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오문비’ 폐간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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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비평계간지 (이하 ) 폐간 해프닝이 벌어졌다.

계간지 124호는 31년 세월에 맞먹는 호수다. 최근 출간된 2022년 봄호(124호)는 머리글에서 “이번 호를 끝으로 휴간 체제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통상 휴간은 폐간으로 해석된다. ‘휴간’ 운운의 이유는 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두 곳에서 2022년 발간비 지원을 일절 못 받았기 때문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이없는 일이다. 지원을 못 받은 데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해당 편집위원 체제에 있다.

‘반쪽짜리’ 봄호 끝으로 휴간
작년 지원금 정산 기간 넘기고
서류 누락 탓 올해 지원 못 받아
여름호 쉬고 가을호 발간 예정

먼저 부산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못 받은 이유는 발간과 ‘창간 30주년 행사’에 대한 2021년 지원금 1800만 원을 소모한 뒤 정해진 기간 안에 정산을 완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산문화재단 관계자는 “ 측에 3번 이상 정산을 독촉했다”고 밝혔다. 정산을 하지 못하면 다음 해 지원금 신청이 원천적으로 불가하다. 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못 받은 이유는 ‘필수제출서류 누락으로 행정결격 처리’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에서는 1600만 원을 지원 받았다.

정산을 못하고 서류가 누락돼 31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발간을 이어온 계간지를 못 낸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얘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초유의 사태 속에서 124호는 원래 계획했던 25편 원고에서 무려 10편이 빠진 ‘반쪽짜리’로 나왔다. 124호 발간을 끝으로 김필남 편집주간을 비롯한 기존 편집위원 체제의 7명 전원은 사퇴했다.

이들이 봄호를 내고 전원 사퇴할 거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올 초였다. 남송우 발행인은 “폐간은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으나 일단 휴간하기로 당시 정했다”고 했다. 그 상태에서 ‘휴간 체제’ ‘좌절’ ‘불명확한 미래’ 운운하는 머리글이 나온 것이다. 그 머리글은 책이 나오자마자 지역 문학판에서 ‘의 폐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중도에 사태의 향방이 바뀌었다. 이전에 3세대 편집주간을 맡았던 문학평론가 하상일 동의대 교수가 “폐간은 안 된다”며 “다시 편집주간을 맡아 를 정상화하겠다”고 남송우 발행인에게 밝혀왔다. 김경연 부산대 교수, 조정민 부경대 교수도 편집위원으로 합류하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 는 3인 편집위원 ‘비상 체제’로 여름호를 건너뛰고, 가을에 ‘여름/가을 합본호’를 내면서 계속 발간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반쪽짜리 124호 발간과 편집위원 전원 사퇴, 여름호 결호 등 31년 의 초유 사태는 왜 일어난 것일까. 시대 변화 속에서 문학의 위상과 제반 상황도 변화하고 있으며, 편집위원들의 열의도 달라졌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저마다의 다양한 생각과 인정 욕망, 그리고 지역문학을 위한 재능기부 속에 내연하는 갈등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잡지 발간으로 수렴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편집장 사건’으로 지쳐있고, 학위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부담과 강사 등의 불안정한 신분 탓에 전념이 힘들다는 사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소홀로 지원을 못 받게 되었고, ‘폐간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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