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평상심과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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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섭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1914년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8월 2일.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오후에는 수영 강습.” 일곱 살 아들 녀석도 요즘 저런 식으로 일기를 쓴다. “오늘은 날씨가 흐렸다. 새 신발을 샀다.” 인과관계가 희박한 문장을 나열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프카와 아들 녀석의 일기는 닮았다.

평상심은 경중 따질 수 있는 균형감각

무관심은 기계로서의 삶에 더 가까워

인간의 존엄 위해 균형감각 회복해야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아들 녀석의 일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일기 쓰기가 싫다는 것이다. 유치원 과제라서 그럴 것이다. 무릇 과제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의무로 주어진 일이 흥미로운 경우는 드물다. 카프카의 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수영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30대가 되어서야 배우기 시작한 수영에 흠뻑 빠졌던 모양이다. 유럽을 피비린내로 물들인 잔혹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수영 강습을 거르지 않는다.

카프카의 짤막한 일기에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카프카가 고도의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수영을 좋아하더라도 세계 대전이 벌어진 마당에 태평하게 수영을 배우러 갈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철학자 페터 비에리는 〈삶의 격〉이라는 책에서 카프카의 행동에서 평상심을 발견한다. 전쟁통에 수영을 배우러 가는 것이 터무니없게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가느냐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페터 비에리는 일기 속 두 문장을 통해 카프카의 내면을 추론해본다. 수영 강습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식했지만, 그러한 사실이 수영할 때 느끼는 여러 감정마저 없애버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곧 카프카는 수영 강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수영할 때 느끼는 감정들은 차단된다. 그리하여 강습 결과가 좋든 나쁘든 개의치 않는 침착한 상태에 이른다. 그렇게 도달한 침착한 상태를 페터 비에리는 평상심을 유지하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페터 비에리는 평상심과 무관심을 구별한다. 무신경이나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침착함은 어떤 대상도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반면 평상심은 일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는 균형감각이 바탕을 이룬다. 사건의 경중을 따질 수 있다고 해서 더 중한 것만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 놓여 있는 일보다 더 중대한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목전에 놓인 일 또한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페터 비에리는 균형감각을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일의 노예가 되지 않고도 그것에 진심을 다할 수 있는 능력, 즉 깊은 감정을 경험하지만 그 일이 가진 의미를 무한대로 키우지 않고 어느 일정 선에서 그치게 하는 능력.” 카프카는 수영을 좋아했지만 수영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다. 수영 강습에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이 전쟁보다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전쟁과 수영은 일기에 나란히 놓일 수 있었다.

지난 몇 달간 ‘다들 미쳐버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미쳤다는 것은 곧 균형감각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일 터이다. 조국 전 장관이 사퇴하기까지 언론과 검찰은 사소한 일을 중대한 일인 양 부풀렸다. 표창장 위조를 반란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갔다. 지난 몇 달 동안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언론 기사에 ‘위기, 붕괴, 폭탄’과 같은 말이 빠지지 않게 되었다. 경제는 항상 위기이고, 외교는 늘 붕괴 상태이며, 세금은 언제나 폭탄이다. 기사만 보면 지구의 종말이 멀지 않은 성싶다. 언론과 SNS를 모두 끊고 무관심으로 대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의 삶에 가깝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균형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기계적 균형이 아니라 우열과 경중을 가리는 균형감각을 바탕 삼아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페터 비에리의 말을 따르자면, 사소한 일 뒤에 숨은 중대한 의미를 찾아내고 사소한 일 자체는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들 녀석이 일기 쓰기를 싫어하거나 일기에 두 문장만을 적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사소한 일일 뿐이다. 새 신발을 사준 것이 아빠라는 사실은 잊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녀석의 일기에 담긴 중대한 의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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