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자 '길, 저쪽' 정찬 소설가
"폭력의 시대, 가치 있는 삶 묻고 싶었다"
제32회 요산김정한문학상을 수상한 정찬 소설가가 작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인 1985년 어느 날. 동아일보가 발행하던 한 월간지 기자가 서울에서 부산 서구 서대신동 요산 김정한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그달 월간지의 권두언을 청탁하기 위해서였다. 요산 선생은 흔쾌히 수락했고 원고지 30매에 달하는 가슴 울리는 글을 보내왔다.
그로부터 30년 후. 요산 선생을 찾아갔던 그 젊은 기자는 제32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사랑이 흔해 빠진 세상에서
새로운 사랑 얘기 하고 싶어"
"소설 쓰면서 두려움 느껴
문학상 수상이 격려될 것"
정찬(62·동의대 국어국문 문예창작과 교수) 소설가는 "삶과 문학이 일치했던 요산 선생의 작가 정신은 이 척박한 사회에서 갈수록 더 소중해지고 있는 듯하다"며 "그 소중한 분과 이렇게 작품으로 관계 맺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수상작 '길, 저쪽'은 참혹한 폭력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했고, 여전히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식인들의 사유를 그린 작품, 권력과 폭력 속 인간의 선택과 존엄을 치열하게 탐구해 온 작가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이다.
-수상작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것은
"소설은 삶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며 사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지만, 나이 들어가면서도 젊은 날 지키고자 했던 그 순수함을 끝내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순수함이 훼손된 세상에서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삶에 대해 성찰하고,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유발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수상작을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한 이유는.
"사랑이란 말이 너무 흔해 빠진 세상에서 심화되고 확장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려는 것이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단순하게) 구분하는 것은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놓치는 일일 수도 있다. 여성성은 타인을 포용하는 넓이와 깊이이자 슬픔을 제대로 느끼는 사랑을 의미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슬픔을 느끼는 감수성이 여성적 존재의 요체이고, 삶에 대한 진정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남자든 여자든)의 내면이 바로 여성성인 것이다.
작품을 정치 사회적 배경만으로 썼다면 앙상한 소설이 됐을 테지만 차원이 다른 새로운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여기에 사실 상당한 힘을 쏟았다. 태어날 때의 고통은 망각되지만 몸속에 남아 있다. 나쁜 권력 집단은 이 태초부터 내장돼 있던 잠재된 폭력을 노골적으로 끌어내려 한다. 정치적 폭력, 개인의 상처만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려는 의도였다."
-폭력의 시대, 구원과 치유는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나.
"인간의 본성 속 희망과 구원에 대한 욕망과 집념은 끈질기다. '헬조선' 속에서도 '길 저쪽'을 향해 가려는 희망이 강하지 않나. 낙관도 아니고, 비관도 아닌 결론을 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길 저쪽'을 향한 그리움이 계속되는 한 희망이 유보될지라도 희망은 항상 있다."
-작가에게 소설 쓰기는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문학은 그저 그런 일상으로서의 삶의 부족함과 존재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고, 가치 있게 확장시키는 일이다. 문학은 실재하는 육체 속으로 진실을 온몸으로 밀어 넣는 행위라고 본다.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이 못 되다 보니 일상에서 하지 못한 역할을 소설을 통해 채우려는 욕망이 있다.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진실의 결핍에 대한 두려움, 전작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늘 있다. 요산문학상 수상은 이 두려움에 대한 격려로 생각한다."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