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고양이] 길에서 태어난 게 죄일까? ‘미운털’ 길고양이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장은미 기자 mi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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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태어나 도시 생태계 일원 된 ‘길고양이’
과거 ‘도둑고양이’ 꼬리표 뗐지만 미움은 여전
동물보호법 보호 대상이나 혐오 범죄 잇따라
길고양이 챙기는 캣맘·캣대디 혐오로도 번져

*'편집국 고양이-동물동락 프로젝트'는 <부산일보> 4층 편집국에 둥지를 튼 구조묘 '우주'와 '부루'를 통해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그리는 기획보도입니다. 우주와 부루의 성장기를 시작으로 동물복지 현안과 동물권 전반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길고양이. 이미지 투데이 길고양이. 이미지 투데이

길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이미 도시 생태계의 일원이 된 ‘길고양이’. 과거엔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둑’ 꼬리표는 뗐지만, 여전히 길고양이에 대한 혐오는 뿌리 깊은데요. 어느 순간부터는 길고양이를 보호하는 ‘캣맘’과 ‘캣대디’에 대한 혐오로 번지고 있습니다.

최근 부산 해운대구 A아파트 단지에서는 길고양이 혐오 범죄로 추정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수년째 고양이가 죽은 채로 발견되고 있는 겁니다. 동물자유연대와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등에 따르면 A아파트에서 올해만 4마리의 고양이가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지난해에는 10마리, 그 전년도에는 8마리가 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최근 해운대경찰서의 수사에 따르면, 이 고양이 사체에서 ‘쥐약’이 검출됐습니다. A아파트 주민 일부는 아파트 근처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챙겨주기도 했는데요. 누군가 길고양이와 캣맘‧캣대디에 불만을 품고, 먹이에 쥐약을 탄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올 3월 부산 해운대구 A아파트 단지에서 발견된 고양이 사체. 동물자유연대 제공 올 3월 부산 해운대구 A아파트 단지에서 발견된 고양이 사체. 동물자유연대 제공

혐오 범죄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경남 김해시에서는 장기가 진열되듯 널브러진 채로 죽은 고양이가 발견됐고, 같은 해 7월 부산 해운대구에서는 생후 1개월 된 고양이가 토막 난 채로 목격됐습니다. 같은 달 부산 강서구에는 주택가 담벼락에 목이 묶인 채로 숨진 고양이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범위를 전국구로 넓히면, 길고양이 학대 사건은 하루가 멀다고 잇따르고 있습니다.

길고양이를 향한 미움은 캣맘‧캣대디에게 불똥이 튀기도 합니다.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한 아파트에서 12년째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는 J 씨. J 씨는 아파트 주민의 양해를 얻어 화단에 사료 그릇을 놓고 고양이 밥을 챙겨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아파트 위원장이 바뀐 뒤부터 주민의 시선이 싸늘해져 갔습니다. 한 이웃은 J 씨에게 “쥐약을 넣어 고양이들을 죽여버리겠다”며 폭언·협박을 하고, 어떤 이웃은 J 씨가 설치해둔 고양이 쉼터를 팽개쳐 버리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이름 모를 이웃으로부터 협박성 편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길고양이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면, J 씨에게 모든 피해 보상을 청구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웃들과의 갈등이 극에 치닫자 J 씨는 고양이 안전을 위해서라도 급식소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아파트 건너 초등학교 담벼락 부근으로 옮겼지만, 이곳에서도 눈총을 받아야 했습니다. J 씨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나는 ‘죄인’”이라면서 “하지만 내가 밥을 안 주면 굶어 죽는 걸 아니까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합니다.

J 씨가 관리하던 길고양이 쉼터와 급식소가 어느날 내팽개쳐진 모습입니다. J 씨 제공 J 씨가 관리하던 길고양이 쉼터와 급식소가 어느날 내팽개쳐진 모습입니다. J 씨 제공

길고양이들은 어쩌다 이런 미움을 사게 됐을까요. 미워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울음이 소름 끼친다, 눈이 무섭다, 아무 데나 대소변을 한다, 차를 훼손한다, 쓰레기통을 뒤진다 등등.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이들은 캣맘과 캣대디들 때문에 고양이들이 모여들고 번식한다며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물론 사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료나 그릇, 쉼터를 훼손할 경우 재물 손괴죄나 절도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길고양이 밥 주는 문제로 이웃 간에 무수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캣맘·캣대디들은 ‘집에 데려 가서 키우라’라는 말도 심심찮게 듣는데요. 그 많은 아이를 집에서 보호할 수도 없을 뿐더러, 길에서 자생하며 야생성을 가진 고양이들에겐 길 위가 자신들의 영역입니다. 길고양이 보호단체들은 영역 동물인 고양이들이 자신의 영역인 길 위에서 안전한 삶을 이어가도록 돕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다가 유기됐거나, 어미를 잃은 새끼고양이거나, 사고나 질병으로 길 생활이 어려워진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이 때문에 지자체에서도 중성화 수술 후 방사하는 ‘중성화 사업(TNR) 방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부산 한 길거리에 붙은 팻말. 캣맘·캣대디를 향한 섬뜩한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산길고양이보호연대 제공 부산 한 길거리에 붙은 팻말. 캣맘·캣대디를 향한 섬뜩한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산길고양이보호연대 제공

길고양이가 밉다는 이유로 해를 가하거나 학대할 경우, 동물보호법 제8조 1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요. 길고양이 혐오 범죄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더라도, 제대로 수사조차 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대부분 사건은 학대범을 잡지 못한 채 수사가 종결되곤 합니다.

수많은 동물 학대 사건을 고발한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김애라 대표는 “사람이 아니고 동물 사건이다 보니 사건을 받아주지 않거나, 받더라도 수사할 의지가 없어 보일 때가 많다”고 꼬집었습니다. 동물보호단체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부산경찰청 한 관계자는 “동물학대 사건도 똑같은 절차에 의해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이 한정돼 있고 사건·사고가 많다 보니 사람과 관련한 사건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미움의 감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생태계 일원이 된 길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겠지요. 길고양이와의 공존의 방법으로는 ‘길고양이 급식소’와 ‘TNR’이 대표적인데요.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편집국 고양이 소식 전해드립니다. 부루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행히 난치성 질환인 ‘낙엽천포창’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비만세포종’이라는 결과를 받았는데요. 고양이에게 찾아오는 ‘피부암’이라고도 불리는데, 다행히 악성이 아닌 '양성 종양'이라고 합니다. 부루의 경우엔 비만세포종의 보편적인 증상과 다른 데다, 증상이 온몸에 퍼져 있다고 하는데요. 부루가 긴 입원에 지친만큼, 통원하며 약물 치료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상태가 점점 괜찮아 지고 있어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그동안 부루 소식을 전해드리느라 우주 소식은 뜸했는데요. 부루가 병원에 입원한 사이 우주는 편집국 집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윙크 냥이’ 우주의 애교 대방출 영상도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부루가 병원에 입원한 사이 우주는 편집국에서 집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서유리 기자 부루가 병원에 입원한 사이 우주는 편집국에서 집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서유리 기자

※'편집국 고양이' 우주와 부루의 일상은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영상·편집=장은미 에디터 mimi@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장은미 기자 mi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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