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해녀… 옛 영도 이야기 음식에 담았어요"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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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민 (주)키친파이브 대표

조내기 고구마로 만든 크로켓, 봉래산 자락에서 뜯어내 무친 야채 샐러드, 파래와 감태가루를 버무린 멸치 주먹밥, 북어 보푸라기를 활용한 곤드레 주먹밥까지.

동글동글하게 빚어진 음식들이 동그란 바구니에 옹기종기 담겨 내어졌다.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오롯이 부산 영도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영도 사람들의 구황작물이었던 재료들이 ‘영도소반’이라는 이름의 한식 브런치 메뉴로 재탄생했다.


폐공장 개조 복합공간 '무명일기'로

'구황 작물'로 만든 한식·공연 선보여

"지역 가치 녹여낸 로컬푸드 만들 것"


영도소반은 영도구 복합문화공간 ‘무명일기’에서 맛볼 수 있다. (주)키친파이브의 오재민(39) 대표가 지난해부터 운영 중인 공간이다.

1959년 부두창고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영도 조선산업의 흥망성쇠를 따라 조선공업소 등으로 변모했지만, 최근에는 폐공장으로 방치됐다. 오 대표는 이곳을 임차해 식음료를 판매하고 생활소품을 전시하며 각종 공연을 개최하는 복합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영도소반은 부산관광공사가 지원하는 로컬푸드 관광 콘텐츠 공모사업을 통해 탄생하게 됐다. 오 대표는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해주는 영도의 옛날 이야기를 음식에 담아보고 싶었다”며 “음식을 통해 세대가 교류하고, 문화와 이야기가 전승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고구마의 국내 최초 재배지가 영도였다는 사실이나, 제주도에 살던 해녀들이 굴곡진 근현대사를 따라 영도에 정착하게 된 사연 등 영도라는 공간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이를 영도소반에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문가가 영도 일대를 동행하며 역사 체험을 하고, 영도소반으로 식사를 하는 관광 체험 프로그램도 기획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실행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영도소반 자체에 대한 관심도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고객들의 스펙트럼도 20~60대로 굉장히 넓은 편이다.

포장 주문을 하는 고객도 많아 준비된 물량이 소진되는 날도 있다. 키친파이브 김미연(34) 디자인팀장은 “흰여울문화마을, 태종대, 해양박물관 등 영도에는 훌륭한 나들이 코스가 많아 영도소반의 활용성이 높다”며 “지역문화와 음식이 결합된, 매력적인 관광 상품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무명일기라는 공간은 ‘정해지지 않은 일상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누군가에게는 카페, 누군가에게는 생활문화상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연장으로 기억될 수 있게 다양한 교류의 장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대기표를 뽑아가며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인스타 맛집이 되기보다는, 지역민의 삶 속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오랜 공간으로 남고 싶다”며 “영도소반을 필두로 이 같은 가치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로컬푸드를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사진=정대현 기자 jhyun@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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