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세기 동아시아에서는 ‘일체화’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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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명청/미야지마 히로시·기시모토 미오

이번 주에는 2014년에 출간된 이라는 역사책을 소개한다. ‘현재를 보는 역사’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라는 곁 제목대로 역사적 시각의 시공간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한국사 연구자인 미야지마 히로시와 중국사 연구자인 기시모토 미오가 함께 쓴 것이다.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를 따로 떼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한·중사를 중심으로 일본사를 접속시킨 동아시아적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 당대 세계사에서 동아시아가 문제적이라면 바로 이 책에서 서술한 14~19세기에 그 뿌리가 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고전적 저작 에서 세계 경제는 1500~1800년 적어도 3세기 이상 아시아인이 지배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 세기가 조선과 명·청의 시대였으며 이 책이 서술하는 그 시대인 것이다.

농업 생산력 발전 따른 소농 사회 기반
당대 동아시아 국제 교역 붐으로 분주
신흥세력도 등장… ‘일국’ 관점 흔들어
한·중사에 일본사 접속 ‘동아시아 읽기’


조선 왕조는 대단한 자신감으로 시작했다. 1402년 태종 2년에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10~14세기 진전된 동아시아 세계교류와 송대의 생활·문화혁명의 성과를 집약한 것이었다. 그 한 장의 지도는 15세기 조선이 세계문명의 정점에 서 있었다는 것의 표현이다. 신숙주의 , 송희경의 도 15세기 조선의 자신감 넘치는 국제적 시야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한 수준의 집약이 세종대의 문화였고, 한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한글 창제는 16세기 조선의 계몽시대를 낳는다.

이 책은 16~17세기에 동아시아의 일체화가 획기적으로 진행됐다고 본다. 그 기반은 농업 생산력 발전에 따른 소농사회 형성이었다. 당대 동아시아는 국제 교역 붐으로 부글부글 들끓었다.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가 아시아 바다에 등장했고, 그 자극 속에서 1570~1630년대는 동남아시아 국가 형성 시대였다. 중국 변경도 뜨거웠는데 대(大)해적 왕직을 비롯한 ‘16세기 왜구’가 등장했고, 17세기 들어 요동에 이성량 군단, 바다에는 정지룡 선단이 신흥세력으로 부상했다. 동아시아적 판도에서 보면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도 16~17세기 뜨거운 변경의 신흥세력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새 왕조를 세운 신흥세력은 만주의 여진족이었다. 명나라가 청나라로 교체된 것을 ‘화이변태(華夷變態)’라고 했다. 화이변태가 정착한 것은 1680년대였다. 청이 정씨 세력의 항복으로 대만을 병합해 반세기 이상 지속된 건국 과도기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때였다. 그 과도기의 혼란 속에서 조선은 소중화 노선을 택한다. 1623년 인조 쿠데타가 있었고, 오늘 한국사회로 이어진 이른바 ‘전통’도 형성되는데 쌍계 친족에서 부계 혈연 중심으로 친족제도가 변화했다.

영·정조의 개혁이 좌절하고, 실학의 대두와 그 한계, 천주교 수용과 박해 속에서 19세기 조선에서는 민란의 시대가 도래하고, 신분제가 동요한다. 동학농민운동이 분출한 것이 이 시대였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일본에 견줄 때 한국은 평등의식이 훨씬 강하다”며 “노무현·이명박 두 대통령은 중류 이하 가정 출신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는 한국사회의 평등의식적 기반은 조선 후기 신분제 동요, 족보 편찬의 보급 확대와 깊이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일국의 관점을 흔든다. 중국은 주변을 계속 흡수해왔으며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관점을 달리 하면 중국은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 여진 몽골 티베트 위구르 조선족이 뒤섞인 나라라는 것이다. 특히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한 여진은 이전에 말갈로 불렸는데 말갈은 고구려와 발해의 주민이었다. 또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매우 유연한 아이덴티티를 지녔는데 본국 대 해외의 인구 비율을 따질 때 세계 최대의 이민국이 한국이라는 거다.

16~17세기를 지나면서 동아시아 각 나라는 폐쇄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19~20세기에 큰 혼란을 겪고, 이른바 근대 국민국가를 만들었다. 20세기 말 국경은 강화되고 있으나 그 반대로 ‘국경 없애기’ ‘국경 넘어서기’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국 내에서 다양한 로컬이 생기고, 그 로컬이 경계를 넘어 서로 교류하는 다양성의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15~16세기에 이미 그러하였던 바 이제 그런 역사적 사실 하나하나에 눈길도 돌리고 있다. 동아시아가 따로, 같이, 화이부동의 세계를 열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히로시·기시모토 미오 지음/김현영·문순실 옮김/너머북스/567쪽/2만 7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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