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지식인들이 대학 안으로 몽땅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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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지식인/러셀 저코비

인간은 필연적으로 무리를 이룬다. 무리 짓는 인간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업, 군대 등 다양한 조직에 속해 살아간다. 무리나 조직은 수많은 인간 다양성의 총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리와 조직의 정체성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무리와 조직의 작동 방식은 누가, 어떤 수단을 동원해 결정하는 것일까. 인류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진화했다. 무리와 조직의 모습과 목적 등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그렇게 흘러온 인류는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2022년 4월을 살고 있다. 인류는 또 흘러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작동해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역사 속 수많은 지식인들을 떠올린다. 불의에 맞서 할 말을 하고, 불합리한 조직 작동 방식에 반발해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던 지식인들을 인류의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사회 공론에 영향 준 지식인의 부재 추적
요즘 지식인들 대학 교수직에 ‘몸부림’
대중과 소통 느슨·공공 문화 활력 저하
팬데믹 시대, 지식인 역할 절실히 요구돼

은 막중한 역할을 하던 지식인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사라진 배경을 치밀하게 추적한다. 특히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저술된 이 책은 공공 지식인에 초점을 맞춘다. 공공 지식인은 교양 있는 대중을 향해,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발언함으로써 단지 자기 전문 학문분야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 공론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지식인을 의미한다. 고전적 미국 지식인들은 저서, 리뷰, 저널리즘을 통해 사회 공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지식인은 전혀 없거나 드물었고, 박사학위 논문도 쓰지 않았다. 그들이 작성한 글은 언제나 한층 폭넓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 이 책은 1997년에 초판이 출간됐다. 하지만 한국어판이 출간된 2022년 현재도 공공 지식인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더욱이 미국 사회의 이런 병폐는 한국사회에 고스란히 재현됐다.

‘교양 있는 성인 미국인이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나 철학자의 이름을 한 명도 대기 어려워하는 것을 순전히 그들의 잘못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전문가들이 공론장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교(UCLA) 역사학 명예교수이자 학술·문화비평가인 러셀 저코비는 지식인, 그중에서도 젊은 지식인 세대가 실종됐다고 지적한다. ‘젊은 지식인들은 대중을 더이상 원치 않는다. 그들은 거의 전부가 대학 교수다. 캠퍼스가 그들의 집이고, 동료들이 그의 독자다. 논문과 전문 학술지가 그들의 미디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젊은 지식인들의 입장에서는 이전 세대처럼 글을 쓰며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기고할 신문과 잡지의 수가 꾸준히 감소했고, 대학은 그들을 끊임없이 유혹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고등교육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지식인들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대학의 교수직으로 옮겨갔다. 지식인들은 이렇게 대학 안으로 사라져버렸고 대중과 더이상 접촉하지 않았다. 지난날의 지식인이 대중을 위해 집필했다면, 오늘날의 지식인은 대학에서 정년 교수직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공공 지식인에서 대학 교수로의 변신은 공공 문화의 활력을 저하시켰다. 대학 교수는 더 배타적으로 변화했고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상황이 이러하다면 현재 한국은 어떨까. ‘지식인의 제도권화, 학술화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한층 더 심화되었다. 한국의 경우 1970년대까지는 엄혹한 식민과 독재에 저항하는 ‘지사적 지식인’이, 1980년대부터는 노동자, 농민, 빈민 운동에 투신하는 ‘참여적 지식인’이 존재했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는 지식인들이 대학과 정부 등 제도권으로 대거 흡수됐다.’ 한국은 20여 년의 차이를 두고 미국이 걸었던 길을 답습했다는 게 역자 유나영의 지적이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 전쟁 등 지구적 위기들은 공공 지식인의 재등장과 제대로 된 역할 수행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한다. 이 책은 대중에 침묵하는 지식인들에게 대중적 언어를 되찾고 공공의 역할을 수행하라고 촉구하는 일종의 호소문이기도 하다. 러셀 저코비 지음/유나영 옮김/교유서가/384쪽/2만 4000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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