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가 열전] 23.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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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음악적 유언… 짧은 생에 깊은 울림 남겨

불꽃같은 짧은 생을 살다 간 김현식의 노래에는 지금도 여전한 울림이 있다. 페이퍼 크리에이티브 제공

최근 노래가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SBS-TV '판타스틱 듀오'는 예상을 뛰어넘는 감동으로 매회 호평을 받고 있는 듯싶다. 시대가 지나도 회자되는 명곡이 있고, 깊은 울림을 준 가수가 있음이리라. 특히나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고 김현식, 송창식, 변진섭 등과의 특급 컬래버레이션 무대는 감동의 잔향이 너무나 진했다.

자신이 데뷔하던 날. 김현식이 세상을 떠났다고 밝힌 신승훈은 김현식의 '가리워진 길'을 선곡해 짙은 감수성을 표현하며 어디서도 듣지 못할 무대를 만들었다. 담담하지만 진심을 전하는 신승훈의 목소리와 마치 함께 부르는 듯 생생한 김현식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며 묘한 감동을 자아냈다. 비가 내리면 더 그리워지는 결코 길지 않았던 32년 삶에 남긴 짙은 목소리의 소유자 김현식.

악보 볼 줄 몰랐지만 작곡 뛰어나
20살 때 당대 스타 이장희에 픽업
음악다방, 밤무대 거쳐 방송 진출

'사랑했어요' 히트로 존재감 과시
역동적이고 강렬한 창법이 매력
32살 불꽃같은 삶이 노래와 닮아

■음악다방서 드러난 천부적인 음악성


그의 음악은 그의 인생에서 비롯되었고, 그의 철학과 사랑, 고독, 외로움이 음악 안에 진하게 녹아있다. 1958년 1월 7일 서울생인 김현식은 원하던 고교 진학에 낙방 후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연주할 요량으로 밴드부가 유명하다는 명지고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밴드부에서 말썽을 일으키다 결국 중퇴를 하고 만다. 이후 그는 공부보다는 이곳저곳 음악다방을 쫓아다니며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노래를 불러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새 여기저기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때부터 그의 천부적인 음악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밤무대까지 진출한다. 악보를 볼 줄도 몰랐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곡을 쓰기 시작한다. 당대 스타이자 실력자인 이장희에게 픽업된 그의 나이는 20살이었다. 그는 대마초에 손을 댔고, 결국 첫 번째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생활은 피폐해지고 손가락질도 받게 되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음악을 향한 열정과 젊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음반 준비에 매진한다. 당대 테크니션인 '사랑과 평화'의 두 멤버 김명곤(키보드), 최이철(기타)이 가세하면서 천군만마를 얻게 된다. 음반이 완성되자 대마초 가수라는 족쇄가 출시에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의 1집 '봄여름가을겨울·당신의 모습'(1980)은 거의 2년이 지나서야 발매될 수 있었다. 대중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으며, 그에게 고난의 세월을 예고했다. 밀려오는 좌절과 외로움은 그를 또 한번 방황하게 했다. 그렇게 세월을 허비하던 1982년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들어간 옷가게에서 평생 배필을 만나 결혼을 했고, 아들 완제를 낳았다. 이후 동부이촌동에서 1년간 피자 가게를 열어 운영하다 가게 문을 닫고 다시 밤무대에 섰다. 다시 선 밤무대에서 그는 자신감을 얻었으며, 음악이 천직임을 깨닫게 된다. 1984년 9월, 2집 음반 '김현식 2'(1984)가 출시되었다. 다운타운가에서부터 그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솔로·밴드 오간 천재 뮤지션의 비상

서서히 오던 반응은 어느새 방송가로까지 옮겨졌다. 김현식 최초의 히트곡 '사랑했어요'가 인기를 얻게 되었고, 김현식도 가수로서의 존재감을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심어 주게 되었다. 김현식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가 되어준 2집 이후 그는 자신의 음악적 컬러를 강화하기 위해 백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한다.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 장기호(베이스), 박성식(키보드), 유재하(키보드)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라인업이었다. 비록 다음 음반이 나오기 전에 유재하는 탈퇴했지만 그래도 유재하는 김현식에게 자신의 곡 '가리워진 길'을 헌정한다.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1986년 12월 김현식은 3집 음반 '김현식 Ⅲ'(1986)을 발표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음악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음반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음반은 김현식 자신만의 음반이라기보다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음반이었다.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일구어낸 결실이었으며, 나아가 우리 가요사에 길이 남을 명반이었다. 30만 장 이상 팔려 나간 이 음반의 성공은 김현식이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대표 가수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제 그는 누구도 무시 못 할 가공할 음악을 구사하는 거물로 부각되었고, 그런 자신에게 힘을 실어 줄 팬들도 확보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음반 3집 '김현식 Ⅲ'. 페이퍼 크리에이티브 제공
그 화려한 시기에 그는 또 대마초에 손을 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당시 언더그라운드 진영의 양대 산맥이었던 '들국화'의 전 멤버 전인권, 허성욱과 함께 구속되었다. 1980년대 화려했던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종말을 고하는 서막이었다. 김현식은 팬들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삭발을 한 채 1988년 2월 재기 공연을 했다. 이 현장에는 6000여 명의 팬이 운집했다. 그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없는 상태에서 다시 솔로로 돌아와 그 해 9월, 4집 '김현식 vol.4'(1988)를 발매하고 또 다른 음악적 도전을 감행한다. '신촌블루스'와의 활동이었다. 여기서 그는 솔로 음반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또 다른 면모를 과시하는데, 많은 사람은 그가 '골목길'과 같은 노래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에 압도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동료들과 어울리고, 변신을 위해 노력하던 그였다. 팬들은 이제 그가 안정을 되찾는 줄 알았지만 그러기엔 그의 영혼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마약 대신 술에 의지했고, 지나친 폭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간다. 그 와중에도 창작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다. 몸이 많이 상한 상태에서 5집 앨범의 녹음을 강행했다. 1990년 3월, 5집 '김현식 5'(1990)를 발표한다. 마치 그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5집이 나오기가 무섭게 6집 작업에 매달렸다. 그때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오직 술과 음악뿐인 나날이었다.

■불꽃같은 삶과 닮은 울림 있는 노래들

새로운 녹음 작업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노래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만취한 상태로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1990년 11월 1일 오후 5시 20분 동부 이촌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나이 서른둘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의 죽음치고는 너무도 허망했고, 너무도 이른 죽음이었다. 그가 생을 마감한 두 달 후에, 미완으로 남겨진 녹음들을 모아 발표된 유작앨범 6집 'Kim Hyun Sik Vol.6'(1991)은 '내 사랑 내 곁에'의 간절한 음악적 유언에 힘입어 1991년 내내 차트 톱을 지키며 200만 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한다. 3년 전 1987년 11월 1일, 유재하를 먼저 떠나보낸 후 시작된 간경화 투병 생활. 3년 후 같은 날에 유재하를 따라 떠난 그의 유작앨범이 김현식 최대 히트작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바통은 '서태지'라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넘어가면서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전성시대를 마감하게 된다.

김현식이 생전에 내놓은 음반은 5장이 전부이고, 거기에 그가 참여한 '신촌블루스' 음반을 합치고, 여타 비정규 음반까지 다 합쳐도 10장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사후 발매된 6집과 96년 7집이란 타이틀로 나온 'Self Portrait'(1996) 그리고, 생전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녹음한 신곡과 미발표 데모 21곡을 담은 '2013년 10월'(2013)을 포함해서 그렇다. 그리 많은 양이 아닌 그의 음악에 지금까지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그의 목소리에 담긴 풍부한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역동적이고 강렬한 창법을 구사하여 청자를 압도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의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감성적인 창법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도 한다. 이런 마력이 그의 음악에서 더러 발견되는 멜로디의 진부함마저 상쇄시킨다. 불꽃같이 살다 간 김현식의 노래는 결국 삶과 닮아 있었다. 삶과 닮은 노래가 가장 큰 울림을 전달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채워주던 그의 노래가 있었다.

최성철·페이퍼 크리에이티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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