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거제 바다로 ‘유학’ 떠난 기자와 PD들 #8-2
※‘부산숨비’는 제주도 밖 육지 해녀의 대명사인 부산 해녀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부산은 제주도 해녀들이 처음 출향 물질을 하며 정착한 곳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60대 미만 부산 해녀는 20명 남았습니다. 인터뷰와 사료 발굴 등을 통해 사라져가는 부산 해녀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물질에 동행해 ‘그들이 사는 세상’도 생생히 전달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해녀보다 관심이 적은 육지 해녀가 주목받는 계기로도 삼으려 합니다. 이번 기획 보도는 〈부산일보〉 지면, 온라인, 유튜브 채널 ‘부산일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이야기> : 바다를 누비는 부산 해녀들의 감정과 고충이 궁금했다. 덜컥 ‘해녀복’을 맞춘 20~30대 기자와 PD들. 풀장에서 물질을 배우며 수심 6m 바닥까진 내려가는데…. 정작 영도 감지해변에선 맥을 못 춘다. 파도에 풀썩~. 그들은 해남이 될 수 있을까.
- 관련 기사 : [부산숨비] 해녀 취재하다 해남이 되기로 했다 #8-1 (https://c11.kr/128ee)
넓고 거친 바다에서 우린 초라했다. 수영장보다 뿌연 바다에 겁을 먹었고, 세찬 파도에 몸을 제대로 못 가눴다. 올해 4월 영도 바다는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줬다. 해남 도전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섬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부산에 없는 해녀학교가 거제도에 있었다. 제주도에도 학교가 2곳 있었지만, ‘육지’와 가까운 곳이 좀 더 반갑고 궁금했다.
올해 5월 9일 ‘거제해녀아카데미’를 찾아갔다. 고즈넉한 거제시 사등면 가조도 진두항에 터전을 잡은 곳. 벽면에 해녀 그림을 그려놓은 ‘해녀민박’이 눈에 띄었다. 주황색이 아닌 분홍, 노랑, 빨강까지. 한쪽에 걸려있던 테왁도 다채로웠다.
우린 부산숨비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고, 결국 다음 입문반 수업에 참여해도 괜찮다는 답을 받았다.
■ 바다에 그린 동그라미
5월 18일 오후, 우린 부산 영도에서 맞춘 해녀복을 꺼내입었다. 뒤이어 거제도 진두항 앞바다에 차례로 뛰어들었다. 거제해녀아카데미 ‘입문반’ 교육생 16명과 함께였다. 남성이 6명 있었고, 연령대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해녀아카데미 강사와 안전요원도 함께 물속에 있었다. 그들은 교육생이 테왁 하나에 의지한 채 바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다 해녀 사회처럼 공동체를 중시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바다 한가운데 모인 우린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테왁을 고리 삼아 양옆으로 서로를 연결해 한몸이 됐다. 그 상태에서 양옆으로 움직이며 회전하는 연습을 했다. 잠시 양손을 테왁에 의지한 채 물 위에 힘을 빼고 드러눕기도 했다.
한 몸으로 움직이는 연습을 마치고 잠수 연습도 시작했다. 바닷속에 고정한 줄에 의지해 한 명씩 물속으로 들어갔다. 일부 교육생은 수심 6m 바닥까지 금세 내려갔지만, 겁을 먹거나 귀가 아파 금방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도 바닥을 찍었지만, 결코 쉬운 건 아니었다.
인천에서 온 ‘두 아이 엄마’ 최윤정(30) 씨는 “물속에서 시야도 좋지 않고 잘 들리지도 않아 굉장히 무서웠다”며 “줄을 잡고 밑으로 내려가니 귀도 아파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녀가 숨만 오래 참는 게 아니라 모든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린 낯선 거제 바다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테왁 망사리 끈을 묶고 푸는 법부터 오리발을 신고 바다로 뛰어드는 방법까지 다양한 기본기도 익혔다.
■ 줄 없이 잠수 또 잠수
다음 날인 5월 19일 오후, 우린 또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형형색색 ‘테왁’ 옆에 20여 명이 머리만 내밀고 바닷속에 떠 있었다. 전날과 달리 바닷속에 고정된 줄 없이 잠수를 연습하기 위해서다.
원 모양으로 모인 우린 순서대로 잠수를 시작했다. 물속에 머리를 넣고 다리를 힘차게 휘저었다. 한명씩 사라졌다가 숨이 가빠지면 물 밖으로 나왔다. 강사들은 ‘물질’의 기초인 잠수를 반복해서 연습시켰다.
조명 없는 바닷속은 한 치 앞도 구별하기 어려웠다. 수심 6m 바닥에 다가가야 해초나 조개껍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5mm 두께 고무 잠수복 덕에 추위는 덜한 편이었다.
해녀아카데미는 ‘물건(해산물)’ 수확이 쉽지 않다는 점을 교육생 스스로 깨닫게 했다. 거제해녀아카데미 구재서 사무국장은 “해녀가 돼도 당장 물건을 많이 건지기 어렵고, 손질까지 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며 “교육을 하며 해녀의 현실을 가감 없이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 현직 해녀들의 조언
바다에 뛰어든 이틀 동안 오전에는 실내 수업이 열렸다. 거제해녀아카데미 출신 40대 해녀들이 수협효시공원에 마련된 강의실을 찾아 다양한 경험과 팁을 전수했다.
그들은 해녀 생활과 공동체 문화 등에 대한 설명과 조언을 시작했다. 첫날에는 최혜선(43) 해녀가 ‘해녀의 물건’을 주제로 강의했다. 거제도 지역마다 수확할 수 있는 물건과 잡는 방법 등을 설명했다.
그는 “단가가 비싼 홍해삼은 거제도 ‘안도’에서 찾기 어렵다”며 “해삼은 주변에 ‘똥’부터 찾아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장비 점검은 매일 철저히 해야 하고, 낚싯줄과 통발뿐 아니라 해파리처럼 독성 있는 생명체를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우리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둘째 날 하정미(41) 해녀는 “어느 정도 금전적인 여유와 시간과 체력이 받쳐줘야 물질하기 수월하다”며 “첫해에 돈 번다는 생각은 버리고 적어도 3년은 물질에 집중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해녀 사회는 능력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며 “나이가 어리더라도 물건만 많이 따면 적응하기 쉬워진다”고 덧붙였다.
80대 베테랑은 따뜻한 격려를 보탰다. 지난해까지 물질한 현삼강(80) 해녀는 “60년 동안 바다에 들어갔는데 지금도 학생들과 물질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라며 “절대 물건 욕심내지 말고 항상 숨을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 용기를 얻은 부산 해남들
이틀 동안 우린 물질을 반복해서 연습했고, 해녀 문화에 대한 이해도 조금 더 높였다. 무엇보다 낯선 바다에서도 바닥까지 내려간 건 큰 수확이었다.
해녀 문화를 잇고 싶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큰 힘이 됐다. 특히 부산과 울산에 해녀학교가 없어 거제도까지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부산에 사는 허민성(34) 씨는 “바다를 좋아해 직업으로 해남을 해도 좋을지 판단하려고 왔다”고 했다. 울산 울주군에서 온 김복희(49) 씨는 “해녀인 어머니 뒤를 잇기 위해 학교에 왔다”며 “해녀 문화를 잇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영도 바다에 살짝 기죽었던 우린 거제 바다에서 다시 용기를 얻었다. 이제 부산에 돌아가면 해녀들과 함께 바다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편에서는 해녀들과 청사포 바다를 누비는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해남 도전기를 생생히 담은 영상은 기사 위쪽과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