런 글을 썼다. '조선시대에 초상화를 지칭한 '사진'은 '참된 것을 그린다'는 뜻이었다. 서구열강과 일제가 앞 다투어 들고 온 사진은 참된 것을 그렸을까?' 이경민 지음/산책자/352쪽/1만8천원.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