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늑대가 못 나타났어요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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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윤석열차’ 그림에 문체부 경고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공연까지
행안부 압력으로 바뀌는 현실
풍자, 약자 박탈감 해소 역할
YS, “대통령 놀려도 됩니다”
수사보다 민심에 귀 기울여야

지난달16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16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음악도 모르는 내가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를 찾아 들은 이유는 행정안전부가 미는 노래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어서였다. 덕분에 그의 묘한 매력에 빠져 “동시에 죽어버리자”고 선동하는 ‘환란의 세대’까지 다 듣고 말았다. 지난달 16일 부산에서 열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늑대가 못 나타나면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사회적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부마항쟁기념재단은 이랑에게 이 노래를 꼭 불러 달라고 했지만 공연을 3주 앞두고 대신 ‘상록수’를 불러주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했다. 재단에 예산 지원을 하는 행정안전부가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검토해 달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부마항쟁기념재단이라는 이름을 상록재단 등으로 바꿀 생각이 아니었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선 안 될 일이었다. 국민들은 이태원 참사에 책임이 있는 행안부 장관의 말에 절망하고 있다. 행안부 입에서 지금 ‘밝고 희망찬’이란 소리가 나오는가.


정치를 보며 버린 눈과 귀를 요즘은 월드컵에서 정화하는 중이다. 지상파 3사의 시청률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는데 우리 집에서는 일찌감치 MBC로 채널을 고정했다. 축구 중계라도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그동안 MBC 보도가 항상 공정했던 것도 아니고 청와대 출입기자가 감정을 실은 질문과 말싸움을 하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았다. 하지만 MBC가 밉다고 동남아시아 순방 직전에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막는 조치는 너무 졸렬했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있으면 힘내라고 격려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월드컵 중계 시청률이 MBC가 단연 1등이고, MBC 뉴스도 11월 들어 시청률 1등 자리에 올랐다니 사람들 마음이 다들 비슷한가 보다.

풍자는 예부터 사회의 불합리성과 불평등을 비판해 사회적 약자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 왔다. 풍자(諷刺)의 자(刺)는 刀(칼 도)와 朿(가시 자)가 합쳐서 만들어진 찌른다는 의미이니, 당하는 권력자 입장에서는 아플 수밖에 없다. 언론 자유가 낮거나 독재국가에서는 풍자 때문에 탄압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통령을 소재로 한 유머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등장했다. 지금도 YS라는 별명으로 사랑을 받는 김영삼 대통령은 ‘이제는 대통령을 놀리거나 욕해도 됩니다’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YS를 소재로 한 유머 책 〈YS는 못 말려〉는 당대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새삼 풍자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최근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제동을 거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2022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차’라는 제목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 작품이 경기도지사상 금상을 받고 전시된 것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엄중 경고를 하면서 불거진 논란은 불길한 징조였다. 그 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는 윤석열 정부와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를 풍자한 만화가 전시에서 유일하게 제외되었다고 한다. 사실 ‘윤석열차’ 논란은 조용히 넘어갔을 일인데 문체부가 개입하면서 사태를 전국 뉴스를 넘어 외신까지 소개되도록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알려진 정보를 억압하려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그 정보를 접하도록 역효과를 낳는 현상을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라고 부른다. 저질 만평이나 싣던 프랑스 3류 언론사 〈샤를리 엡도〉가 이슬람 과격단체에게 테러를 당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사례를 윤석열 정부는 새길 필요가 있다.

요즘엔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 찬 이기호의 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 그의 소설 〈차남들의 세계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묘사한 부분에서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아서 일부를 소개한다. “전두환은 수사를 하다가 대통령에 취임한, 세계 역사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사관이었다. 자신의 직속상관들까지도 모조리 체포하고도 성이 다 차지 않았던지 그냥 자신이 피해자의 신분을 대신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수사하다가 계속 수사와 체포로 한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국정목표가 수사였고, 국정 지표가 체포였던 것이다.” 정치는 사라지고 수사만 난무하는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김영삼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은 그의 7주기 추모 현장에서 “지금은 모두 거산(巨山)의 큰 정치 바른 정치를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라는 방명록을 남겼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는 임금이 자신의 약점이던 귀를 마음 편히 내놓고 백성의 소리를 들어 훗날 위대한 성군 중 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민심에 귀를 기울여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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