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김진숙 “오늘 하루가 제겐 그토록 사무치던 37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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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앞에서 단식을 해도, 애원을 해도, 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오늘에서야 열렸습니다. 그 사무치던 날들로부터 37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하루가 저에겐 37년입니다.“

지난 25일 오전 11시께 부산 영도구 HJ중공업 영도조선소 단결의 광장에서 단상에 올라 복직 소감을 밝히던 김진숙(61)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이날 현장에는 김 위원의 명예복직과 퇴직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에서 300여 명이 모였다.

앞서 23일 HJ중공업과 금속노조는 김 위원의 즉각적인 명예 복직과 퇴직에 합의했다. 1986년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복직 투쟁을 벌인 지 37년 만이다. 김 위원은 이날 복직해 영도조선소로 다시 출근할 수 있었고, 곧바로 퇴직하며 영도조선소에서 마지막으로 ‘퇴근’했다.

1986년 해고 뒤 노동운동 투신
25일 명예복직 및 퇴직 행사 가져
박창수·김주익·곽재규·최강서
세상 떠난 동료들 호명하며 울먹
노동계 인사·시민들 축하와 지지

단상에 오른 김 위원은 “김진숙 한 사람의 복직이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과 산재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과제”라며 “박창수 지회장이 입고 끌려갔던 옷,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마지막까지 입었던 작업복, 곽재규가 독 바닥에 뛰어내릴 때 입고 갔던 그 작업복, 최강서의 시신에 입혀졌던 그 작업복은,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이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미래로 가십쇼”라고 떨린 목소리로 소회를 전했다. 김 위원이 함께 노동운동을 벌이다가 세상을 떠난 동료 노동자의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떨림은 더 커졌다.

김 위원은 시행 한 달을 맞은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하루에 6명의 노동자를 죽이는 기업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 맺힌 유족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 위원의 복직 운동을 펼쳐온 단체 ‘리멤버 희망버스’가 기획한 희망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한 35명도 이날 현장을 찾았다. 희망버스를 타고 온 작가 은유는 “2020년 김 위원을 인터뷰하며 복직을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며 “노동자의 존엄과 삶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싸워 온 김 위원에게 축하와 온기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와 참석한 김영글(41) 씨도 “2011년 희망버스에도 오르며 김 위원의 복직 투쟁에 연대해왔다”며 “역사적인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 송경동 시인 등 오랫동안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과 김 위원의 복직 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단상에 올라 축하와 그동안의 소회를 전했다. HJ중공업 홍문기 대표도 축사를 읽었다.

노동계 인사와 시민들도 축하의 뜻을 전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부산경남지역본부 이재동 본부장은 “김 위원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투쟁 현장에서 연대의 손을 내밀어 주었다”며 “복직을 이룬 김 위원에게 고마움과 축하를 전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날 복직 행사가 마무리되고 난 후 영도조선소 앞에 600여 일간 설치돼있던 농성용 천막과 선전물도 철거됐다. HJ중공업 정철상 상무는 “노사 상호 양보와 이해의 의미에서 영도조선소 앞을 정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혜림·김동우 기자 hyerim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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