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과 발효, 아픈 지구를 치유하는 ‘당신의 밥상’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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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식탁: 기대어 깃든 물, 흙, 균’
부산문화재단 메세나 활성화 지원 사업
장은수·나까·한수련 3인의 셰프 기획

'미래의 식탁'에 참여한 시민들이 기후 위기를 생각하는 식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미래의 식탁'에 참여한 시민들이 기후 위기를 생각하는 식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음식과 문화를 나누며 기후 위기를 고민했다.

부산문화재단의 메세나 활성화 지원 사업 ‘미래의 식탁: 기대어 깃든 물, 흙, 균’은 기업-재단-예술인 파트너십을 만드는 재단의 메세나 기획사업 ‘예술같이’에 속한다. ‘예술같이’ 프로젝트는 ESG 경영(지속가능경영)을 실천하는 기업과 예술인을 연결해 사회 문제를 예술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래의 식탁’은 식문화를 매개로 환경 문제와 기후 위기를 알리는 프로젝트이다. 이 색다른 예술 실험에는 ㈜희천-더리터가 동참했다.

'미래의 식탁' 포스터. 부산문화재단 제공 '미래의 식탁' 포스터. 부산문화재단 제공
'미래의 식탁'을 제안한 셰프들. 왼쪽부터 나까, 장은수, 한수련 셰프. 오금아 기자 '미래의 식탁'을 제안한 셰프들. 왼쪽부터 나까, 장은수, 한수련 셰프. 오금아 기자

‘미래의 식탁: 기대어 깃든 물, 흙, 균’ 프로젝트의 제목은 ‘자연이 내어준 것에 기대어 우리 몸에 깃든다’는 뜻이다. 로컬과 토종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해온 오붓한의 장은수 셰프와 비건식당 나유타의 나까 셰프, 라이스케이터링의 한수련 셰프. 세 명의 셰프는 ‘미래의 식탁’을 주제로 지속가능한 식문화를 제시했다. 부산 영도구 봉래동 봉산마을회관에서 열린 행사 현장에는 11월 26일과 27일 양일간 각각 14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기후 위기 시대 대안적 식문화 제안

음악·영상·퍼포먼스 결합 ‘다이닝 쇼’

“식재료 사라지면 레시피도 사라져”

“윤리와 함께 즐기는 식사 됐으면”


한수련 셰프의 '버섯, 세 가지 맛'. 돋보기와 핀셋을 사용해서 숲에서 채집하듯 음식을 먹는다. 오금아 기자 한수련 셰프의 '버섯, 세 가지 맛'. 돋보기와 핀셋을 사용해서 숲에서 채집하듯 음식을 먹는다. 오금아 기자

■ 제1 접시 ‘버섯, 세 가지 맛’

소금, 쌀, 흙 그리고 나뭇가지로 장식된 테이블 위에 숲을 연상시키는 접시가 올라온다. 셰프가 처음 버섯을 발견한 순간의 경험을 전하기 위해 영도의 산속 모습을 형상화했다. 여러 종류 버섯을 끓인 엑기스로 만든 버섯 칩, 버섯 젤리, 달걀버섯의 맛을 재현한 버섯 수프. 수저 대신 제공된 돋보기와 핀셋으로 버섯을 관찰하며, 한 입 한 입 음미한다. 짭짤하고 달콤하고 고소하고 시큼하다. ‘버섯이 이렇게 다양한 맛을 가졌구나’를 알게 됐다.

한수련 셰프는 “식재료 공부를 하다 미래 식량으로서 버섯의 가능성을 알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버섯 외형이나 채취의 즐거움에 빠졌다면 지금 그는 버섯이 가진 생명력에 집중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환상의 버섯’을 봤어요. 오염된 땅에서 균사체들이 자라나 땅을 정화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버섯 숲 접시에 숨겨진 작은 편지를 펼쳤다. 강미나 작가가 버섯에 영감을 받아 쓴 ‘낮잠’이라는 소설의 한 구절이 쓰여 있다. ‘찰나가 겹겹이 쌓여가는 것도 모르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내 몸에 이끼들이 피어나고 있었어요.’ 현재 우리의 식탁과 환경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나까 셰프의 '사양의 식탁'은 채소 본연의 맛을 알려준다. 오금아 기자 나까 셰프의 '사양의 식탁'은 채소 본연의 맛을 알려준다. 오금아 기자

■ 제2 접시 ‘사양의 식탁’

‘미래의 식탁’ 행사는 봉산마을회관 베리베리굿봉산센터에서 열렸다. 음식 준비 공간 웰컴센터에서 행사장까지 퍼포머들이 접시를 들고 오는 영상이 나온다. 장내에 붉은 조명이 켜지고, 퍼포머들이 식탁 주위를 돌며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접시 위 산 모양의 종이 덮개를 걷으니 애호박으로 만든 음식이 주홍빛 소스와 어우러져 있다. ‘사양의 식탁’은 영도의 일몰을 모티프로 한 음식이다. 애호박 아래에 놓인 것은 비건 햄버거 패티. 양송이, 팽이버섯, 우엉을 넣은 패티는 맛뿐 아니라 식감도 좋다. 토마토와 비트가 어우러진 소스까지 채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나까 셰프는 “일몰의 시작과 끝을 접시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기후 위기로 사양(斜陽)해 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의도다. 동시에 그의 접시에는 ‘일몰 후 밤이 지나면 다시 일출이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담겼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일어난 후쿠시마원전 폭발 사고를 보며 ‘생물 농축’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나까 셰프는 “생태 피라미드 위로 갈수록 오염물질의 체내 농축이 심해지니 ‘상위의 것들을 먹으면 위험하겠다’, ‘채식을 해서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해 보자’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고 밝혔다.

접시 속 소스에는 간장과 된장도 들어갔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려면 미생물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전통 한국 된장은 메주를 말리는 과정에서 다양한 균들이 들어가, 한 가지 균을 사용하는 공장산 된장과는 다릅니다.” 직접 된장을 담근다는 나까 셰프는 농가 고령화로 국산 콩 생산이 점점 줄어들고, 지역 농부와 공존하는 지역 생협도 사라져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장은수 셰프의 '가장 복잡하지만 단순한 밥상'. 흰죽과 조선간장으로 구성된 밥상을 받은 참가자들은 장은수 셰프의 '가장 복잡하지만 단순한 밥상'. 흰죽과 조선간장으로 구성된 밥상을 받은 참가자들은 "치유 받는 느낌" "엄마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금아 기자

■ 제3 접시 ‘가장 복잡하지만 단순한 밥상’

‘쌀을 씻는다. 첫물은 정수물로…마지막 헹군 후 쌀을 체에 거르고 뜨물은 모아둔다. 냄비에 센불로 참기름을 둘러 쌀을 천천히 볶는다. 다 볶이면 쌀뜨물을 조금씩 흘려 익힌다. 죽이 끓어오르면 중간중간 주걱으로 저어준다.’ 어릴 때 먹은 엄마의 흰죽 한 그릇에도 이렇게 많은 정성이 들어갔구나 싶다. 여기에 3년 묵은 발효간장까지 더하면 더 이상 그냥 흰죽이 아니다. 고소함을 기본으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만 가지 맛이 난다. 흰죽과 조선간장. 이 단순한 밥상에 많은 이들이 “엄마가 떠올라 울컥했다”고 말했다.

장은수 셰프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토종 쌀을 찾았다. “창원 주남저수지 근처에 ‘귀도’라는 토종 쌀을 자연농법으로 재배하는 분이 계십니다. 논바닥이 갈라진 모습을 보면 이 작물이 얼마나 튼튼하고 깊게 뿌리를 내렸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땅이 넓게 갈라질수록 뿌리가 강하다는 의미랍니다.”

장 셰프는 이번 밥상에 재래 율무, 토종 콩, 두부, 연근, 우엉을 넣은 배추쌈을 올려 ‘토종 곡물의 맛’을 소개했다. “토종과 발효에서 미래 우리 식탁에 길을 찾아주자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시식에 앞서 흰죽 레시피를 시처럼 낭독했는데, 기후 위기로 식재료가 사라지면 예전에 사용했던 레시피가 사라지고, 전통 식문화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퍼포머들이 '사양의 식탁' 접시를 관람객 앞에 내려놓고 있다. '미래의 식탁'은 식문화 체험에 음악, 영상, 퍼포먼스을 더한 예술 실험이기도 했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퍼포머들이 '사양의 식탁' 접시를 관람객 앞에 내려놓고 있다. '미래의 식탁'은 식문화 체험에 음악, 영상, 퍼포먼스을 더한 예술 실험이기도 했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버섯, 세 가지 맛' 접시에 숨겨둔 편지를 관람객이 촬영하고 있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버섯, 세 가지 맛' 접시에 숨겨둔 편지를 관람객이 촬영하고 있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미래의 식탁’ 행사를 연출한 예술은공유다 심문섭 대표는 “민과 관, 기업이 함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자리를 음악, 영상,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다이닝 쇼’처럼 풀어보려 했다”고 말했다. 행사를 후원한 ㈜희천 차정훈 경영지원단장은 “공연 콘셉트는 낯설지만 음식은 늘 접하는 것이라 좋았다”며 “회사가 ESG 경영에 관심이 많아 별도로 문화예술 행사를 지원하는 ‘커피 트럭’ 제작도 추진하고 있다”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로 부산문화재단은 식문화와 예술을 접목하는 실험을 하고 문화예술의 범위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셰프들는 관람객이 기후위기를 생각하고 작은 변화라도 실천하기를 바랐다. “음식을 먹는 것은 욕망이 앞서기 쉬운 행위라고 봅니다. 한순간, 한입의 행복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먹기에 앞서 소비 과정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윤리와 함께 즐기는 식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사는 부산일보사와 부산문화재단의 공동기획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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