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램프 / 송승언(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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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마음속에 잿더미가 쌓여 있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생각을 헤쳐 나간다. 램프를 들고. 흔들리는 램프 안에 불이 흔들린다. 이것이 너의 표정이다. 너의 표정은 죽어 가는 사람의 숨결처럼 아득하게 퍼져 나간다. 램프를 들고 복도의 잿더미를 헤쳐 나가면 잿더미의 복도에서 램프를 들고 다가오는 사람. 그는 나에게 비어 있는 한손을 내민다. 악수할 수 없는 손을.

- 시집 〈사랑과 교육〉(2019) 중에서


램프는 BC 7만 년경 구석기 시대에 이미 나타났다고 한다. 당시에는 돌에 홈을 파고 동물기름으로 적신 이끼 같은 것에 점화하는 방식이었는데, 알래스카의 소수 부족과 에스키모족들의 램프에는 지금도 고대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시인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잿더미가 쌓여있다’라고 진술한 뒤 이 잿더미의 복도에서 램프를 들고 오는 사람을 만난다. 램프를 든 사람은 빛과 희망을 보여주는 사람이지만, 그는 곧 악수할 수 없는 손을 내민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극을 램프를 통해 보여주는 시다. 언제쯤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잿더미를 걷어내고 악수할 수 있는 손을 만날 수 있을까.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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