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선조종 비행기 연이은 추락… "불안해 못 살겠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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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유치한 드론전용시험장
얌체족 무단 침입·사고 이어져
해당 기종 별다른 규제 없어
대도심 사고 발생 우려도 커

지난 4일 오후 1시께 동해면 내곡리 드론전용비행시험장에서 불이나 출동한 소방대에 1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200㎡에 달하는 갈대군락이 검은 재만 남기고 사라졌다. 주민 제공 지난 4일 오후 1시께 동해면 내곡리 드론전용비행시험장에서 불이나 출동한 소방대에 1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200㎡에 달하는 갈대군락이 검은 재만 남기고 사라졌다. 주민 제공

“잊을 만하면 떨어지니, 도저히 불안해서 못 살겠습니다.”

경남 고성군이 ‘드론(무인비행체) 메카’를 꿈꾸며 유치한 ‘드론전용비행시험장’에서 크고 작은 추락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얌체 무선조종(RC) 모형비행기 마니아들이 무단으로 활주로에 들어와 비행체를 날리다가 대형 화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고까지 발생해 주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참다못한 인근 마을 주민들이 대책위를 꾸리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6일 고성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1시께 동해면 내곡리 드론전용비행시험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활주로와 바닷가 갯벌 사이에 형성된 갈대군락에서 시작된 불은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주변으로 번지다 곧이어 도착한 소방대에 1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200㎡에 달하는 갈대군락이 잿더미로 변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번 화재는 개인이 띄운 RC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발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종사는 경찰에 “취미로 RC 조종을 하는데, 근처에 일 보러 왔다가 공터가 보여 날려보다 사고가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드론전용비행시험장은 고성군이 국비 60억 원을 지원 받아 완공한 건물로, 운영센터와 정비고, 헬리패드(21x21m)에 활주로(200x20m)까지 갖췄다. 2019년 10월 시범 운영에 들어간 뒤 이듬해 5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으며, 완공 이래 줄곧 항공안전기술원이 드론 실증 시험장으로 수탁 중이다. 사용자는 사전 허가를 받은 뒤 관제 요원이 있는 상태에서 안전 공역 내에서만 비행할 수 있다. 이 절차만 지키면 평일(월~금요일)엔 일반인도 예약 후 입장 가능하다.

문제는 근무자가 따로 없는 주말이다. 비행장 상주 요원은 항공안전기술원 소속 연구원과 고성군이 파견한 기간제 근로자 2명이 전부인 탓에 근무자가 없는 토·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예약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일부 얌체족들이 이 틈을 노려 무단으로 활주로에 침입, 모형비행기를 띄웠다가 고장이나 조종 미숙으로 사고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화재도 마찬가지다. 기술원 관계자는 “공항처럼 항공법에 근거해 폐쇄된 형태로 관리하면 좋겠지만 시험비행장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주민이 오가는 농로도 연결돼 있어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면서 “몇 차례 무단 출입자를 적발해 주의를 주고 돌려보냈지만, 타지에서 소문을 듣고 오는 분들까지 다 막진 못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고성 드론전용비행시험장 활주로 옆 갈대군락에서 시작된 불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번지고 있다. 주민 제공 고성 드론전용비행시험장 활주로 옆 갈대군락에서 시작된 불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번지고 있다. 주민 제공

개인 RC 비행기와 관련된 별다른 규제가 없는 것도 문제다. 무인비행장치로 분류가 안 돼 항공법을 적용할 수 없어 사고를 내도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것이다. 개발 중인 기체를 시험하는 시험비행장에서 추락 사고가 불가피한 만큼 기술원은 인적·물적 피해가 없도록 민가 쪽 하늘을 제한 공역으로 설정하고 관리자가 레이더와 추적 카메라를 통해 비행을 통제한다. 기업체는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 불상사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RC 비행기의 경우 이 같은 안전장치도 전무하다.

주민들은 불안하다며 아우성이다. 개장 이후 주변 마을에서 인지한 추락 사고만 5건, 이 중 1대는 주유소 근처에 떨어지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자 비행장과 인접한 용운마을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한 주민은 “가뜩이나 건조한 날씨에 자칫하면 불이 마을을 덮쳤을 수도 있다”면서 “(비행장)주변으로 사람도 많이 지난다. 이대로 두면 분명 큰 사고 날 게 뻔하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에 고성군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군은 활주로 주변에 안내판을 추가로 설치하고 동작 감지 CCTV를 설치해 경고 방송을 하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고성군 관계자는 “주말 근무자를 추가로 채용하거나 근무 시간을 조정해 주말 공백은 메우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고성군은 드론전용비행시험장을 중심으로 동해면 내곡리 일원에 미래형 무인기 전문 특화단지를 만들고 있다. 총면적 37만 1983㎡ 규모로 2026년까지 920억여 원(국비 160, 군비 110, LH 650)을 투입한다. 고성군과 LH가 공동으로 시행하는 공영개발방식이다. 계획대로라면 무인기의 제작·연구·시험비행이 한 장소에서 가능한 국내 유일의 산업단지가 된다. 이를 통한 경제 파급효과로 8400억 원 상당의 생산유발과 3000명 이상의 고용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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