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추리 문학관 ‘창조적 파괴’ 30년을 돌아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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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30돌 행사를 여는 추리문학관 김성종 관장. 부산일보DB 개관 30돌 행사를 여는 추리문학관 김성종 관장. 부산일보DB

김성종 소설가 1992년 개관

10일 개관 30돌 기념 행사

다채로운 공연과 강연 개최


한국 최초의 추리 전문 문학관으로 1992년 부산 해운대 달맞이언덕에서 문을 연 추리문학관이 10일 오후 1~6시 다채로운 개관 3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원래 3월에 문을 열었으나 코로나 탓에 연말로 늦춰 행사를 열게 된 것이다.

녹록찮은 30년이었다. 추리문학관은 한국 추리소설의 대표 작가 김성종으로 인해 가능했다. 개관은 한국 현대사와 개인사의 우연·필연이 겹친 것이다. 1941년 중국 산둥성 지난에서 태어난 그가 부산에 정착한 것은 1980년이었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 때 부산에 잠시 피란을 온 인연도 있었다.

피란 시절, 여수에서 어머니가 여섯째를 낳고 그만 돌아가신 것은 그에게 큰 상처였다. 곧 어머니를 따라간 그 아이를 김성종은 야밤에 산에 묻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36세였고, 김성종은 고작 13세였다. <김성종 읽기>를 쓴 백휴는 “이 삶의 비극이 김성종에게 가장 의미가 큰 사건으로 일종의 ‘빅뱅’과 같은 것이었다”고 했다.

김성종은 이렇듯 준비되지 않은 채 큰 질문과 맞닥뜨리는 인간의 미스터리를 캐기 위해 추리소설로 나아갔다. 김성종은 늘 작품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성종은 철학자다’라는 명제가 있다. 그의 작품 근저에는 도스토옙스키가 도사리고 있는데 그가 부산에 처음 내려왔을 때 남천동에서 열었던 책방 이름도 ‘도스토옙스키의 집’이었다.


추리문학관 초기 모습. 부산일보DB 추리문학관 초기 모습. 부산일보DB

그의 삶의 분수령이 된, 1974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전 당선작 <최후의 증인>은 한국 추리소설의 새로운 서막을 연 작품이었다. “6·25의 저변을 캔 문제작”이란 평을 들으며 스타 작가가 탄생했다. 이 작품과, 시청률 58%의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친 장편 <여명의 눈동자>도 결국은 그가 치러낸 시대와 관련된 작품이자 한국 현대사를 문제 삼은 작품이었다. 김성종의 추리소설은 시대를 말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추리소설의 폭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 그는 부산에 추리문학관을 세운 것이다. 개방적인 항구도시 부산에 제격으로 어울릴 만한 소설 장르이기도 하다. 그는 “30년간 추리문학관을 운영하는 것은 만만찮았고 힘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전국에 100여 곳이 넘는 문학관을 헤아리지만 그가 30년 전 사재 20억 원을 들여 문학관을 열 때 전국에 문학관이 거의 없던 실정이었다. 그만큼 추리문학관은 선구적이었다.

10일 30주년 기념행사는 공연과 강연으로 꾸며진다. 공로상 수여 및 기념행사가 있고 공연으로는 ‘여명의 눈동자’ OST 및 클래식 공연, 문선희-써니 재즈 밴드 공연이 있고, 김성종의 단편소설 ‘오해’를 연극으로 만든 극단 동녘의 공연이 있다. 공연 중간중간에 구모룡 문학평론가가 ‘부산문화 발전방향’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또 최근 주목할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숲>을 낸 조갑상 소설가가 저자와의 대화를 갖는다. 행사 마지막 순서로는 김성종 추리문학관장의 추리문학관 30주년 기념 강의가 준비돼 있다.

추리문학관 입구에는 추리문학관 표지석 조형물이 있다. 그 조형물의 구멍들은 총알 구멍을 형상화한 것이란다. 추리문학에 어울리는 발상을 품은 것인데 “총알은 파괴를 상징하는 것이며, 파괴는 곧 창조를 의미한다”는 것이 김성종의 설명이다. 그 창조적 파괴를 지향한 30년 여정의 추리문학관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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