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노래, 둘 다 어려워요. 그런데 할수록 재미있어요."

상큼한 외모, 여성들의 워너비 몸매, 발랄한 분위기, 군더더기 없는 안무와 노래…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배우 손나은을 말하면 '발랄한 분위기' 외엔 크게 연상되는 것이 없다. 아직 가수에 비해 연기자로서의 커리어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드라마에서 역할이 비슷했던 측면도 있다.

그랬던 손나은이 영화 '여곡성'을 통해 완전히 색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32년 전 동명의 고전 걸작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원인 모를 기이한 죽음이 이어지는 한 저택에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된 옥분(손나은)과 비밀을 간직한 신씨 부인(서영희)이 집안의 상상할 수 없는 서늘한 진실과 마주하는 미스터리 호러물.

옥분에게선 기존의 에이핑크 손나은이 가졌던 상큼·발랄한 이미지는 '1도 없다'. 반대로 욕망에 가득찬 여인네로 완전히 달라졌다. 쉽지 않은 연기지만 나름 성공적으로 한 발짝 내딛은 손나은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공포물은 마니악한 장르다. 특히 한국에서는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 비주류로 분류된다.

"원래 공포나 스릴러 장르를 좋아해요. 예전부터 '주온', '여고괴담', '령', '샴' 같은 작품 비디오로 빌려봤죠. '컨저링' 시리즈도 다 봐서 '애나벨'까지도 챙겨봤어요. 아주 어릴때는 뭣도 모르고 '전설의 고향'도 봤어요. 특히 워낙 유명한 '내 다리 내놔~' 이 장면을 그땐 이해도 못하면서 그냥 무서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보고 나면 잠 못자고, 땀 흘리고, 심지어 엘레베이터도 못타요. 그런데 봐요. 손으로 눈 가리면서 살짝 틈을 내고 봐요. 하하."

Q. '여곡성'은 고전 명작 리메이크다. 출연을 결정하기에 부담이 크지 않았나.

"사극도 좋아해요. 게다가 '여곡성'은 제겐 생소한 작품인데, 오히려 그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공포물과 사극의 팬으로서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연기를 하면 예쁜 모습을 벗어 던질 수 있잖아요. 어색할 수 있지만 연기에 집중 가능하니까. 막상 나온거 보니 제가 좀 동글동글한 상이라 괜찮은 것 같아요. 화장도 거의 안 하거나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해서 새로운 모습 보여드린 것 같기도 해요."

Q. 옥분은 서씨 부인과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영화 첫 주연을 맡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텐데.

"드라마에서도 주연은 해본 적 없어요. 때문에 극을 이끌어가야한다는 부담감이 없던 건 아니죠. 누가 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난감하기도 하고요. 책임감도 들고. 그런데 여기서 저 빼곤 다 선배님들이시잖아요. 사실 그런 환경이 더 익숙하거든요.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에서도 그랬고. 막내다보니 오히려 의지할 수 있어서 출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서영희 선배 계셔서 안정감이 들었죠. 그 분들이 잡아주셔서 잘 할 수 있었어요."

Q. 옥분은 천애고아 출신인데 나중에는 유서 깊은 가문의 안주인이 되고자하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특히 모성애까지 같이 표현해야해서 복잡한 인물 연구가 필요했을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했던 사람이 아이를 갖게 되고, 사람들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모성애가 폭발하고 그게 욕망으로 변질돼요. 게다가 저주까지 더해지며 캐릭터가 변해가죠. 그런데 그건 사실 다 살기 위한 선택이거든요. 그래서 옥분은 어떻게 보면 비운의 인물이에요. 이 중에서 임신과 모성애 연기가 어려웠어요. 경험해보질 못한 거니까. 그래서 엄마나 주변의 아이가진 분들의 도움을 얻어 감정 대입을 해보면서 옥분을 준비했어요."

Q. 한겨울 산 속에서 촬영했다. 무시무시한 추위와도 싸우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

"촬영 장소가 하동이었어요. 진짜 추웠지만 한복이 품이 넉넉하잖아요. 엄청 많이 껴 입었어요. 그래도 태가 안 나니까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고요. 다만 첫날밤 장면에서 누워있는 모습이 좀 뻣뻣하게 보여 아쉬워요. 그런데 그곳이 문화재다보니 난방시설이 전혀 없었어요. 대본도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고. 그래서 좀 불편했던게 화면으로 나온 것 같아서 죄송스러워요. 다만 그런 환경에 산 속이다보니 스산한 분위기는 잘 산 것 같아요."

Q. 오히려 추위와 싸우는 것이 즐거웠던 느낌이다. 그러면 촬영 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나.

"마지막 액션 장면이 힘들었어요. 조명도 어두운 빨간색이라 잘 안 보이기도 했지만 그곳 바닥이 물로 차 있거든요. 게다가 한복을 입고 있으니 옷들이 젖으면 체력 문제까지 겹쳐요. 그래서 안에 다이빙슈트까지 입긴 했는데 그 안까지 물이 들어가요. 이때가 가장 추웠어요."

Q. 그 장면에선 액션까지 선보였는데 어땠나, 에이핑크 안무보다 수월하던가?

"하하. 안무는 워낙 익숙해서 적당히 요령이 생겨서 그런지 액션이 훨씬 어려워요. 그래도 몸쓰는 연기는 꼭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여곡성' 준비하면서 액션스쿨도 갔었어요. 제가 실제로 싸움을 안 해봤잖아요. 그런데 연기로 해보니 카타르시스가 있더라고요. 주먹질, 낙법, 업어치기도 배우고요. 그런데 멤버 언니들이 격투기 유단자라 연습해보진 못했어요. 너무나 강력한 언니들이라. 하하."

Q. 그러면 아쉬운 장면을 꼽아보자면.

"적외선 촬영이요. 정말 숨 꼭 참고 있었는데 적외선이라 그런지 표정이 섬세하게 안 나오더라고요. 빛이 전혀 없으니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래서 인기척만으로 연기했어요. 동선만 맞추고 시작하면서 숨소리 느끼면서 해보니 신기하긴 했어요. 특히 사극에서 찾아보기 힘든 부분이라 아쉽긴 하지만 새로운 장면으로 관객들께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손나은을 영화에서 만나서 반갑긴 하지만 원래 드라마도 여러차례 출연한 경력이 있다. 원래 연기에 뜻이 있었나.

"연습생 생활 때 가수 말고 연기자 연습생으로보 보내졌어요. 내가 감히 할 수 있을까 했었는데 레슨 받으니까 재미있더라고요. 뮤직비디오 몇 번 출연하니까 느낌도 좋았고요. 그러다 다시 가수로 와서 에이핑크 데뷔했는데, 사무실에서 '그래도 배운 것이 있으니 연기도 해보는게 어떻겠냐' 제의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기회가 와서 하게 됐죠. 사실 예전에 '가문의 기억'에 출연한 적 있어요. 그때가 첫 스크린 도전이었지만 분량이 많질 않아서…이후로도 영화 제의가 몇 번 들어오긴 했어요. 그런데 에이핑크 그룹 활동하고 겹쳐서 전부 무산 됐었죠. 그러던 와중에 여곡성 시나리오를 만났어요. 작년 여름이었는데, 마침 앨범 활동 직후라 다행히 시간이 있어서 욕심을 냈죠."

Q. 특이하게 에이핑크 멤버 중 두 명이 공포영화로 첫 스크린 주연 데뷔를 한다.

"하하. (정)은지 언니가 '0.0mhz'로 관객분들을 만날텐데요. 사실 촬영은 여곡성이 먼저였어요. 저는 겨울, 언니는 여름. 그런데 서로 조언 같은 건 안 해줘요. 아니 못 해주는 거죠. 다만 모니터 해주고 격려 전하고. 그냥 다른 계절에 촬영해서 서로 위로도 해주고요."

Q. 다른 멤버들도 연기하지 않나. 서로 모니터 하면 무슨 이야기 하나.

"초롱 언니도 영화 있고, 보미 언니는 드라마 촬영하고 있고요. 아마 저 다음으로 보미 언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하영이가 찍은 웹드라마가 영화화되서 보러갔어요. 관람 후에 '어떤 신 재미있었어' 이런 이야기 하는데, 평소의 하영이 모습을 알잖아요. 그런데 애교 부리는 연기가 너무 웃겨서 놀리고 했었어요."

Q. 연기와 노래 뭐가 더 어렵고 재미있나.

"가장 어려운 질문이에요. 질문 그대로, 둘 다 하면 할 수록 어렵고 재미있어요. 그나마 가수활동은 조금 익숙해져 여유가 약간 있지만 연기는 그렇지 못하다는 차이가 있어요. 부족한 것 많고 경력도 계속 쌓아나가야죠."

Q. 해보고 싶은 연기 있나.

"사실 '딱 이거다' 싶은 건 아니에요. 저는 지금 영화 막 시작했기 때문에 기회만 되면 뭐든지 해보고 싶거든요. 드라마도 상관 없이 다양한 포맷에서 장르로 인사드리고 싶어요. 그래도 통통 튀는 에이핑크를 생각해보면 어둡고 암울한 캐릭터가 궁금하기는 해요."

Q. 가수로서 배우로서 바쁘게 지내고 있다. 힘들 법도 한데 그런 와중에 손나은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에이핑크로 데뷔했을 때는 시작하는 단계여서 돌아볼 여유도 없고 회사에서 시키는대로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 찍으면서 정말 어느 순간 갑자기 행복을 느꼈어요. 서로를 아껴주는 사람들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 순간이 너무 벅차오르더라고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요. 그때 날씨가 너무 좋아 살짝 감성적이었던 건 인정할게요. 하하.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속 일하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김상혁 기자 sunny10@

사진=스마일이엔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